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진 우아한형제들 대표는 매주 화요일 점심 직후‘우수타(우아한 수다타임)’ 시간을 갖는다. 김 대표가 직접 직원들 앞에서 경영 이슈를 설명하고 질문을 받는 자리다. 사진 우아한형제들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대표는 매주 화요일 점심 직후‘우수타(우아한 수다타임)’ 시간을 갖는다. 김 대표가 직접 직원들 앞에서 경영 이슈를 설명하고 질문을 받는 자리다. 사진 우아한형제들

미국 민주당 유력 대선 후보인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이 올해 3월 초 아마존·구글·페이스북의 해체를 주장해서 화제다. 미국 정부가 공룡이 돼버린 정보기술(IT) 기업을 견제하는 일은 이전에도 있었다. 비록 항소심에서 뒤집어지기는 했으나, 2000년에는 마이크로소프트를 둘로 나누라는 판결도 있었다. 이처럼 정치권을 포함한 규제 당국이 긴장할 정도로 IT 기업들은 빠르게 성장했다.

이들 초대형 IT 기업에는 그 시작이 스타트업이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스타트업은 창업 초기 기업을 일컫는 말로, 투자자의 돈을 써가며 수익에 연연하지 않고 빠른 성장에 집중한다는 특징이 있다. 이들의 성공은 1990년대 닷컴 붐에 이은 제2의 스타트업 붐을 불러왔고, 스타트업을 검증된 사업모델로 인식시켰다. 대규모 인수·합병(M&A)을 통한 초고속 성장으로 스타트업 창업자들과 초기 투자자들은 신흥 갑부의 반열에 올랐다.

국내 스타트업 붐은 지난 정권의 창조경제 바람을 타고 일어났다. 정책 입안자들은 스타트업이 일으키는 고용에 주목했고 실업자 대책으로 활용했다. 대기업과 중견기업은 그들의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돌파력에 주목해 투자와 인수 대상으로 삼았다. 기존 기업들의 경영 방식에 만족하지 못한 젊은이들은 퇴사한 뒤 스타트업을 창업했다. 이들은 새로 만든 회사에 수평적 조직문화를 도입했다. 그리고 이 문화는 불합리한 수직적 상명하복 분위기에 시들어가던 20·30세대 직장인의 희망이 되었다.

기업의 문화는 창업자가 만들고 리더 그룹에 의해 다듬어진다. 에드거 샤인 MIT 경영대 교수는 ‘문화와 리더십은 동전의 앞·뒷면 같은 관계로 기본적으로 같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샤인 교수는 조직문화의 대가로 국내에서는 ‘경력닻’이라는 개념을 소개한 것으로 유명하다. 경력닻이란 사람들이 직업과 직장을 전전하면서도 포기하지 않는 개인의 정체성을 지칭한다.

‘배달의민족’이라는 음식 배달 플랫폼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은 매주 화요일 점심 직후 ‘우수타(우아한 수다타임)’ 시간을 갖는다. 김봉진 대표가 직접 직원들 앞에서 경영 이슈를 설명하고 질문을 받는다. 1100만 명이 사용하는 ‘토스’를 서비스하는 금융 스타트업 ‘비바리퍼블리카’는 금요일 오후 1시에 전 직원 미팅 시간을 갖는다. 직원 100여 명이 모여 이승건 대표와 대화를 나눈다. 두 달째 빌보드 차트에 ‘상어가족’을 올리고 있는 ‘핑크퐁’ 캐릭터의 ‘스마트스터디’도 전 직원이 모여 회의하는 문화가 있다. 밀레니얼 세대가 원하는 투명한 경영과 격식 없고 캐주얼한 문화를 구현하는 방편이다.

조그만 회사들이니까 그럴 수 있는 거라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우아한형제들은 직원이 1000명을 넘고, 지난해 12월에는 글로벌 벤처캐피털(VC)로부터 회사 가치를 3조원으로 인정받고, 3600억원을 투자받은 회사다. 현재 기업 가치로만 따져보면 신세계나 삼성증권 급인데 그 정도 회사 대표들이 매주 직원들 앞에 서서 경영 이슈에 대해 계급장 떼고 토론할 수 있을까.

스타트업 문화의 또 다른 특징은 유연함이다. 우선 호칭에 유연하다. 영어 닉네임으로 서로를 부르는 ‘카카오’, 한글이든 영어든 개의치 않고 그냥 별명으로 부르는 스마트스터디도 있으나 대부분은 직급 없이 이름 뒤에 님만 붙인다. 그들은 근태에도 유연하다. 앞에서 토스 직원들이 주례 회동을 할 때 100명가량 모인다고 적었는데, 전 직원은 200명쯤 된다. 불참한 직원들은 재택근무자다.

스마트스터디는 2015년 메르스 사태 때, 회사 문을 닫고 한 달 동안 재택근무를 했다. 우아한형제들은 설립 후 7년간 인사부서 없이 지내다가 직원 수가 수백 명이 넘자 비로소 인사 담당 임원을 스카우트해서 팀을 꾸렸다. 그동안 피플팀이 직원들을 가족처럼 챙겼다고 한다.


나이와 직급 기반의 수직구조가 스타트업에서는 자리 잡기 어렵다.
나이와 직급 기반의 수직구조가 스타트업에서는 자리 잡기 어렵다.

“어른답게 놀고, 어른답게 일해”

디지털 사회에서 지식노동자의 직무 평가는 근무 시간에 비례하지 않고 창의적 아이디어와 결과물의 질로 결정된다. 각 구성원의 높은 직무 몰입도가 필수다. 가장 컨디션 좋은 시간에, 자신이 원하는 공간에서 주위의 방해를 최소화하며 일하는 것이 너무 당연하다.

기성세대가 보면 걱정스러울 정도로 방임형인 기업 문화를 만들고 실천하는 스타트업 대표의 철학은 무엇일까. 이승건 대표는 “직원들이 일에 몰입하는 것을 방해하는 요소를 제거하는 데 있다”고 말했다. 비바리퍼블리카가 임직원이 금전적인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도록 1억원 무이자 대출을 제공하고 휴가를 자유롭게 쓸 수 있도록 해주는 이유다.

김민석 스마트스터디 대표는 스타트업 문화에 대한 발표에서 “사람은 누구나 목표가 있고 더 잘하고 싶어하기 때문에 조직은 잘하려는 사람을 간섭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회사를 “어른답게 놀고 어른답게 일하는 곳”이라고도 표현했다. 김 대표는 일반 기업이라면 사규로 규정지었을 행위를 소통으로 풀었다. 휴가를 가려면 상급자의 승낙을 받는 게 아니라, 나의 부재로 불편이 예상되는 동료에게 메일로 알려주고 대리인을 지정하는 방식으로 정했다. 휴가 일수에도 제한을 두지 않는다. 이런 회사를 다닌다면 자기가 존중받고 있다고 느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리더의 철학은 가치관의 모습으로 사내에 공유돼 문화로 자리 잡는다. ‘세상에 의미 있는 변화를 주기 위해 일한다’는 토스가 사회공헌형이라면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며 즐겁게 일하자’는 배달의민족과 ‘사람은 문제해결 능력이 있으니 스스로 풀게 두자’는 스마트스터디는 인간 존중형이다.

우리 사회를 공고히 지배해온 나이와 직급 기반의 경직된 수직구조가 왜 스타트업 동네에서는 수평문화로 바뀌었을까. 가장 큰 이유는 대기업과 달리 스타트업들은 회사가 지닌 파워에 비해 구성원들이 지닌 인적 자본 요소가 더 강하기 때문이다. 대기업에는 수십 년간 축적된 브랜드와 기술, 정부의 면허 등이 있다면 스타트업은 직원들밖에 없다. 주요 구성원의 이탈은 스타트업의 사활이 걸린 문제다. 이렇게 귀한 직원들을 함부로 대하는 권위적 리더십이 들어서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또 다른 이유는 스타트업에 모인 사람들의 성향이 불합리한 관행에 순종하기 힘든 위험 감수형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대기업이나 다국적 기업, 글로벌 컨설팅 회사를 나와 스타트업을 시작했다. 큰 건물의 벽돌로 살아가는 데 만족할 수 없는 이들이 창업하면서, 본인들이 좋아하는 유연한 문화를 구축했고 이것을 ‘쿨하게’ 여기는 20·30세대가 유입되었다. 유학생 출신들이 스타트업에 특히 많은 이유다.

2015년부터 작년까지 4년 동안 약 5000개 스타트업이 벤처캐피털로부터 10조원에 가까운 투자를 받았다. 그 어려운 투자를 받았다 해도 스타트업의 속성상 성공보다는 실패 가능성이 더 크다. 그래도 실패가 자산으로 인정받는 문화라, 망한 회사 직원들도 새로 팀을 짜서 창업을 한다. 동료를 존중하고 상대방의 의견을 청취하는 연습을 이전 직장에서 했으니 새로운 회사도 그렇게 운영될 것이다. 인간 중심의 조직문화를 만들어 가는 것은 공익광고 캠페인이 아니라 스타트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