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화가 존 트럼벌이 그린 그림 ‘파울루스의 죽음’. 파울루스 로마군 사령관은 칸나에 전투에서 카르타고군에 패해 목숨을 읽었다. / 위키피디아

서양 전쟁사에서 위대한 전술가가 되고 싶은 사람이라면 반드시 연구하는 장군이 한니발이다. 칸나에 전투는 한니발을 그런 위대한 전술가로 만들어준 전투이며, 어떤 위대한 장군이라도 평생 한 번 이루기 힘든 전투다.

기원전 216년 8월 2일, 이탈리아 중부 칸나에 평원에서 벌어진 이 전투에서 한니발은 약 5만명의 병력으로 8만명의 로마군을 상대했다. 카르타고군은 6000명이 사망했지만, 로마군은 5만명에서 7만명이 사망하고, 나머지는 포로가 됐다. 로마군 사령관도 모두 전사했다. 전력이 불리한 상황에서 승리를 거두기도 힘들지만, 한 번의 전투로 적의 전력을 이렇게 완벽하게 제거한다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전술이 전투에서 얼마나 대단한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가를 보여준 사례다.

로마군은 이전에 한니발에게 패배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카르타고군과 자신의 장단점을 철저히 분석하고 맞춤형 전술을 마련했다. 로마군은 보병 특히 중무장 보병에 의한 중앙부 접전에서는 자신들이 절대 우위라고 분석했다. 카르타고 보병의 정예인 아프리카 보병은 강했지만, 갈리아와 에스파니아 보병은 상대적으로 약했다. 그런데 이들의 수가 거의 3분의 2였다. 양익에 배치하는 기병은 카르타고가 1만명, 로마군이 6000~7000명으로 열세였다. 기병의 질도 카르타고군이 우세했다.

이런 분석에 따라 열세인 로마군 기병은 방어에 주력하면서 카르타고 기병의 전진을 최대한 저지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카르타고 기병을 저지하는 동안에 우세한 중앙부에서 카르타고군을 격파하고 승부를 결정짓겠다는 전략이었다.

로마군은 이런 방침에 따라 실행 방안을 짰다. 로마군은 보병을 평소보다 더 좁은 간격으로 중앙에 배치해서 단단히 집중시켰다. 원래 로마군은 그리스의 중무장 보병대보다 단위를 작게 하고, 중대 간격은 약간 거리를 둬 배치했다. 융통성과 응용력을 높이기 위해서였는데, 이때는 중앙에서 압도적이고 신속하게 승리를 거두기 위해 병력 밀도를 높인 것이다. 적의 울타리를 부수려면 더 단단한 몽둥이로 일격을 가해야 한다는 전술이었다. 기병 전력이 열세라는 일말의 불안감을 지우기 위해 로마군은 중기병 전투가 예상되는 우측에 강을 끼고 포진했다. 덕분에 카르타고 중기병은 우회 공격이 불가능했고 무조건 강과 보병대 사이의 좁은 공간에서 로마 중기병에 맞서 정면 돌파를 감행해야 했다.

지형에 대해서는 좀 더 강조할 필요가 있다. 자신의 군대와 전술 전개에 유리한 지형을 선점하고 적을 끌어낸다면 이미 승리의 절반 이상을 거둔 것이나 마찬가지다. 로마는 적 기병의 돌격을 약화시키고, 보병의 전투력을 100% 발휘할 수 있는 지형을 선점했다. 바보가 아니라면 이런 곳에서 자신보다 우세한 적과 싸울 리 없다. 이럴 때 필요한 조건이 적이 싸우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다. 로마군은 이 상황, 한니발이 칸나에에서 싸우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을 만드는 데도 성공했다. 적어도 로마군 스스로는 그렇게 믿었을 것이다.

우리가 결과를 모르고 당시 로마군의 상황 분석과 전술 개요를 브리핑받았다면 대부분 전술이 완벽하다고 말할 것이다. 로마군은 적의 장점과 단점을 정확히 분석하고, 자신들의 장점을 살리고 단점을 보완하는 전술을 고안했다. 전술을 시행할 지형도 최적이었다. 적을 알고 나를 아는 지피지기의 수준이라고 할 만했다.

로마군 사령관 바로가 살아남아 기록을 남겼다면 카르타고군이 로마군 전면에 등장했을 때, 쾌재를 불렀다고 말했을 것이다. 한니발이 정예 아프리카 보병을 양익에 두고 약체인 갈리아 보병을 중앙에 배치했기 때문이다. 바로의 입장에서 보면 유리 대형이었다. 한 번 내려치면 깨져버릴 정도였다.

그러나 이것이 함정이었다. 로마군이 전진하자 카르타고 중앙부는 후퇴하고 양익은 전진해서 로마군을 감쌌다. 로마군은 항아리에 갇힌 상황이 됐고, 강력한 아프리카 보병이 양쪽에서 압박해오자 점점 더 제약을 받았다. 너무 과밀했던 안쪽의 로마군은 칼을 뽑을 수 없을 정도로 병사들의 몸이 밀착됐다. 이때부터 전쟁사에서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카르타고군이 양파껍질 벗기듯이 로마군을 한 줄 한 줄 벗겨내기 시작한 것이다. 그동안 안쪽의 로마병들은 만원버스에 갇힌 사람들처럼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서 있어야 했다.

로마군의 또다른 사령관 파울루스의 중기병은 최선을 다했지만, 보병이 무너지면서 더 이상 견뎌내지를 못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로마군 좌익의 경기병이 패주하자 카르타고 기병이 뒤로 돌아가 공격했다.

기병은 붕괴되고 보병은 몰살당했다. 탈주도 불가능했다. 평원에서 보병이 기병의 추격을 따돌리는 것은 불가능했고 숨을 곳도 없었다. 밤 늦게까지 처참한 사냥과 살육이 이어졌다.

로마군의 지피지기 전략은 어디서부터 잘못됐던 것일까. 상대의 창의적 대응을 예상하지 못한 것이 패착이었다. 우리가 벽돌을 분석한다고 해서 건축가가 벽돌로 건축할 건물의 모양까지 예측할 수는 없다. 건축가가 늘 같은 소재로, 같은 모양의 집만 짓는다면 우리는 마당에 벌여 놓은 자재만 보고도 어떤 집을 지으려는지 예측할 수 있다. 그러나 상대가 한니발이라면 그런 식으로 예상해선 안 된다.


가변적인 요소도 고려해야

그러면 상대의 대응을 어떻게 예상해야 할까. 쉽지 않다. 지피지기를 말한 손자도 상대 지휘관의 예지까지 예측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단 어리석은 지휘관이라면 다르다. 그러므로 전쟁에서 이기려면 먼저 상대 지휘관의 수준부터 파악해야 한다.

상대가 유능한 지휘관이 아니라도 요즘처럼 급변하는 세상에서 지피지기의 한계는 명확하다. 즉 21세기에는 한니발이 없어도 적장이 한니발인 것처럼 준비하고 대응해야 하는 시대가 됐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바로는 치명적인 실수를 했다. 상대방과 자신의 장단점을 분석하고 전술을 짰는데, 그 전술의 장단점은 분석하지 않은 것이다. 그는 신속한 중앙 승부에 집착해서 예비대를 두지 않았고, 병력을 밀집시켜 응용력과 융통성을 발휘할 여지를 없애 버렸다. 과도한 자신감 때문이었을까. 아니다. 그 반대다. 자신감이 결여된 리더일수록 가변적인 요소를 두려워하고, 모든 상황이 자신이 알고 있는 수준, 자기 능력의 한계 안에 있기를 원한다. 결국 전술은 더 경직되고 왜곡된다.

리더가 된다는 것, 훌륭한 전술을 구사한다는 것은 가변적인 요소에 대응하는 용기와 능력을 키우는 과정이다. 상황을 자신의 두뇌 안에 욱여넣느냐, 자신의 능력이라는 배로 상황이라는 바다에 뛰어드는 항해자가 되느냐 이것이 명장과 졸장을 구분하는 명확한 기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