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와 고대가 공존하는 ‘요르단의 폼페이’ 거라사(Jerash) 유적. <사진: 이우석>
현대와 고대가 공존하는 ‘요르단의 폼페이’ 거라사(Jerash) 유적. <사진: 이우석>

요르단(Jordan), 귀에 익숙한 국명이다. ‘성경’에 등장하는 요단강이 바로 이곳이며 서구권에서 이름으로도 많이 쓴다. 왠지 ‘요단강’이란 말에 꺼림칙하게 느낄 법도 하지만 사실 이 말은 오히려 상식과 반대다. 광야(요르단 땅)에 살던 이스라엘 백성이 죽어 천국(가나안 = 이스라엘)으로 건너가는 강이 요단강이다.

이스라엘과 사해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는 요르단, 중동 반도 끝머리 가장 기름진 땅에서 오랜 역사를 지켜온 왕국 요르단을 갔다. 도착지는 암만(Amman), 국명은 익숙하지만 도시명은 낯설다. 암만 생각해도 그렇다.

중동에서 가장 전략적 요지에 있는 요르단은 구약성경(코란에도 나온다)에도 빈번히 등장하는 ‘성스러운 땅’이다.

암만 공항에 내려 호텔로 가는 길에 보이는 풍경은 온통 광야. 사막도 아니고 그저 광야다. 이보다 요르단 땅을 정확하게 표현할 단어가 있을까. 성경에 따르자면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홍해를 갈라 애굽(이집트)을 탈출한 모세는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 채 이곳 ‘광야’에 눌러앉아 40년 이상 살다 죽었다.

도시 자체가 타임머신이자 역사책, 종교서적이다. 게다가 모든 곳이 핫 플레이스다. 낮 기온이 40도 이상 오르니 ‘핫 플레이스’임에 틀림없다. 모르긴 해도 이집트에서 탈출한 모세는 더운 날씨에 후회했을지도 모른다.

수도 암만 이름의 기원인 암몬(Ammon)은 ‘근친의 도시’란 뜻이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그의 딸과 근친해 낳은 자식의 이름이 암몬이다. 암몬은 이들의 역사상 굉장히 중요한 유적이며 성지다. 모세가 묻혀 있다는 느보(Nebo)산 역시 이곳에 있다.


황금빛 사막 노을, 쏟아지는 별 빛 ‘장관’

요르단에 가면 남북으로 기나긴 동선을 따라 움직이는 것이 좋다. 사해와 페트라 등을 모두 돌아보려면 ‘왕의 대로’를 따라 꽤 길게 움직여야 한다.

기나긴 길을 달렸다. 와디럼 사막.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의 배경이다. 여러 곳에 사막이 있지만 붉은 모래에 낙타가 있는 전형적인 상상 속 사막 풍경이다. 기암괴석의 사암 봉우리가 뚝뚝 박혀 있어 마치 모퉁이를 돌면 아나킨 스카이워커(스타워즈 다스베이더의 어릴 적 이름)라도 마주칠 듯 기이한 풍경을 자랑한다. 우린 이곳에서 하룻밤을 묵기로 했다.

사막의 노을은 모래폭풍을 뚫고 환상적인 황금색을 발한다. 사암 봉우리는 마치 거인처럼 드넓은 모래사장을 지키고 섰다.

밤이 찾아들었다. 베두인족의 텐트 호텔은 아늑했다. 수염 난 남자들이 차려주는 식사와 전통 공연도 괜찮았고 뜨거운 물도 제법 시원하게 나왔다. 아! 와이파이는 없었다.

자정 무렵, 구름이 걷히며 사막의 별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하늘을 세로진 은하수와 반짝이는 별빛이 모래구름 사이로 붉은 사막을 비춘다. 아! 동방박사가 봤을 그 별, 어스름한 은하수가 폭포처럼 내려와 마른 땅에 생명의 빛을 전해준다.

‘성경’ 속 거라사(Jerash)는 현존하는 로마 유적 중 가장 잘 보존된 곳이다. 암만에서 불과 1시간 거리지만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온 듯 유적들이 고스란히 보존돼 있다.

이곳에는 시대순으로 유대교·기독교·이슬람 유적지가 혼재된 상태지만 그리스·로마의 유적이 주를 이룬다. 8세기 발생한 지진으로 무너진 상태 그대로다. 개선문, 아르테미스 신전, 원형극장 등이 이탈리아 폼페이 유적보다 더 잘 보존돼 있다. 편견과는 달리 이슬람인들이 기존의 문명과 유산을 파괴하지 않고 그 안에서 공존하며 산 덕이다.

가장 이름난 유적 페트라는 암만으로부터 남쪽 260㎞에 위치했다. 세계 7대 불가사의 유적지 중 하나로, 1989년 개봉한 영화 ‘인디애나 존스3’를 통해 널리 알려졌다.

나치에 맞서 예수의 성배를 찾으러 나선 존스 박사처럼 나는 당시 영화에서 봤던 경이로움을 찾아 숨겨진(?) 협곡을 찾아나섰다.

암각사원 ‘알카즈네’는 긴 협곡 끝에 숨어 있다. 빌딩처럼 높은 암벽 사이로 무려 1.5㎞에 이르는 샛길이 이어진다. 이따금 마차가 지나고 드디어 좁은 협곡 틈새로 황금색(정말 그렇게 보인다) 사원이 보인다. 바위에 암각된 웅장한 사원, 알카즈네다.

기원전 7세기쯤 나바테아인이 건설한 이 신비로운 고대 도시는 옛 영화를 오롯이 간직한 채 현대인들에게 속살을 드러냈다. 신기하게도 사원 앞 광장에선 와이파이가 되고, 나귀와 낙타를 두고 관광객들을 호객하는 이들로 가득하다. 어쩌면 과거보다 더 번성한 듯 보인다.


병아리콩과 올리브유 등을 섞어 만든 ‘후무스’는 요르단에서 인기 있는 음식이다. <사진 : 이우석>
병아리콩과 올리브유 등을 섞어 만든 ‘후무스’는 요르단에서 인기 있는 음식이다. <사진 : 이우석>

염도 높은 사해, 수영 못 해도 몸이 ‘둥둥’

나바테아인들은 향신료 거래로 많은 부를 축적하고, 무역로의 요충지에 위풍당당한 도시를 건설했다. AD 2세기쯤 페트라를 어떻게 알고 찾아온 로마 병정에 의해 멸망할 때까지 번성했다. 알카즈네로부터 넓은 터가 나타난다. 무덤과 지하 신전, 집터, 로마시대 건설한 노천극장 등이 이어지며 당시의 화려한 영화를 추측할 수 있다.

요르단은 휴양지로도 인기가 높다. 치안이 좋고 대부분의 도시가 고원지대로 서늘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헤롯왕이 탕치를 위해 찾았다는 마인(Ma’in)온천과 사해(Dead sea) 일대에 근사한 리조트 단지가 있다.

해발이 마이너스(-) 400m인 사해는 지구상에서 가장 깊은 육지인 셈이다. 이곳에 고인 물은 뜨거운 날씨와 암염으로 인해 염도가 매우 높아 생물이 살지 못한다. 그래서 사해(死海)다. 수영을 하지 못하더라도 몸을 누이면 저절로 둥둥 뜨는 신비로운 체험을 할 수 있다. 책이나 신문을 보는 척해도 상관없다. 하지만 몸을 못 가눠 뒤집어진다면 큰일이다. 입이나 코에 물이 들어가면 짠 정도가 아니라 톡 쏠 정도로 쓰디쓴 맛을 느껴볼 수 있다.

사해 건너편은 이스라엘이다. 사해 해안선을 따라 ‘민물’ 수영장을 갖춘 리조트들이 즐비하다.

암만 인근의 마다바에 위치한 마인온천은 60~70도에 가까운 뜨거운 용출수가 솟는 곳으로 헤롯왕이 오가며 근처에 여름궁전을 지었을 정도로 역사가 오래된 곳이다. 이곳 리조트에서 스파를 즐길 수 있다. 천연 온천수 폭포와 수영장을 갖춘 스파 시설이 있어 수영을 한 후 아늑한 현대식 스파를 즐길 수 있다.

요르단은 중동에 대한 편견을 말끔히 걷어주는 여행지다. 금욕적이고 경직된 종교 생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이들도 인생을 충분히 즐긴다. 매끼 같은 음식을 먹지만 밤이면 몰려나와 노래도 부르고 역시 수다도 떤다. 관광객을 위해 술을 파는 곳도 있다. 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문 멋진 풍경과 역사적 가치가 빛나는 유적을 만날 수 있을 뿐 아니라 편안하고 여유로운 여행을 즐길 수 있다.

신비의 땅을 떠나며 앞으로 이처럼 생생한 역사와 다시 마주칠 수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 봤다. 아마 없을 것 같다.


▒ 이우석
성균관대 미술교육학과, 여행기자협회 회장, 14년째 여행·맛집 전문 기자로 활동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