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제일모직(에잇세컨즈) 등 국내 패션업체들이 SPA(제조·유통 일괄 의류업체)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때문에 소비자들은 유니클로·자라·갭 외에도 다양한 콘셉트의 SPA 제품을 만날 수 있다. SPA 브랜드별 특색과 특징을 살펴봤다.

중 견기업의 임원 김모씨는 주말에 서울 여의도 IFC몰에 외식하러 갔다가 아내의 손에 이끌려 옷 가게를 둘러보는 데만 2시간 가까이를 썼다. 싸고 품질 좋다는 SPA 매장이 IFC몰에 몰려있어서다. 매장은  2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고객들로 북적거렸다. 이런 이유로 50대인 김씨나 40대인 김씨 아내는 매장 내에서 전혀 위화감을 느끼지 않았다.

최근 SPA 제품이 인기를 끌고 있다. SPA(Speciality retailer of Private label Apparel)란 의류 기획 단계에서부터 디자인, 생산, 제조, 유통, 판매를 한 회사가 맡는 의류 전문점을 말한다. 유통 단계에서 불필요한 비용을 줄일 수 있어 기존의 고가 의류 제품에 비해 보다 싼 가격으로 판매된다. 자체 생산 시스템이기 때문에 최신 유행을 반영한 신상품을 빠르게 공급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항상 새로운 것을 요구하는 20~30대 젊은 소비자들과 합리적인 가격에 자신이 원하는 디자인의 옷을 사려는 40~50대 알뜰족들이 SPA를 찾는 이유다.

SPA시장이 활황인 가운데 해외 SPA브랜드와 국내 SPA브랜드가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SPA시장이 활황인 가운데 해외 SPA브랜드와 국내 SPA브랜드가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기본 의류 저가 구입시 유니클로·탑텐 선택

패션업계는 올해 SPA시장 규모가 3조원대로 커질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이러한 성장의 상당 부분은 국내에 진출한 해외 SPA브랜드의 강세 덕분이다. 3대 해외 SPA브랜드 유니클로, 자라, H&M의 최근 회계연도 매출액 합계는 7988억원으로 전년 대비 60% 증가했다. 국내 브랜드도 SPA시장의 활황에 한몫하고 있다. 후발 주자로 SPA시장에 뛰어든 에잇세컨즈(제일모직)와 스파오·미쏘(이랜드), 탑텐(신성통상) 등은 다양한 디자인·색상의 제품과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국내 소비자들을 사로잡고 있다.

국내에 진출한 해외 SPA브랜드 중 약진을 보이는 브랜드는 유니클로와 자라, H&M이다. 유니클로는 1990년대 일본의 버블경제가 무너져 일본 국민들의 의류 관련 지출이 크게 떨어진 시기에 등장했다. 생산, 판매, 재고 등의 모든 과정을 자체적으로 진행해 저가로 고품질 상품을 공급하며 급성장을 이뤘다. 유니클로 매장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빨간색 가격 표시가 유니클로의 정체성을 상징한다. 하나에 9900원, 1만9900원이라는 저가 정책은 일단 손님을 끌어들이는 데 효과적이었다.

빠르게 유행을 따라간다고 해서 ‘패스트 패션(Fast Fashion)’이라고 불리는 타 SPA브랜드들과는 달리 유니클로는 기본 티셔츠, 청바지 등 일상적으로 편하게 입을 수 있는 기본 의류 상품을 중점적으로 판매한다. 여기에 시즌별로 유행하는 색상과 디자인을 입혀 상품을 개발한다. 유니클로 관계자는 “유니클로의 옷은 세부 디자인으로 포인트를 주기보다는 여러 제품을 조합해 레이어드 스타일링(Layered styling·여러 겹을 겹쳐 입는 것) 하는 것이 좋다”고 설명했다. 유니클로는 ‘히트텍’과 같은 기능성 제품의 선풍적인 인기로 인지도를 높인 바 있다.

신성통상이 지난해 5월 론칭한 국내 SPA브랜드 탑텐도 주목할 만하다. 탑텐은 감각적인 기본 의류 상품 10가지를 합리적으로 판매한다는 의미에서 지어진 이름이다. 유니클로처럼 다양한 기본 아이템을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어 인기를 끌고 있다. 탑텐의 의류는 크게 다양한 색상의 기본 디자인 상품으로 구성된 라인과 독특한 그래픽 티셔츠 라인 등으로 분류된다.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의 탑텐 매장을 자주 이용한다는 대학생 추다솜씨는 “다양한 색상, 다양한 소재의 기본적인 아이템을 살 수 있어서 좋다”면서 “지갑, 액세서리, 가방, 신발 등을 한 곳에서 볼 수 있는 것이 장점”이라고 말했다.

자라의 특징은 신상품이 1~2주마다 입고될 정도로 매우 신속하게 공급된다는 것. 일반적인 패션업체들이 계절에 맞춰 신상품을 선보이는 것에 비해 월등히 빠른 속도다. 유행에 민감하게 반응해 빠르게 디자인을 결정하고 생산·공급한다. 또한 자라는 전 세계 매장의 판매·재고 데이터를 분석해 시장에서 가장 인기 있는 제품을 파악하고 생산과 연결시킨다. 빠르게 변하는 트렌드를 따라잡는 비결이다. 패션업계에서는 일주일에 한 번씩 자라 매장을 방문하면 전 세계적인 패션 트렌드가 어떻게 변하는지 알 수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스페인에 본거지를 둔 자라는 1975년 론칭돼 유니클로와 마찬가지로 1990년대 급성장했다. 현재 77개국에 2000여개의 매장을 두고 있다. SPA브랜드라는 점에서 유니클로와 같지만, 가격대는 조금 다르다. 자라는 고가의 패션 브랜드 제품보다는 저렴한 편이지만, 타 SPA브랜드의 제품보다는 비싼 편이다.

지난 2008년 서울 명동에 1호점을 낸 포에버21은 ‘패스트 패션’답게 유행을 빠르게 제시하며 젊은 여성들의 패션 라이프스타일을 만드는 데 주력하는 브랜드다. 20대 여성을 타깃으로 한 의류 제품들이 유행에 맞춰 빠르게 회전된다. 포에버21의 옷은 세련됨, 발랄함, 유러피안 감성을 주 콘셉트로 한다. 신발과 핸드백, 벨트, 헤어소품 등 패션을 완성하는 아이템들을 함께 판매하고 있다.

지난해 2월 론칭한 제일모직의 SPA브랜드 에잇세컨즈. 자라보다는 저렴하면서 유니클로보다는 트렌디한 제품을 판다는 전략이다.
지난해 2월 론칭한 제일모직의 SPA브랜드 에잇세컨즈. 자라보다는 저렴하면서 유니클로보다는 트렌디한 제품을 판다는 전략이다.
에잇세컨즈·스파오·미쏘,
한국인의 체형·선호도·피부색 고려한 디자인으로 승부


기본적 디자인의 캐주얼을 선보여 왔던 미국의 SPA브랜드 갭은 최근 들어 트렌드에 초점을 맞춘 트렌디 캐주얼 제품을 내놓고 있다. 강렬한 색상으로 포인트를 주는 콘셉트나 슬림핏 등 선호도가 높은 스타일의 옷을 생산하는 것. 20~30대를 주 타깃으로, 30~40대를 서브 타깃으로 구분해 젊은 세대부터 직장인 세대를 아우른다.

2010년 국내에 1호점을 오픈한 이래로 매년 200억원 이상의 매출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H&M 역시 주목 받고 있는 해외 SPA브랜드 중 하나다. 세계 51개국에 2800여개 매장을 두고 있어 자라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규모다. H&M의 의류 제품은 지속가능한 소재로 생산된 것이 특징이다. 유기농 면, 재생 면을 사용해 환경을 보호하는 옷이라는 것. 또한 타 브랜드보다 아동 의류 상품이 많다는 것이 장점이다. IFC몰 H&M 매장에 쇼핑을 나온 한 주부는 “한 곳에서 내 옷과 아이의 옷을 함께 고를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H&M 관계자는 “여성, 남성, 청소년, 아동 의류뿐만 아니라 신발, 액세서리, 속옷, 홈 텍스타일(목욕 타월, 쿠션 커버 등)까지 모든 이들을 위한 다양한 컬렉션을 선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국내 패션 시장은 경기 불황과 트렌드세터(trend-setter·유행을 선도하는 사람, 기업)의 부재, 유통 구조의 한계 등으로 정체되어 있는 상황이다. 삼성패션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연이은 해외 SPA브랜드들의 국내 진출로 2008년부터 2011년까지 한국 패션브랜드의 평균 성장률이 3.9%에 그친 반면, 해외 SPA브랜드는 평균 성장률 56%를 기록하며 고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이런 해외 SPA브랜드 공세에 맞서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치는 브랜드가 제일모직의 에잇세컨즈다. 에잇세컨즈는 지난해 2월 신사동 가로수길에 1호 매장을 오픈하고 연내 매장 수를 13개로 늘렸다. 지난해 목표 매출인 600억원을 달성하고 순항 중이다.

에잇세컨즈는 ‘자라보다는 저렴하지만, 유니클로보다는 트렌디한 제품’을 판다는 전략이다. 또한 해외 SPA브랜드의 신상품 회전 속도에도 뒤지지 않는 생산 시스템을 갖춰 인기상품의 경우 기획부터 매장 판매까지 1주일 만에 준비가 가능하다. 또한 국내 SPA브랜드로서 한국인의 체형이나 선호도를 반영한 제품을 내놓고 있다. 패션트렌드연구소 인터패션플래닝의 황선아 책임연구원은 “해외 SPA브랜드들이 고려하기 어려운 한국인의 체형을 세세하게 분석해 맞춤 의류 상품을 내놓을 수 있다는 것이 국내 SPA브랜드들의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이랜드가 론칭한 SPA브랜드 스파오와 미쏘도 꾸준히 인기를 모으고 있다. 스파오는 유니클로를 겨냥한 베이직 캐주얼 콘셉트다. 스파오 색상연구팀이 한국인의 피부에 잘 어울리는 색상을 엄선해 옷을 제작한다. 미쏘는 남성과 여성을 모두 타깃으로 하는 스파오와는 달리 유행을 선도하는 여성들을 위한 콘셉트로 옷을 생산하고 있다. 이랜드는 지난 3월 일본에 진출한 미쏘에 이어 지난 7월12일 스파오 1, 2호점을 일본에 동시 오픈한 바 있다. 이랜드 측은 오픈 당일인 12일과 13일 양일간 1, 2호점 매출 합계가 2억3000만원이라고 밝혔다. 패션 업계는 “유니클로의 본 고장인 일본에서 국내 SPA브랜드가 안착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인 사례”라고 설명했다. 

유니클로는 저가 정책과 다양한 기본 의류 상품 공급으로 SPA시장에 성공적으로 자리잡았다(위). 갭은 20~30대를 주 타깃으로 해 슬림핏 또는 강렬한 색상으로 포인트를 준 트렌디 캐주얼을 선보이고 있다.
유니클로는 저가 정책과 다양한 기본 의류 상품 공급으로 SPA시장에 성공적으로 자리잡았다(위). 갭은 20~30대를 주 타깃으로 해 슬림핏 또는 강렬한 색상으로 포인트를 준 트렌디 캐주얼을 선보이고 있다.
SPA브랜드별 특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