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내면에는 어둠 속에 숨어 있는 또 하나의 인격, 그림자가 있다. 이런 그림자를 조금씩 길들여 가고 승화시켜 나가야 한다.
우리 내면에는 어둠 속에 숨어 있는 또 하나의 인격, 그림자가 있다. 이런 그림자를 조금씩 길들여 가고 승화시켜 나가야 한다.

올해 2월 초, 제주도에 갔다. 한라산을 동쪽에서 올라가니 봄의 기운이 느껴졌다. 돌담길에는 꽃이 피어 있고 나무도 파란 잎새 사이에 꽃망울을 얹고 있었다. 서쪽으로 내려오는 길은 여전히 겨울이었다. 도로에는 하얀 눈이 녹지 않은 채 쌓여 있고 나무마다 눈꽃이 피어 있었다. 2월의 한라산은 동쪽과 서쪽이 전혀 다른 산이었다.

두 모습의 한라산을 보면서 몇 년 전에 제주에서 일어난 어이없는 사건이 떠올랐다. 제주지방검찰청의 고위 검사가 일으킨 소위 ‘바바리 맨’ 사건이다. 법 수호의 책임자가 술집 뒷골목에서 옷을 벗고 혼자서 유사성행위를 하다 발각된 사건이었다. 많은 사람이 그 소식에 경악했다. 언론과 주변에서는 그가 치료받아야 할 정신적인 문제가 있었지만 방치했다는 식으로 해석을 했다. 그것 말고는 그런 어이없는 행동을 설명할 길이 없기 때문이었다.

검사의 그런 행위가 정말 병에 의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 그건 병이 아니라 그 사람 내면에 있는 또 다른 인격의 표현으로 봐야 한다. 낮에는 법과 도덕의 수호자로 살지만, 밤에는 성적 욕망에 쩔쩔매는 어두운 삶이 있는 것이다. 음과 양, 낮과 밤이 있듯이 우리 내면에는 어둠 속에 숨어 있는 또 하나의 인격이 있다. 심리학자 칼 구스타프 융은 인간의 이런 인격을 ‘그림자’라고 했다. 그림자는 공격성, 성적 욕망, 이기심, 두려움, 지질함 등, 스스로 인정하고 싶지 않은 내면의 또 다른 속성이다.

밖에서는 품위 있고 이해심 많은 사람이지만 집안에서는 쪼잔하고 까탈스러운 남자다. 겉은 고상한 인격자지만 속은 천박한 욕심쟁이다. 낮에는 고매한 도덕군자지만 밤에는 음흉한 성도착자다. 우리는 지킬 박사와 하이드처럼 이중인격을 갖고 있다. 해가 지면 밤이 오듯이, 그림자도 나의 일부이기 때문에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고 싶어 한다.

그림자 인격을 어떻게 해야 하나. 우선 내 안의 이기적 욕심, 동물적 욕망을 잘 알고 인정해야 한다. ‘나는 약간 빈틈도 있고 응큼도 하고 유치하기도 하고 이기적이기도 해. 그게 나야’ 하고 자신의 그림자를 수용해야 한다. 그래야 그림자에 잡아먹히지 않는다.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야!’ 하고 부정하면, 오히려 위험하다. 그럴 경우 자신의 어두운 면을 무의식적으로 부정하기 때문에 자신의 행동에 대해 문제의식을 잘 못 느낀다. 누가 봐도 속 좁은 사람인데 자기는 마음이 넓다고 생각하는 사람, 성적 욕망에 물들어 있으면서도 자신은 문제가 아니라고 믿는 성직자가 그런 경우다. 이런 억압된 그림자가 어느 순간 세상으로 뛰쳐나와 자기나 타인에게 해를 주는 큰 사고를 내는 것이다.

누구나 그림자는 있다. 그림자를 ‘악(惡)’으로 보고 무조건 부정해서 될 일이 아니다. 밤이 싫다고 밤을 없앨 수는 없다. 평생 함께 가야 한다. 내 안의 어두운 면을 조금씩 길들여 가고 승화시켜 나가야 한다. 그림자를 잘 돌보는 것이 인생의 숙제다. 한라산도 동쪽과 서쪽의 서로 다른 모습이 어우러져 온전한 한라산이 되듯이, 우리도 내 안의 빛과 그림자를 잘 조화시켜야 온전한 ‘나’가 될 수 있다.


▒ 윤우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밝은마음병원 원장, ‘엄마 심리 수업’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