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로 교외 기자지구에서는 밤마다 스핑크스와 피라미드에 조명과 사운드를 입힌 쇼를 진행한다. <사진 : 이우석>
카이로 교외 기자지구에서는 밤마다 스핑크스와 피라미드에 조명과 사운드를 입힌 쇼를 진행한다. <사진 : 이우석>

이집트는 어릴 때부터 꽤 익숙한 나라였다. ‘새소년’과 ‘어깨동무’ 등 어린이 잡지에는 피라미드의 신비와 파라오의 저주, 세계의 불가사의 같은 내용이 자주 실렸다. 지리 시간엔 수에즈 운하가, 세계사 시험엔 카이로 회담이 등장했다.

카이로 칸엘칼릴리 시장의 골목 카페 ‘엘피샤위’에서 사람들과 어울려 민트티를 마시며 물담배를 피우고 있을 때였다. 누군가 내게 중국인이냐고 물어왔다. 난 한국인이라고 답했다. 관광 가이드라는 그는 한숨을 푹 쉬며 예전엔 한국인이 참 많이 왔었다고 했다.

이른바 ‘재스민 혁명’으로 불리는 이집트 민주화 시위와 소요 그리고 내전 후 발길이 뚝 끊겼다. 한국인 관광객들이 폭탄 테러가 끊이지 않는 서유럽은 들락날락하면서도 이집트는 치안 불안을 이유로 몇 년째 외면하고 있다. 이집트가 너무 익숙한 탓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막상 피라미드를 보고 있자면 입을 다물 수 없다(그래서 모래를 삼키게 된다). 경이롭기까지 하다.

하늘에서 본 카이로는 정말 컸다. 무려 한강의 13배(총길이 6671㎞)에 이르는 나일강이 유유히 흐르는 고대도시는 정말 넓고 평평했다. 하루를 시작하는 자그마한 점들이 삼각주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생각보다 서늘했고 공기도 맑았다. 무려 1000만 명 가까이 모여 사는 카이로는 아프리카 최대 도시다. 낡은 차량들이 일제히 내뿜는 매연과 모래먼지의 노란색도 북부 아프리카의 푸른 하늘은 당해내지 못했다.


투탕카멘 등 3000~4000년 전 유물 즐비

여행의 개념이 생길 때부터 세계적 관광지였던 까닭일까. 카이로 시민들은 대부분 관광객들에게 사진 찍기를 허용한다. 오히려 반기는 경우도 많다. 카메라를 보면 다가와 찍어달라며 기꺼히 포즈를 취한다. 물론 관광지에선 ‘모델료’를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기자 지구의 대피라미드(Grand Pyramid·쿠푸 왕 피라미드) 앞에서 낙타를 탄 사내와 계단식 피라미드 앞 나귀를 탄 노인은 꽤 근사한 피사체 같지만 돈을 받는다.

가이드 하사닌은 꽤 최근에 만든 것처럼 보이는 헤지라의 묘벽을 가리키며 4700년 전의 것이라 설명했다. 그렇다. 일단 단위가 다르다. 기본이 몇 천 년 전이다. 국립이집트박물관에는 투탕카멘을 비롯해 총 15만 점의 전시물이 있는데 3000~4000년 전 유물이 수두룩하다.

‘곡물을 가는 여인상’은 약 4300년 전, 한국인 모두가 ‘아는 얼굴’인 투탕카멘의 황금가면은 3300년 전 것이다.

전시물은 상상을 초월하도록 정교하다. 팔다리 근육이나 옷주름 역시 현대조각 못지않은 사실감이 살아 있고, 눈에는 흑수정을 박아 무생물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든 것은 투탕카멘 묘를 에워싸 지키고 있는 이시스 여신상. 진지한 그 몸짓과 엄숙한 표정은 물론이며 선명한 아이라인이 요새 유행하는 스타일마냥 정교하다. 과거 교과서나 잡지에서나 보던 고대유물을 실제 앞에 두고 보니 눈과 귀에 쏙쏙 들어온다.

뜻밖에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유적’은 삶의 터전과 가까이 있다. 기자 지구의 피라미드다. 쿠푸왕, 카프라왕, 멘카우라왕의 피라미드가 언덕에 우뚝 서 있다. 대피라미드의 높이는 138m나 된다. 각이나 변이 흐트러짐 없다. 천문학을 이용해 정확하게 피라미드의 모서리를 동서남북 사방위에 맞췄다고 한다. 안에는 왕이 잠든 석실과 부속실, 환기구, 도굴 방지를 위한 가짜 길까지 있다. 230만 개가량. 하나에 40톤에 달하는 석재가 굉장히 튼튼하다. 이 모든 거석을 나일강이 범람할 때를 이용해 가져온 것이라니, 정말 믿어지지 않는다.

카이로의 관광지에서 사진을 찍는 무슬림 여인들. <사진 : 이우석>
카이로의 관광지에서 사진을 찍는 무슬림 여인들. <사진 : 이우석>

밤에는 스핑크스·피라미드 조명쇼 진행

피라미드 앞에는 스핑크스가 있다. 수수께끼를 낸다는, 대포에 맞아 코가 부서졌다는 바로 그 반인반사(半人半獅)의 괴물상이다. 늠름하고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왕릉을 지키고 섰다. 밤에는 스핑크스와 피라미드에 조명과 사운드를 입힌 쇼를 진행한다. 안에서 봐도 좋지만 인근 피자헛 건물 3층에 자리 잡아도 잘 보인다. 일명 ‘피자헛 뷰’라고 불리는 이 포인트는 여행객들 사이에서 꽤 유명하다.

멤피스 인근 사카라에는 모양이 조금 다른 계단식 피라미드가 있다. 인류 최초 건축가로 꼽히는 임호테프가 지은 것이다. 현재는 언제 끝날지 모르는 보수공사 중인데 그래도 비계를 제외하면 원형이 잘 보존돼 있다.

이집트에는 피라미드 이외에도 유명한 인공물이 하나 더 있다. 피라미드 건조 4000년이 지난 후에 완성한 수에즈 운하다.

수에즈 운하는 길다. 카이로에서 차를 달려 운하 중심 도시 이스마일리아까지 갔다. 넓은 운하가 펼쳐지고 멀리 시나이 반도까지 보인다. 지중해와 연결된 덕인지 요트가 떠 있는 풍경이 꽤나 낭만적이다. 2년 전 35㎞ 구간을 교행이 가능하도록 확장했다. 컨테이너 화물선이 수에즈 운하를 지나려면 보통 60만~100만달러를 낸다. 이집트 정부의 큰 수입원이다.

카이로 곳곳엔 볼거리가 가득하다. 구도심 격인 시타델(Citadel)과 수천 년 역사를 이어온 칸엘칼릴리 시장 역시 빼놓을 수 없다.

12세기 말 십자군에 맞선 요새에서 출발한 시타델은 카이로 시내가 훤히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 위치했다. 반대로 시내 곳곳에선 시타델의 모스크와 궁전이 보인다. 700년간 왕궁이 있던 곳으로 지금도 과거의 영화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토끼굴처럼 구불구불한 길마다 사람과 정이 넘쳐난다. 향신료를 사러온 무슬림 주부, 빵을 구워 파는 청년, 심부름하는 아이에, 연신 셔터를 눌러대는 관광객까지 한데 어울릴 수 있는 곳이 바로 칸엘칼릴리 시장이다.

인간이 문명을 만들며 역사를 시작한 그곳을 여행했다. 왜 여행을 학교라 하고 여행자를 학생으로 비유하는지, 그 의미를 이집트에 와서 비로소 깨달았다.


▒ 이우석
성균관대 미술교육학과, 여행기자협회 회장, 14년째 여행·맛집 전문 기자로 활동 중


여행수첩

하늘길 이집트 직항편은 없다. 유럽과 아프리카, 아시아 노선에 강점을 지닌 터키항공이 인천~이스탄불을 주 11회 취항한다.

TK091편으로 인천에서 오후 11시 45분에 출발, 이스탄불에 오전 5시 5분 도착하며, 오전 6시 35분에 이스탄불에서 떠난 항공기(TK690)는 카이로에 오전 7시 50분에 도착한다. 귀항편은 오후 9시에 출발해 인천에 오후 4시 55분 도착 이어서 꽉 찬 일정을 즐길 수 있다. 경유 대기를 1시간 정도밖에 하지 않아 좋다.

국가 정보 통화는 이집트파운드.

1이집트파운드는 64.38원이다. 치안 상태는 좋은 편이다. 지난해 미국 국무부에서 ‘안전’ 등급을 내렸다. 버스와 도시철도가 있지만 대중교통편은 불편하다. 택시를 이용하면 된다. 무슬림 국가지만 외국인들은 이집트 맥주 스텔라를 즐길 수 있다. 맥주를 가장 먼저 만든 나라가 이집트다.

문의 이집트정부 관광청 한국홍보사무소(www.blog.com/allnewegypt)
전화 (02)2263-2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