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부 스타트업 대표가 학력을 부풀리고 컨설턴트 경력을 위조해 파문이 일었다.
최근 일부 스타트업 대표가 학력을 부풀리고 컨설턴트 경력을 위조해 파문이 일었다.

불볕더위와 장마, 태풍의 계절이다. 때가 되면 먹어야 하는 인간에게 여름은 불편하다. 불 앞에서 식사 준비를 하는 이도 고역이지만 땡볕이나 폭우를 뚫고 나가 먹기도 쉽지 않다. 다행히 우리는 팥빙수 한 그릇, 햄버거 하나도 주문이 가능한 세상에 산다. 음식배달 시장은 올해 거래액을 20조원으로 예상하는 거대 산업이다. 주문 앱의 폭발적 성장과 함께 물류 분야에서도 수천억원 가치로 성장한 스타트업이 등장했다.

‘부릉’을 운영하는 ‘메쉬코리아’는 음식배달 시장에서 가장 많은 프랜차이즈 브랜드와 계약한 스타트업이다. 배달원이 한 번 나갈 때마다 여러 식당에서 음식을 받아 복수의 목적지에 배달하는 최적화 알고리즘으로 신규 진입이 어려운 물류 시장을 열었다. 부릉 TMS라 불리는 이 기술은 국내 대형물류 회사도 이용한다. 덕택에 다수의 벤처캐피털(VC)과 대기업으로부터 1000억원가량의 투자를 받았다.

그런데 최근 이 회사의 창업자인 유 모 대표가 학력을 부풀리고 컨설턴트 경력을 위조했음이 밝혀져 스타트업 업계에 파문이 일었다. 유학파 젊은 창업자이니 구세대와 다를 것이라 기대했던 이들을 실망시키고 스타트업에 거는 사회의 신뢰를 추락시킨 사건이었다.

한국은 극도의 실력주의(meritocracy) 사회다. 사회적 지위나 권력, 권한 등을 실력 있는 자에게 맡기는 실력주의는 효율적이다. 그러나 실력주의를 제도로 구현하는 과정에서 학벌과 학력을 실력의 대리변수로 과도하게 차용하면서 부작용이 커졌다. 성적 상위자가 특혜를 보는 불공정 사회가 된 것이다. 정작 필요한 것은 실력인데 정확한 평가에는 시간이 걸린다. 대신 학력과 경력을 기준으로 삼으면서 그 증빙서류로 각종 증명서와 이력서를 받는다. 그러나 증명서는 위조가 가능하고 이력서에는 종종 거품이 낀다.

학력·경력 사칭의 재발을 막으려면 해당자를 퇴출하고 계약 위반에 따르는 책임을 물어야 한다. 원칙은 알아도 막상 실천은 드물다. 투자사들이 그렇게 못 하는 이유를 “미국처럼 이사회 중심 경영이 아닌 창업자 중심 경영인 우리나라 현실에서는 창업자의 퇴진 리스크가 더 크기 때문”일 것이라고 알토스벤처스의 박희은 수석은 설명한다.


실력 부족한 VC의 허술한 검증

그렇다면 투자 전 실사 과정에서 더 치밀한 검증이 필요하다. 심사역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 현 제도는 개선의 여지가 크다. 차라리 VC 심사역에게는 기술과 시장 분석만 맡기고 전문가 경력과 대인관계 검증은 외부 전문가에게 맡겼으면 좋겠다. 다국적 대기업들은 오래전부터 주요 임직원 채용 시 전문업체의 레퍼런스 체크 서비스를 이용한다. 연봉 1억원의 개인을 채용할 때는 평판 체크가 필수인데 수십억원을 투자하는 상황에서 그 과정이 없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가장 힘이 센 이는 투자자다. 초기 스타트업은 매출이 없어서, 매출이 나는 중기 스타트업은 더 빠른 성장을 위해서, 심지어 상장이 예상될 정도로 커진 대형 스타트업도 프리-아이피오(Pre-IPO·사전 기업공개)라는 이름으로 투자를 원한다. 투자자들에게 좋은 점수를 따는 것은 스타트업 창업자에게 회사의 명운이 걸린 일이다.

투자자들도 나름대로 사정은 있다. 소신대로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대다수 국내 VC들이 의지하는 공공자금 펀드는 투자 실패에 전혀 관대하지 않다. 세금으로 조성한 밑천을 크게 날려 먹은 VC는 다음 투자금을 얻기 어렵다. 그러니 이름은 VC인데 ‘망하지 않을 스타트업’을 고르느라 큰 기회도 함께 놓치는 모순에 빠진다.

그래도 정부라는 거대한 전주가 밀어준다는 점은 엄청난 혜택이다. VC들이 투자금을 얻으러 국내외 기업을 헤맬 필요 없이 정부에서 펀드를 만들라고 꾸준히 밑천을 대주니 자금이 넘친다. 빠른 양적 성장의 그늘에 부실이 자란다. 투자 실력을 갖추지 못한 심사역들이 늘어나고, 창업자를 인질로 잡는 불공정 계약서로 실력 부족을 메우려는 VC가 존재하는 것이 우리 창업 생태계의 어두운 면이다.

대한민국은 고 맥락(high context) 사회다. 상대방의 상황을 대충 짐작으로 이해하는 사회이며, 굳이 말로 표현해야만 한다면 완곡하게 돌려서 묻는다. 눈치와 직관이 횡행하는 대신 정확한 의사 표현이나 수치화가 드물다. 이발소에 가면 “여름이니 시원하게 깎아달라”고 하지, 저 맥락(low context) 사회처럼 “5㎜만 남겨주세요”라고 말하지 않는다. 직선적인 화법에 익숙하지 않은 VC 심사역들은 정보를 챙길 때 필수적인 꼼꼼한 대화가 불편하다. 그렇다고 심사역이 스타트업 대표만큼 해당 시장이나 기술에 대해 알지도 못한다. 스타트업이 작정하고 숨긴다면 외부인이 찾지 못하는 비밀은 얼마든지 있다.


학연으로 투자 결정…부실한 투자 근거

초기 투자자들은 ‘사업 아이디어보다 창업자를 본다’라고 말한다. 부실한 자료와 전문성 부족으로 판단이 어렵다면 더더욱 사람에 의존한다. 문제는 그 ‘본다’라는 인지행동에 참고할 만한 원자료가 부실하다는 점이다. 사업 성공에 필요한 리더십, 대인관계 능력, 판단력, 인내심과 추진력 등을 봐야겠지만 창업자가 적성검사나 성격검사를 받는 예는 없다. 결국, 보고 싶어 하는 것들이 명문 대학 학위, 좋은 직장 경력, 회사 소개에서 보이는 발표 실력, 그리고 열정이나 배짱 같은 주관적 선호도다.

여기에 더해 창업자와 심사역이라는 공적 관계 외에 사적으로도 얽히는 이중관계도 흔하다. 이런 현상은 물론 우리 사회 전반에서 발견되나, 업력이 짧아 상대방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스타트업의 경우에는 더 심하다. 학교 선후배, ‘직장 선후배, 아는 형의 친구 같은, 본질적으로 아무것도 아닌 사적인 관계가 보험 역할을 해주리라 기대한다. 즉 ‘내 투자 대상이 좋은 대학과 컨설팅 회사를 나왔으니 무능하지는 않을 테고, 내 후배의 친구이니 나를 속이지는 않을 것’ 식의 믿음이다.

서울대, 카이스트, 연·고대, 포항공대 인맥이 유명 창업자와 투자자의 반 이상을 차지하게 되는 과정에는 실력도 물론 작용했겠지만 플러스알파도 있지 않았을까?

국내 VC 업계의 문제점으로 꼽히는 ‘클럽딜(몇 개의 투자사가 모여서 한 회사에 투자하는 방식)’도 결국 스타트업의 투자가치를 판단할 전문성이 부족한 VC들이 남 따라 투자하는 현상이다. 경쟁해야 할 유인이 사라진 자리에 담합만 남았다. 여럿이 투자한다고 검증이 잘되는 것도 아니다. 초기 투자자는 검증 역량이 부족하고 후기 투자자는 앞에서 했으려니 하고 넘긴다. 공동책임의 폐단이다.

그러나 제도를 어떻게 보완하든 개선 여부는 결국 투자자들의 직업윤리에 달렸다. 좋은 학교, 좋은 경력을 지닌 사람들에게 프리미엄을 주는 행위 외에도 전문성의 부족과 대리인의 신임의무 결여에 대한 지적이 많다. 외국계 VC에 대한 창업자들의 높은 선호도를 국내 VC들은 아프게 받아들이고 스스로 개선책을 찾아야 할 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