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이 바라본 모습과 자신이 어떻게 비칠지 상상한 모습 간 괴리가 크면 꼰대로 전락한다.
타인이 바라본 모습과 자신이 어떻게 비칠지 상상한 모습 간 괴리가 크면 꼰대로 전락한다.

어릴 적 배울 점이 많은 큰 스승에 대한 일화를 들으면서 자랐다. 이전에는 목사나 스님과 같은 큰 스승들이 많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 큰 스승에 대한 이야기들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요즘 어린이들은 높은 직위에 오른 사람들이 자기이해력이 낮아 제구실을 못하는 일화를 더 많이 듣고 자란다.

이 시대에 큰 스승이 사라지는 이유는 ‘벌거숭이 임금님 신드롬’과 연관돼 있다. 벌거숭이 임금님은 자신이 벌거숭이인지도 모르는, 자기이해력이 떨어지는 지위가 높은 사람을 지칭한다. 높은 직위에 오르면 정치적으로 줄을 서는 사람들이 넘친다. 이들은 높은 분이 무슨 이야기를 하든 맞다고 맞장구친다. 옷을 벗고 있어도 유행의 첨단을 따른 옷을 입은 것처럼 칭송한다.

아첨 섞인 긍정적 피드백은 인의 장막을 만든다. 어느 순간 높은 분들은 듣는 귀가 사라지고 말이 많아진다. 무슨 이야기를 해도 맞는 말을 하는 신의 수준이 된 것마냥 착각한다. 인의 장막에 둘러싸이는 순간 벌거숭이가 된 자신을 볼 수 있는 안목 또한 상실한다.

젊었을 때 총명해 큰 스승이 될 것으로 촉망받던 목회자들도 교회가 커지고 나이가 들고 명성이 생기면 큰 스승이 아니라 벌거숭이 임금님으로 전락한다. 많은 신도들이 신처럼 떠받들어가며 매일 해주는 긍정적 피드백에 파묻히는 것이다. 이 벌거숭이 행세가 외부사람들에게 알려져서 세간이 떠들썩한 일도 이어지고 있다. 이런 목회자들은 세상의 거울을 통해서 자신을 이해하는 자기이해력이 부족하다.

요즘 글로벌 리더십 연구에서 리더들의 자기이해력은 매우 뜨거운 이슈다. 자기이해력이 경영자급 리더십 훈련의 핵심이다. 그린피크파트너스(Green Peak Partners)와 코넬대는 ‘포천’ 500대 기업에서 CEO가 될 개연성이 있는 임원들을 연구한 결과 이들의 공통점이 자기이해력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실제로 글로벌 회사의 CEO를 영입할 때 이들의 경험과 전문성을 넘어서 가장 공들여 점검하는 영역이 자기이해력이다.

자기이해력은 결정능력, 책임능력과 같은 셀프리더십보다 한차원 높다. 자기이해력은 주변 피드백을 자기성찰로 연결하는 능력이다. 이 과정에서 변모하는 세상에 민첩하게 대응하면서도 중심을 잃지 않아야 한다. 지금과 같은 불확실성의 시대에 경영자가 자기이해력이 떨어지면 아무리 경험이 많고, 능력이 뛰어나도 시대적 맥락을 제대로 읽을 수 없다. 또 엉뚱한 결정으로 조직을 참사에 이르게 한다.

역사적으로도 현명한 군주는 자기이해력이 뛰어났다. 현명한 임금님들은 벌거숭이 임금님으로 전락하지 않으려고 평복으로 갈아입고 스스로 암행에 나서기도 했다. 참혹할 정도로 정확한 자기이해를 얻어내기 위한 방법이었다. 그 결과 피드백을 현명하게 받아들이면서 백성을 어질게 다스렸다.

그린피크파트너스 연구에서도 자기이해력이 높은 임원들이 뛰어난 재무적 성과를 낸 것으로 나타났다. 한때 엄청난 성장을 구가했다가 무너진 기업인 소니, 노키아, 모토롤라, 코닥, 시어스, 엔론 등의 공통점은 이들 조직을 이끌었던 CEO들이 자기이해력이 떨어지는 벌거숭이 임금님이었다는 것이다. 일본인에게 경영의 신으로 추앙받는 경영자인 마쓰시타 고노스케, 혼다 소이치로, 이나모리 가즈오의 공통점은 뛰어난 자기이해력이다.


‘벌거숭이 임금님’은 자기이해력이 떨어지는, 높은 지위의 사람을 상징한다.
‘벌거숭이 임금님’은 자기이해력이 떨어지는, 높은 지위의 사람을 상징한다.

사회적 자기이해력이 중요한 시대

CEO 코칭 피드백에 대한 최근 연구들을 검토해보면 일관되게 자기이해력에 영향을 미치는 두 가지 요인이 있다. 한 요인은 내적 자기이해력이다.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잘 모른다는 사실을 알라’라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내면을 들여다보는 성찰의 거울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내적 자기이해력이 높다. 평소 명상, 요가 등을 많이 한 사람들은 내면에 깨끗한 거울이 있다.

또 다른 요인은 사회적 자기이해력이다. 사회적 자기이해력은 타인에게 자신이 어떻게 비칠 것인가에 대한 평가와 자신에 대한 실제 평가값의 차이를 통해 판단한다. 차이가 작을수록 사회적 자기이해력이 높다.

요가나 명상은 내적 자기이해력의 거울을 닦아주나 사회적 자기이해력의 거울을 닦아주지는 못한다. 인문학에서는 내적 자기성찰만 되면 자기이해도가 높은 것으로 오해하고 있다. 현대 사회에서 큰 스승이 사라진 이유는 내적 자기성찰에 지나치게 기댄 나머지 사회적 자기성찰에 소홀했기 때문이다.

변화가 상수가 된 시대에는 주변 환경과 상호작용에 의해 형성되는 사회적 자기이해력을 성숙시켜야 한다. 지금과 같은 초연결디지털 시대는 나이가 든다고 다 스승이 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자기성찰과 자기이해를 통해 더 현명해지는 사람도 있지만 더 많은 사람은 사회적 거울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보지 못해 벌거숭이 임금님으로 전락한다.

사회적 자기이해력이 떨어지면 이들의 이야기가 일반 청중들로부터 공감을 창출하지 못한다. 공감을 얻지 못하면 자원이 동원되지 못해 결국은 쇠락의 길로 접어든다. 만일 꼰대 소리를 듣는다면, 사회적 거울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해서다.

밀레니얼 세대가 바라본 모습과 자신이 어떻게 비칠지 상상한 모습 간 괴리가 큰 것이다. 아무리 올바른 생각을 가지고 있더라도 자신의 스토리가 밀레니얼 세대에게 반향을 만들지 못한다면 결과는 좋지 않을 것이다.

사회적 자기이해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타인에게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성찰해야 한다. 긍정적 피드백에 익숙해지지 말고, 타인의 진의를 파악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마치 옛 현명했던 군주가 직접 암행에 나서 백성의 의견을 청취했던 것처럼 말이다.

고 신영복 선생님의 말씀에 따르면 스승과 제자는 고정되어 있지 않다. 모두가 스승인 동시에 제자인 시대에 살고 있다. 이런 스승과 제자가 수시로 자리바꿈하는 세상에서 꼰대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능력이 자기이해력일 것이다. 특히 사회적 거울을 들여다볼 수 있다면 누구나 훌륭한 스승이고 훌륭한 제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