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16을 만들어 거부가 된 유진 스토너(왼쪽)와 역사상 가장 많이 생산된 AK-47을 개발했지만 지식재산권을 보호받지 못했던 미하일 칼라시니코프. 사진 위키피디아
M16을 만들어 거부가 된 유진 스토너(왼쪽)와 역사상 가장 많이 생산된 AK-47을 개발했지만 지식재산권을 보호받지 못했던 미하일 칼라시니코프. 사진 위키피디아

다른 동물들에 비해 육체적으로 약했던 인류가 지구의 지배자가 되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것은 무기다. 처음에는 자위용, 사냥용으로 사용된 무기는 어느덧 전쟁의 승패에 영향을 가장 많이 끼치는 요소가 됐다. 인류가 최초로 사용한 무기는 돌처럼 자연에서 구한 것이었으나 지금은 전부 공산품이다.

예를 들어 100년 전에 탄생한 영국의 ‘Mk I’과 현재 배치 중인 국산 ‘K2 흑표’는 단지 전차라는 분류만 같을 뿐, 전혀 다른 별개의 무기라고 봐도 될 만큼 성능의 차이가 크다. 무기의 발달에 힘입어 현대 보병 사단의 작전 영역은 100년 전의 제1차세계대전 당시보다 4배 이상 커졌을 정도다. 이 때문에 병력의 수는 옛날처럼 전투의 승패를 가르는 데 중요한 요인이 아니다.

무기는 일일이 거론할 수 없을 만큼 종류가 많다. 그중 소총은 군에서 기본적으로 사용하는 무기다. 화약이 탄생한 시점과 소총이 만들어진 시점이 비슷하다. 그만큼 소총은 역사가 길다. 그런데 의외로 변화가 그다지 많지 않은 무기이기도 하다. 150여 년 전에 총열에 강선을 새기고 탄피로 감싼 탄환을 총구 뒤쪽으로 넣어서 발사하는 후미장전 방식의 소총이 탄생한 후 기본 메커니즘은 현재까지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19세기 말 개발된 볼트액션(총을 쏜 이후 총신 뒤의 볼트를 손으로 후퇴시키며 탄피를 빼내고 다시 손으로 밀어넣어서 장전하는 방식) 소총은 인류사 최대의 전쟁이었던 제1·2차세계대전 당시에 모든 군대가 주력으로 사용했던 무기다. 이 소총은 지금도 저격용으로 애용되고 있다. 오늘날 군은 물론 무장 테러 단체나 갱단까지도 보유하고 있는 자동소총도 70여 년 전인 제2차세계대전 말기에 탄생한 오래된 메커니즘을 이용한다.

이처럼 19세기 이후 지금까지 소총의 변화는 크지 않았다. 같은 기간 통신에서는 큰 변화가 있었다. 사람이 직접 찾아가서 소식을 전달하는 방식에서 전 세계를 하나로 묶어버린 인터넷이 등장하며 완전히 새로운 시대로 바뀌었다.


M1911을 면허 생산하면서 슬라이드에 콜트가 원작자임을 새긴 콘스베르 그루펜의 M/1914 권총. 사진 위키피디아
M1911을 면허 생산하면서 슬라이드에 콜트가 원작자임을 새긴 콘스베르 그루펜의 M/1914 권총. 사진 위키피디아

지식재산권 덕에 巨富된 美 개발자

오래전에 개발됐는데도 지금도 사용하는 데 문제가 없다는 사실은 총에 적용된 기술이 그다지 복잡하거나 어려운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래서 중화기와 달리 어지간한 국력을 보유한 국가라면 소총은 스스로 만들어 사용했다. 이 때문에 소총은 종류가 대단히 많다. 그중에서도 무기의 역사에 한 획을 그은 뛰어난 소총은 또 따로 있다.

그중 ‘AK-47’과 ‘M16’은 제2차세계대전 후 탄생한 자동소총 중 단연코 가장 훌륭한 소총으로 손꼽을 수 있는 걸작들이다. 1947년 소련에서 개발된 AK-47은 내구성이 뛰어나고 정비가 용이했다. 게다가 이 소총은 화력까지 강해 가장 좋은 소총의 대명사가 됐다. 미국의 M16도 베트남 전쟁을 계기로 서방권을 대표하는 주력 소총으로 자리 잡았다. M16은 AK-47의 라이벌로 꼽히는 소총이었다.

하지만 두 모델을 경쟁자로 꼽기에는 생산량의 차이가 너무 컸다. AK-47은 파생형까지 포함해 총기 역사상 최대인 약 1억 정 정도 생산됐지만 M16과 파생형은 800만 정 정도만 제작됐기 때문이다. 만일 일반 상업 제품에서 이 정도의 격차가 났다면 경쟁자라고 할 수 없다.

두 모델이 라이벌 구도로 자리잡을 수 있었던 이유는 소련(AK-47)과 미국(M16)이라는 생산지 때문이었다. 냉전이라는 시대적 배경 덕에 두 소총에 두 나라를 대입해서 생각했던 것이다.

동구권과 서구권을 대표하는 두 소총의 생산량이 이처럼 차이가 커진 이유는 지식재산권을 대하는 두 문화권의 인식 차이 때문이다. 서방과 경제적 개념이 다른 소련에서 탄생한 AK-47은 동맹국과 우방국 원조의 일환으로 복제품 제작에 아무런 제약을 걸지 않았다. 정확한 생산량을 집계하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여러 곳에서 복제품이 마구 만들어졌다. 이 때문에 소총의 품질도 천차만별이다.

M16도 미국을 비롯해 서방에서 많이 사용된 소총이었지만, AK-47과는 달리 지식재산권이 엄격하게 보호받았다. 대우정밀처럼 정식으로 면허(기술협력에 의해 생산 권한을 양도받는 것)를 받은 곳만 제작할 수 있었다. M16을 만든 유진 스토너는 거부(巨富)가 됐다. 하지만 AK-47의 개발자 미하일 칼라시니코프는 영웅 칭호를 얻고 국가로부터 훈장을 받는 데 그쳤다.

무기의 세계에서 지식재산권은 상당히 중요하다. 현재 미국 총기회사인 ‘콜트’는 국군의 제식 소총인 K2가 M16을 무단 복제한 것이라며 소송을 제기해 재판을 벌이고 있다.

그런데, 지식재산권에 대한 원칙이 전시에도 제대로 지켜질 수 있을까. 한창 전쟁 중인 나라라면, 좋은 무기에 대한 열망이 클 것이다. 만약 성능 좋은 무기가 있다면 개발자에게 허락을 받지 않고 무단 복제할 가능성이 높다.

서구권에서는 비록 교전 중인 상대일지라도 저작권을 분명히 표시했던 사례가 있었다. 미국 콜트의 M1911 권총이 그 예다. 이 권총은 많은 나라에서 면허 생산을 했을 만큼 성능이 좋았다. 노르웨이의 방산업체 ‘콩스베르그 그루펜’도 그렇게 콜트의 허락을 받아 노르웨이 군경용 M1911(제식명 M/1914)을 생산했다. 그런데 제2차세계대전 때 독일이 노르웨이를 점령하고 콩스베르그 그루펜의 시설을 이용해 독일군용 M1911(제식명 P657(n))을 생산했다.

독일군은 당시 콜트와 계약을 새로 맺거나 로열티를 지불하지 않았다. 더구나 1942년 이후 미국은 독일의 교전 상대였다. 하지만 독일은 독일육군병기국의 관리하에 제작한다는 표식을 새롭게 새겨 넣은 것을 제외하고 콜트가 이 총기의 원저작자라는 문구는 그대로 남겨 놓았다. 비록 경제적인 대가를 지불하지 않았지만 권리관계는 명확히 표시했다.

이는 현재 중국이 지식재산권 보호를 등한시하는 것과 확실히 비교된다. 중국은 방송국들마저 프로그램의 구성을 그대로 베끼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은 나라다. 지식재산권을 존중하지 않는 중국의 관행은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무역 불균형과 더불어 가장 불만을 품고 있는 부분이다. 이런 태도로는 중국이 성장을 계속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권리관계를 확실히 하는 것은 최소한의 예의이자 권리다. 중국이 이런 국제 사회의 규범을 언제까지 무시할 것인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