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노스 스탠리 크랑키 KSE 회장. 사진 블룸버그
에노스 스탠리 크랑키 KSE 회장. 사진 블룸버그

‘아스널은 망했다!’ 8월 8일(현지시각) 에노스 스탠리 ‘스탠’ 크랑키(Enos Stanley ‘Stan’ Kroenke·71) KSE(Kroenke Sports & Entertainment) 회장이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명문 구단 아스널을 인수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아스널 팬들 사이에서는 실망과 탄식의 소리가 터져 나왔다.

아스널 서포터스 트러스트(AST)는 “끔찍한 날”이라고 논평했고 팬들은 “크랑키가 선수 영입에 돈을 풀지 않을 것이다. 팬들의 참여도 없을 것”이라며 분노했다.

2007년 아스널 지분 9.9% 인수를 계기로 아스널 경영에 참여한 크랑키 회장은 그동안 러시아 1위의 광산·목재·통신 재벌 알리셰르 우스마노프(65)와 아스널 소유권을 두고 경쟁했다. 내심 첼시의 구단주인 러시아 석유 재벌 로만 아브라모비치와 같은 ‘물량전’을 기대하며 우스마노프의 승리를 원했던 아스널 팬들은 미국 출신의 냉정한 사업가 크랑키 회장의 승리에 실망한 분위기다.

하지만 크랑키 회장의 미국을 넘어 유럽 진출의 교두보를 확보, 글로벌 스포츠 제국 건설에 한발 다가섰다는 평가다.

크랑키 회장은 세계적인 스포츠·미디어 부호이자 미국 5위의 부동산 재벌이다. 미국의 프로 스포츠 구단 5개, 스포츠·아웃도어 텔레비전 채널 4개, 라디오 방송국 4개 , 잡지 19개, 대형 스포츠 스타디움 3개를 소유하고 있다.

미국 최고의 인기 스포츠인 미식축구(NFL) 로스앤젤레스 램스를 비롯, 미국 프로농구(NBA) 덴버 너기츠, 미국 축구 메이저리그(MLS) 콜로라도 래피즈,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 콜로라도 애벌랜치도 그의 소유다. 이번 딜을 통해 프리미어리그 아스널도 그의 수중에 들어갔다.

그가 창업한 ‘앨티튜드 스포츠 앤드 엔터테인먼트’는 ‘미디어의 황제’ 루퍼트 머독의 뉴스코퍼레이션, 폭스 스포츠넷과 스포츠, 아웃도어 프로그램 시청률 경쟁을 벌이고 있다.


美 5위 땅 부자

2016년 텍사스의 웨고너 농장(52만 에이커·2100㎢)을 7억2500만달러에 매입, 미국 땅 부자 랭킹 5위(84만8000에이커·3430㎢)에 올랐다.

그가 소유한 땅은 서울 면적의 5.7배나 된다. 그가 소유한 건물 면적도 277만7000㎡(84만평)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크랑키 회장은 1947년 미주리주 컬럼비아의 독일계 이민 가정에서 태어났다.

부친 앨빈 크랑키는 주민이 25명에 불과한 미주리 외곽 모라(Mora) 지역에서 목재 적재장을 운영했다. 할아버지, 아버지 모두 메이저리그 야구팀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광팬이어서 그의 이름도 세인트루이스 출신으로 야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두 명의 야구 선수 이름(‘에노스’는 1946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월드시리즈 우승을 이끈 에노스 슬로터, ‘스탠리’는 스탠 뮤지얼)을 따서 지었다.

세인트루이스의 외곽 시골에서 보낸 유년 생활은 넉넉하지 않았다.

“맨손으로 출발, 자수성가한 조부모, 부모님은 단돈 1달러도 아껴 쓰면서 나를 교육하는 데 힘썼다”고 크랑키 회장은 회고했다. 목재 야적장 청소를 하면서 뛰놀던 그는 10세 때 부친 회사의 회계 장부를 관리하는 등 일찍부터 사업에 눈을 떴다고 한다. 훗날 월마트 사장을 지낸 데이비드 글로스는 “어린 크랑키는 뭐든지 가르쳐주는 족족 빨아들이는 스펀지 같았다”고 했다.

미주리 콜 캠프 고교에 입학, 야구·농구·달리기를 했는데 큰 키(6피트 2인치·185㎝) 덕분에 고교 농구팀에서 포워드를 맡았다. 미주리대 컬럼비아 캠퍼스에서 예술과 과학을 전공했다(1969년 졸업). 1974년, 월마트의 공동 창업주인 제임스 로런스 ‘버드’ 월튼의 딸 앤 월튼 크랑키(70)와 결혼했다.

주로 상가와 쇼핑몰 개발 등 부동산 사업으로 부를 쌓았다. 1983년 부동산 개발 회사 크랑키그룹을 설립, 쇼핑몰과 아파트 건설 사업을 시작했고 1991년 신도시 개발 사업에 진출, 100여 개의 건설 프로젝트를 성공시켰다. 월마트 신규 매장 인근에 쇼핑몰을 지어 떼돈을 벌었다고 한다.

1999년 덴버에서 자신의 이름을 딴 KSE를 설립한 뒤 스포츠 비즈니스에 본격 진출, 스포츠 구단 ‘사재기’에 나섰다. 1999년 미식축구팀 세인트루이스 램스 대주주가 된 것을 시작으로 덴버 너겟츠(2000년), 콜로라도 아발란체(2000년), 콜로라도 크러시(2002년), 콜로라도 맘모스(2004년), 콜로라도 래피즈(2004년)를 인수했다.

2004년 이후 미디어 사업에 진출, 덴버 지역 방송 네트워크인 ‘알티튜드’를 창업, 지역 텔레비전과 라디오, 잡지사를 잇달아 사들였다. 그가 경영하는 미디어들은 그가 소유한 스포츠 구단 소식을 주로 보도하는 스포츠 전문 미디어다. 2015년 KSE 아웃도어 그룹을 설립. 아웃도어 텔레비전 채널, 디지털 출판을 포함한 출판사 등을 인수했고, 세계 낚시 네트워크(WFN)도 소유하고 있다.

KSE가 대주주인 스포츠 구단 ‘세인트루이스 램스’. 사진 블룸버그
KSE가 대주주인 스포츠 구단 ‘세인트루이스 램스’. 사진 블룸버그

‘수직 계열화’로 최대 이익 추구

스포츠 비즈니스의 거물답지 않게 언론과 접촉을 극히 꺼려 ‘과묵한 스탠’이란 별명이 붙어 있다. 해외 여행을 즐기고 자서전과 역사 소설을 탐독하는 독서광이며 개인 시간은 주로 개인 체육관에서 운동하며 보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스포츠 구단을 ‘부의 상징이자 값비싼 기호품’ 쯤으로 여기는 러시아, 중동, 중국의 억만장자들과 달리 철저한 비즈니스 마인드로 접근, ‘통 큰 투자’보다는 최대한의 자본 이득을 추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단순히 구단을 소유하는 데 그치지 않고 스타디움 운영, 관련 방송, 라디오, 잡지 출판 등 미디어 사업을 병행하고 티켓 판매 회사까지 직접 운영하는 등 스포츠 비즈니스의 수직 계열화를 추구한다.

고향이나 다름없는 세인트루이스의 미식축구팀 램스를 인수한 뒤 2016년 로스앤젤레스로 근거지를 옮겨 ‘세인트루이스가 가장 미워하는 기업가’란 악명을 얻었고 경기장 건설비를 지원했던 시는 빚더미에 올라 앉았다. 텍사스 농장 인수 이후 50년 넘게 산 주민들을 쫓아내 원성을 사기도 했다. 자수성가한 IT 투자자 출신으로 NBA 농구팀 댈러스 매버릭스 구단주인 마크 쿠반과 반대 성향의 인물로 자주 비교된다.

2000년 공화당에 22만달러를 후원하는 등 공화당 지지자로 알려져 있으며 처가인 월튼 가문 역시 공화당의 큰손 기부자 명단에 올랐다.


Plus Point

‘월마트 월튼가의 사위’

크랑키 회장과 부인 앤 월튼 크랑키 여사는 휴양도시 베일에서 스키를 타다가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두 사람은 1974년 콜로라도 아스펜에서 결혼했다.

크랑키 회장은 “아내와 결혼할 당시 월마트는 지금과 같은 세계적인 유통 기업이 아니라 작은 소매 기업이었다”고 회고했다. 크랑키 회장은 월튼 여사와 만나기 이전에 이미 성공 가도를 달리던 부동산 사업가였다고 언론들은 전했다.

크랑키 회장은 5명의 자녀를 두고 있는데 월튼 크랑키 여사와 휘트니 앤 크랑키(41·여), 조시 크랑키(38·남)를 낳았다. 휘트니 앤 크랑키는 영화 감독(The Power of Few)으로 일하고 있다. 크랑키 회장은 1995년 장인 사망 직후 48억달러 상당의 주식(2015년 기준)을 물려받았다. 1998년 고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연인 도니 파예드 소유의 말리부 별장을 900만달러에 인수,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크랑키 회장의 개인 자산은 83억달러(미국 억만장자 순위 183위·2018년), 앤 윌튼 크랑키 여사는 61억달러(미국 억만장자 순위 251위)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