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도시라 해도 손색없는 산의 사원들. <사진 : 이우석>
공중도시라 해도 손색없는 산의 사원들. <사진 : 이우석>

하늘을 절반으로 가른 산과 공중 사원, 중국 산시성, 핑야오 고원 여행.

한국인들에겐 낯설지만 산시성(山西省)은 중국 대륙의 한복판으로 한족의 생활 중심지 중 한 곳이다. 당의 수도 시안(西安)이 있는 산시성(陝西省)과 발음이 비슷해 많이 헷갈리는 곳이기도 하다. 산시성(陝西省)이 비단길 실크로드의 시발점(혹은 종착역)이라면 이곳 산시성(山西省)은 국수(麵)가 생겨나 전파된 ‘누들로드(Noodle Road)’의 시발점이다.

두 곳의 산시성은 모두 결국 중국, 아니 인류 문명의 시원을 찾아볼 수 있는 곳으로 그 의미가 깊다.

산시성은 중국 한족 문화의 중심이다. 황허 문명이 태동하고 춘추(春秋)시대의 12열국(列國) 중 진(晋)이 있던 곳이다. 타이항(太行)산맥의 서편에 위치했다고 해서 그런 이름(山西省)이 붙었다.


고대 전통문화 그대로 남아 있어

대대로 중국 역사상 가장 중요한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수많은 전란을 겪은 곳이기도 하다. 북방 유목 민족들이 대륙을 정벌하기 위해 남하하려면 만리장성 아래 산시성을 거쳐야 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나긴 역사와 지리적 특성들은 산시성을 가장 중국다운 곳으로 여겨지도록 하는 요인이 됐다. 깎아지른 협곡과 평원 사이, 오롯이 남은 고대 문명과 그곳에서 대대로 살고있는 사람들이 지켜오고 있는 전통문화는 상하이나 베이징에선 결코 맛볼 수 없는 중국의 진면목이다.

산시성의 성도는 타이위안(太原). 바다와 수천리 떨어진 내륙 중 내륙이다. 흐린 하늘, 뿌연 시야, 과연 중국 대륙의 하늘이다. 공항에서 약 2시간 떨어진 제슈(介休)에는 몐산(綿山·2567m)이 있다. 이곳은 중국 춘추시대의 충신 개자추(介子推)의 전설(한식절)이 서린 곳이다. 해발 2000m의 아찔한 절벽을 깎아만든 길을 고불고불 돌아오르는 험준한 산악 협곡지대다. 부벽준의 필법으로 그려낸 듯 잘린 절벽으로 가득한 산세는 ‘중국판 그랜드캐니언’이라 불러도 결코 모자라지 않을 듯 깊은 계곡을 사이에 두고 고산준령들이 마주 보고 섰다.

과연 허벅살을 베어 주군을 봉양한 개자추가 홍진의 더러운 논공행상을 벗어나 노모를 모시고 숨어든 이상향으로 손색없다. 한국에도 한식절(寒食節)의 유래로 잘 알려져 있듯, 몐산에 숨어살던 개자추는 자신을 만나기 위해 산에 불을 지른 주군(진문공)에 의해 불에 타죽었다. 그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 남아있는 이 바위투성이 산에는 그래서 충효사상을 미덕으로 삼는 유교의 정신이 서릿발처럼 서려있다. 불교와 도교 역시 신령한 몐산을 지나치지 않았다. 2000m가 넘는 절벽의 한복판에 불교와 도교 사원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산시성에서 인기 있는 국수 요리. <사진 : 이우석>
산시성에서 인기 있는 국수 요리. <사진 : 이우석>

도시 전체가 거대한 무협영화 세트장

규모도 결코 작지 않다. 하늘에 세운 도시같다. 절벽에 붙어 하늘 높이 선 도교사원 다뤄꿍(大羅宮)과 절벽에 붙어 길게 이어진 천교, 불교 고찰 윈펑사(雲峰寺), 불·도교의 사제 12구의 등신불이 안치된 정궈사(正果寺) 등 가는 곳마다 얽힌 역사와 전설이 가득하다.

수직으로 뻗은 계단과 산길은 많지만 그리 힘들지 않다. 해발이 높아 한낮에도 선선할 뿐 아니라, 아주 높은 곳은 엘리베이터의 힘을 빌려 비교적 쉽게 오를 수 있다. 이러한 기계장치는 1995년 한 투자가가 몐산을 복원(?)하면서 함께 설치한 것이다. 누가 보면 ‘파괴’라고 할 법하지만, 만약 길이 쉽게 나지 않았다면 우리는 이 명산과 유적을 아예 못 보고 살았을 것이라 생각하니 그나마 용서가 된다.

정말 거대한 중국 무협영화 세트장 같다. 도시 전체가 그렇다. 산시성이 자랑하는 또 하나의 명소인 핑야오(平遙)고성 얘기다. 2500년 전에 지어지기 시작해 명·청시대에 부흥했던 성 하나가 오롯이 남았다. 핑야오고성은 그저 박물관과 같은 문화재(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가 아니다. 현대에도 중국인들이 여전히 그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몐산에서 차로 약 1시간 정도 이동하면 황톳빛 고성을 만날 수 있다. 성벽 둘레만 해도 6㎞가 넘고 여의도의 약 5배에 달하는 넓은 성안 마을이다. 고스란히 남아있는 민가 4000채는 거대한 시장과 무려 50만명이 모여 사는 주거촌을 형성하고 있다.

원래 침략이 잦던 땅에 살던 산시성 사람들은 소금과 포목, 염료, 식량을 교환하는 장사에 능해, 중국에서 가장 셈에 밝다는 진상(晋商)의 명성을 이어왔다. 그래서 지금 봐도 규모가 큰 시장을 고성 안에 두고 살았는데, 시장은 옛 모습 그대로 현대 관광객들에게 인기있는 명물거리가 됐다. 각종 물건을 파는 상점과 식사와 숙박을 겸한 객잔, 중국 최초의 중세은행 등 오랜 건축물들이 사방 2㎞ 가까운 거리와 골목을 형성하고 있고, 입구에는 시장을 감독하는 시루(市樓)가 여전히 우뚝 서서 관광 전망대 역할을 하고 있다.

거리는 낮이나 밤이나 찬찬히 뜯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옛 건물에선 여러가지 공예 장식품을 팔고 있는데 그 모습이 꼭 인사동 같다. 면의 고장 산시성답게 다양한 국수요리도 싼값에 맛볼 수 있고, 노점에 앉아 지나가는 이들을 구경하며 고장 특산술 펀주(汾酒)를 한잔씩 들이키며 밤문화도 즐길 수 있다.

‘밤드리 노니다’ 지치면 객잔에 와서 잠을 청한다. 객잔(客棧)은 현대적 호텔과 의미가 다르다. 술과 음식을 파는 곳에서 하루 쉬어가는 곳이니만큼 주막에 가깝다. 성안에는 오랜 객잔이 많다. 무협지처럼 자객이 기와지붕을 뛰어다닐 법한 객잔의 정원에 앉아 달을 보니 그동안 다녔던 중국은 과연 어느 나라였나 싶다.


▒ 이우석
성균관대 미술교육학과, 여행기자협회 회장, 14년째 여행·맛집 전문 기자로 활동 중


여행수첩

지역정보 산시성은 연 강수량 350~700㎜로 건조하며 기온은 한국과 비슷하다. 대신 산 등 고산지대는 일교차가 커서 밤에는 쌀쌀하다. 인구는 3300만명이며 타이위안에 약 400만명이 산다. 한족이 주로 거주하는 지역이다.

여행상품 혼자 여행하기 버겁거나 따분하다면 단체로 10명 이상 함께 가면 된다. 중국과 티벳 오지 전문여행사 뚱단지투어(www.ddjts.com/rb/)는 10인 이상 단체 여행에 대해 맞춤형 패키지 상품을 제공한다. 현지 교통 및 숙박, 관광 해설, 숙식 등을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다. (02)6925-2569.

먹거리 식도락의 천국 중국에 왔으니 먹거리는 걱정 없다. 특히 산시성은 중국 내에서 특히 면(麵·국수)으로 유명한 곳이다. 젓가락으로 찢어서 만드는 면, 칼국수처럼 칼로 탕탕 잘라서 만드는 면 등 국수를 만드는 방법도 다양하게 발달했다. 어깨에 올린 커다란 반죽을 철편으로 쓱쓱 베어내는 다오샤오 (刀削麵)은 독특한 단면의 면발도 맛있지만 면발을 만드는 과정도 재미나다. 쉽게 접할 수 없는 볼거리까지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