제프 쿤스는 가장 유명한 현대미술가 중 한 명이다. 일반 대중들한테는 게르하르트 리히터나 안셀름 키퍼보다 더 유명한 미술가이지만, 그렇다고 아카데미적 미술사가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은 아니다. 리히터나 키퍼를 말할 때는 그들의 작품이 왜 훌륭하고 얼마나 감동적인지를 분석하는 반면, 제프 쿤스를 말할 때는 작품 가격부터 말하게 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제프 쿤스의 작품이 어느 옥션에서 최고가를 기록했고 어떤 컬렉터가 그의 작품을 샀는지 등이 주로 논의된다. 제프 쿤스의 예술을 분석하는 대부분의 기사도 결국에는 가격만 논하다가 마지막 문단에 그의 예술이 속한 뉴팝아트(new pop art)의 공헌에 대해 잠시 언급한 후 글을 맺곤 한다.
- 2014년 회고전 당시 파리 퐁피두센터 국립미술관에 전시됐던 제프 쿤스의 작품들. 65만명이 넘는 관람객이 방문해 생존작가 가운데는 가장 많은 방문자 수라는 기록을 세웠다. 왼쪽부터 ‘Shelter’(오두막), ‘Balloon Dog’(풍선개).
- 2014년 회고전 당시 파리 퐁피두센터 국립미술관에 전시됐던 제프 쿤스의 작품들. 65만명이 넘는 관람객이 방문해 생존작가 가운데는 가장 많은 방문자 수라는 기록을 세웠다. 왼쪽부터 ‘Shelter’(오두막), ‘Balloon Dog’(풍선개).

제프 쿤스가 현대미술사에 어느 정도의 자취를 남길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그가 미술경매사에 큰 획을 남긴 것만은 확실하다. 그는 2차 세계대전 이후 태어난 생존 작가로는 가장 비싼 작가다. 크리스티 옥션에서 전후 미술과 컨템퍼러리 미술의 국제파트 책임자였던 에이미 카펠라초는 “제프 쿤스는 옥션에서 태어나고 성장했으며…리처드 프린스, 신디 셔먼, 무라카미 다카시 등도 같은 경우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클래식한 작가들을 능가하는 제프 쿤스의 작품 가격이 9·11 테러 이후 옥션 시스템에서 ‘전후 미술’과 ‘현대 미술’이라는 카테고리로 분리하게 했다”고 강조한다.

‘욕조 안의 여자’ 그림엽서에서 영감 얻어
이처럼 ‘전후 미술’과 ‘현대 미술’이란 카테고리 분리를 가져오게 한 작품이 바로 제프 쿤스의 ‘욕조 안의 여자(woman in tub·1988)’이다. 이 작품은 2000년 첫 번째 낙찰 때는 170만달러였으나 2001년에는 250만달러가 넘는 가격으로 팔렸다. 이는 제프 쿤스의 작품이 1945년 이전의 클래식한 현대미술품과 동등한 수준의 가격이 된 역사적인 기점이었다. ‘욕조 안의 여자’는 쿤스가 그림엽서를 보고 영감을 얻어 제작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쿤스의 대부분의 조각 작품이 완벽한 형태를 가지고 있는 것과는 다르게 여성의 얼굴 윗부분이 생략됐다. 젖은 머리카락이 어깨에 흘러내려 있고 양 손은 가슴을 부여잡고 커다랗게 벌린 입은 무언가를 보며 놀라고 있다. 제프 쿤스의 설명에 의하면, “그녀는 욕조에서 솟아오른 잠수용 튜브를 보고 놀라고 있으며 이는 기묘하게 에로틱하며 코믹하고 키치적(Kitsch·저속한)인 일상성을 표현하고 있다”고 한다. 이 점은 바로 그의 예술의 전반적인 특징이자 미국 대중문화의 속성이기도 한다. 제프 쿤스는 옥션계의 기록을 계속 갱신한다. 2012년 11월 뉴욕 크리스티 옥션에서 ‘튤립(Tulips·1995~2004)’이 3368만달러에 낙찰되면서 당시 ‘튤립’은 생존작가 작품 중 최고가를 기록했다. 2013년 11월 크리스티 옥션에서 ‘풍선개(Balloon Dog·orange)’가 다시 기록을 갱신, 생존 미술가 경매 사상 최고가인 약 5800만달러에 판매됐다.

이처럼 꾸준히 옥션의 기록을 갱신하고 있지만 그가 세계 미술사의 거장 반열에 들어갈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미술사가들은 아직도 회의적이다. 제프 쿤스의 명성에 비하면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미술관에서 개최한 개인전 횟수도 많은 편은 아니다. 이를 만회하려는 듯 제프 쿤스의 35년 작업을 총망라하는 회고전이 순회전 형식으로 미국, 프랑스, 스페인 등 세 나라의 중요한 미술관에서 순차적으로 개최되고 있다. 이 순회전은 뉴욕 휘트니 미술관(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Jeff Koons: A Retrospective’ 2014년 6월27일~10월19일 150여점 전시)에서 시작됐다. 제프 쿤스의 뉴욕 첫 회고전을 축하하는 팡파레로 이 전시 오프닝에 앞서 2014년 6월25일 록펠러센터 앞에는 제프 쿤스의 거대한 조각 ‘스플릿-락커(Split-Rocker)’가 설치됐다. 휘트니 미술관은 이 회고전을 끝으로 매디슨애비뉴 빌딩에서 렌조 피아노에 의해 설계된 첼시의 다운타운 빌딩으로 이전했다(2015년 5월1일 개관).

이 순회 회고전은 파리 퐁피두센터의 국립미술관(2014년 11월26일~2015년 4월27일 100여점 전시)을 거쳐 스페인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2015년 6월5일~9월27일)으로 이어진다. 퐁피두 전시는 유럽에서의 첫 회고전이기도 하다. 물론 이전에도 유럽의 여러 미술관에서 크고 작은 초대전이 많았지만 이 정도 규모의 회고전은 처음이라는 이야기다. 2008년 베르사유 궁전에서도 전시가 있었지만 이때만 해도 제프 쿤스는 ‘키치의 왕, 미술관의 날라리’로 취급되며 환영받지 못했었다. 반면 제프 쿤스는 이번 퐁피두센터의 전시를 상당히 만족해하며 프랑스 일간지 피가로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유럽, 특히 프랑스는 아주 오랫동안 예술과 문화가 행해지는 곳으로 존경해 왔다. 프랑스 문화를 정의하라고 한다면 프랑스인들은 마네로부터 푸생까지, 그리고 뒤샹, 피카소를 떠올릴 것이다. 그런데 미국인들에게 같은 질문을 던진다면 그들은 스티븐 스필버그, 브래드 피트, 안젤리나 졸리, 비욘세, 레이디 가가 등을 말할 것이다.”

이처럼 제프 쿤스는 예술을 숭배하는 도시인 파리, 오랜 전통과 문화를 가진 구(舊)대륙의 심장에서 환영받는 전시를 하게 된 것에 대한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 ‘Elephant’ (코끼리), ‘Popeye’(뽀빠이).
- ‘Elephant’ (코끼리), ‘Popeye’(뽀빠이).

‘미술관의 날라리’로 취급받아
현대 포스트모던 사상의 이슈나 현대 미술의 기원인 아방가르드의 핵심은 서로 간의 경계를 없애고 교류하는 것이다. 그래서 게르하르트 리히터는 사진매체와 회화의 경계를 무너뜨렸고, 장 미셀 바스키아와 키스 해링은 거리의 미술(그래피티)로 미술관의 문턱을 낮췄다. 특히 앤디 워홀은 대중미술과 고상한 예술의 경계를 부쉈다. 그래도 그는 작품에 대중적인 ‘퀄리티’의 흔적은 그대로 남겨 두었다. 즉 실크 프린팅 된 ‘마릴린 먼로’의 모습은 대량생산을 위해 마구 찍어낸 공산품 같은 느낌이다. 마릴린 먼로가 갑작스럽게 사망한 후 워홀은 영화 ‘나이아가라’에서 먼로의 스틸 사진 초상화를 잘라서 실크 프린팅 작품 ‘마릴린 먼로’를 다양한 색깔로 대량 생산했다. 이 작품은 누가 봐도 ‘원본(마릴린 먼로)’이나 ‘모사본(마릴린 먼로의 영화 스틸 사진)’과도 커다란 질적 차이가 나는 ‘모사본의 모사본’이다. 이로써 워홀은 원본이 갖는 아우라를 완전히 사라지게 하여 팝아트의 기수가 되었다. 

그러나 제프 쿤스의 작품은 오히려 원본에 없었던 아우라를 끼워 넣는다. 한 술 더 떠 원본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 대량생산 제품인 공산품을 원본으로 만든다. 진공청소기에 형광등으로 후광을 넣고(‘후버(Hoover)’ 연작), 긴 막대 풍선을 꼬아 만든 것 같은 오브제(‘풍선개(Balloon dog)’ 연작, ‘벌룬 플라워(Balloon Flower)’ 연작) 등에 없었던 아우라까지 가져온다. 1980년 쿤스가 레디메이드 작품인 ‘후버(Hoover·진공청소기)’ 연작을 발표했을 때 행인들은 전시장을 진공청소기 파는 가게로 착각하고 구입하러 들어오기도 했다. 퐁피두센터 미술관 관장이자 제프 쿤스 전시의 총감독이며 제프 쿤스의 오랜 친구이기도 한 베르나르 블리스텐은 이 작품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제프 쿤스는 누구보다 미국적인 작가이다. ‘후버’ 연작은 여성들을 가사일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해서 발명된 제품이다. 쿤스에게 진공청소기는 일상의 한 오브제이며 그의 작품 대부분은 대중문화와 연결된 일상적인 것의 표상이다. 미국인들의 상상력은 대중문화의 스타나 영웅들에 대한 환상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 퐁피두센터 회고전에 전시된 ‘BMW아트카’.
- 퐁피두센터 회고전에 전시된 ‘BMW아트카’.

예술과 기술의 경계 무너뜨려
블리스텐이 말하는 미국의 영웅에는 마이클 잭슨이나 뽀빠이도 포함된다. 또한 미국인들이 열광하는 스포츠는 단연 농구다. 쿤스는 이러한 오브제도 예술화하는 것에 주저하지 않았다. ‘완전평형탱크’ 연작은 수족관의 수중 한가운데 농구공이 머물러 있는 작품이다. 농구공이 특별한 장치 없이 수중 한가운데 머물게 하는 기술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쿤스는 50명 이상의 물리학자들에게 문의했다. 결국 1965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리처드 파인만이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이처럼 쿤스의 작품 대상은 막대풍선으로 만든 것 같은 강아지나 꽃들, 집안을 장식하는 소품, 만화인물이나 대중스타 등 다양하다. 그는 이러한 일상적인 것들을 진지하게 다루며 한층 거대해진 형태의 예술작품으로 재현한다. 그의 작품은 조금의 흠도 찾아낼 수 없는 완벽한 상품처럼 깔끔하고 정확하다. 쿤스는 공장 같은 그의 아틀리에에서 100여명의 직원들과 함께 최첨단의 기술을 사용하며 예술품을 제작한다. 오늘날 제프 쿤스는 예술품과 상품, 예술과 기술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있는 중이다.

제프 쿤스의 회고전은 휘트니 미술관 83년 역사상 최다 관람객인 26만명이 전시를 관람하여 기록을 세웠다. 퐁피두 미술관에는 65만명이 넘는 관람객이 방문해 생존작가 가운데는 가장 많은 방문자 수라는 기록을 세웠다.

이제 곧 스페인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이 이 바통을 넘겨받게 된다. 제프 쿤스는 ‘가장 비싼 생존 작가’라는 타이틀과 함께 ‘미술관 역사상 최다관람’이라는 기록을 세우고 있는 중이다.

 

※ 심은록 감신대 객원교수·미술평론가
프랑스 파리 사회과학고등연구원(EHESS)에서 철학인문과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후 과정을 밟은 뒤, 2008~11년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소에서 초청연구원[CNRS-CEIFR(UMR CNRS 8034)]을 지냈다. 현재 프랑스에서 미술비평가 및 예술 전문 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 ‘나비 왕자의 새벽 작전—오토니엘의 예술세계(ACC프로젝트, 2011)’, ‘내 머릿속의 섬(그림 장 미셀 오토니엘. 재미마주, 2012)’, ‘세계에서 가장 비싼 작가 10—무엇이 그들을 그토록 특별하게 만드는가?(아트북스, 2013)’, ‘양의의 예술, 이우환과의 대화 그리고 산책(현대문학, 2014)’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