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변호사는 요즘 들어 건망증이 심해졌다. 지난 주말 극장에 갔다가 주차해둔 차를 찾지 못해 한참 헤매다 겨우 찾았다. 주차장이 크기도 했지만, 예전엔 이런 실수를 할 거라고 상상도 못할 정도로 기억력이 뛰어났던 사람이기에 적잖이 당황했다.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다가 중간에 잠깐 이해를 도울 만한 예를 들거나 보충 설명을 하려고 다른 이야기로 흘러가면 본래의 이야기로 돌아오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최근엔 만난 사람들의 이름을 기억하려고 받은 명함에 그 사람 특징까지 기록해두지만 한두 달 뒤 다시 명함을 꺼내 보면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냉장고에 넣어둔 과일을 가지러 갔다가 냉장고 문을 왜 열었는지도 잊어버린 채 물만 마시고 올 때도 많다. 이런 일들이 종종 있다.


하는 일 너무 많아도 단순 건망증 발생

P변호사는 걱정이 돼 치매 검사를 받았지만 별다른 이상은 없었다. 담당 의사는 “하는 일이 너무 많아서 생기는 단순 건망증”이라며 일을 줄이라고 충고했다. 그러나 50대 초반의 잘나가는 변호사가 일을 줄이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기억력이 떨어지는 정도는 다양하다. P변호사처럼 하는 일이 너무 많아 최근에 경험한 것을 다 기억에 담아두거나 세세한 것을 제때 제대로 찾아내지 못하지만, 대부분의 기억이 다시 쉽게 떠오르면 ‘단순 건망증’이라고 한다. 반면에 최근 본인이 경험한 중요한 일도 기억하지 못하고, 단서를 주거나 심지어 똑같이 재현해 보여도 생소하게 느껴지면 기억력 장애라 한다. 기억 자체가 저장돼 있지 않아 기억해낼 것이 없는 것이다.

치매 환자가 보이는 기억력 장애와 건강한 사람에게도 생기는 단순 건망증은 이처럼 증상이 다르다. 이런 이유로 단순 건망증은 치매와 관련이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단순 건망증에서 치매가 되기까지 대체로 시간이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시각으로 보면 문제가 달라진다. P변호사가 지금보다 훨씬 바쁘고 복잡하게 살던 몇 년 전까지도 건망증은 없었다.

건망증이 심해진 이유는 뇌가 약해졌기 때문이다. 아직 부서진 뇌세포가 적어서 검사에는 드러나지 않지만, 이미 뇌세포의 기능이 떨어지면서 병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뇌의 기능이 70% 이상 사라지기 전에는 치매 증상이 나타나지 않고, 뇌의 기능이 웬만큼 떨어져도 뚜렷한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다.

단순 건망증을 두려워할 이유는 없지만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으로 생각해서도 안 된다. 단순 건망증은 뇌가 노화하면서 겉으로 나타나는 최초의 징후다. 이런 수준의 노화로 반드시 치매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머리가 나빠지는 건 사실이다. 치매에 안 걸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건강한 뇌를 가져야 삶의 질이 보장된다. 단순 건망증은 치매 예방에 관심을 가지라고 뇌가 보내는 신호다.


▒ 김철수
연세대 의대 졸업, 가정의학과 전문의, 경희대 한의학과 졸업, 한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