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진 후포항 주변에서 오징어를 줄에 걸어 말리는 모습. <사진 : 이우석>
울진 후포항 주변에서 오징어를 줄에 걸어 말리는 모습. <사진 : 이우석>

“고운 몸은 아직도 송화향기 서렸네. 희고 짜게 볶아 내니 빛과 맛도 아름다워 먹자마자 이가 시원한 것 깨달았네. 말려 다래끼에 담았다가 가을 되면 노구솥에 푹푹 쪄서 맛보리다.” 

금강산 등 송이의 주요 산지인 관동땅에 살던 매월당 김시습이 송이(松茸)를 노래한 시다. 그렇게나 좋았을까. 원래 보수적인 유교 문화권에선 모름지기 선비는 먹을 것을 탐하지 않는 것이라 하지 않았던가.

목은 이색과 이인로 등 내로라하는 당대 문인들도 한낱 버섯에 불과한 송이를 몸소 글로 칭송한 바 있다.

우리에겐 정말 고귀한 가을의 손님 중 상객(上客)이 바로 송이였다. 대게로 가장 유명하지만 송이가 나는 가을의 울진(蔚珍)은 마치 ‘보물상자’ 같은 곳이다.


금강소나무·송이·대게로 유명한 울진

서울에서 가자면 빨라도 네댓 시간을 가야 하니 손에 닿기 어려운 곳이다. 보물상자란 원래 이처럼 꼭꼭 숨어야 그럴 듯하다. 금강소나무, 송이, 강도다리, 대게 등이 가득한 곳이다. 곧 추석을 앞두고 가을의 전령사 송이가 솟아나고 있다는 희소식이 헐한 귀까지 전해져 울진을 찾았다.

국내에서 송이에 관한 최고(最古) 기록은 ‘삼국사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신라 성덕왕 3년(704년)에 송이를 왕에게 진상했다는 내용이 등장한다. 1300년 전에도 송이는 진미였다. 세종 원년, 명나라 황제에게 송이를 보냈다. 조선 송이가 중국에까지 그 유명세를 떨쳤다. 지금도 한국 송이는 유명하다. 일본 요정에서도 소나무가 좋은 한국의 마츠다케(松茸)를 최고급으로 친다.

서양의 값진 버섯 트러플(Truffle·송로버섯)과도 곧잘 비교되는 게 송이다. 하지만 둘은 서로 많이 다르다. 떡갈나무 아래 땅속 깊이 숨어 자라는 송로는 찾기 힘들지만 7년쯤 지나 클 만큼 컸을 때 제값을 받는다. 하지만 한해살이인 송이는 돋아났다가 벼슬같은 갓이 툭 터져버리고 나면 몸값이 떨어진다. 때가 지나면 그 향기를 지킬 수 없기에 더욱 가치가 있다.

송이는 음식이라 매난국죽과 같은 군자의 지위를 얻지는 못했지만, 송지(松芝)로 불리며 열렬한 사랑을 받았다. 고려 문인 이인로는 ‘파한집’에 송지를 ‘소나무와 함께하고 복령의 향기를 가진 것’으로 소개했다. 여말 문인 목은 이색은 ‘목은집’에 추석을 앞두고 친구로부터 받은 송이에 감동해, 감사의 뜻을 담은 시를 남겼다. 특히 바닷가와 가까운 쪽에서 해풍을 받고 자란 송이는 그 향이 좋아 다른 지역에서 난 송이에 비해 월등히 비싸다. 교통이 지금보다도 훨씬 좋지 않았던 옛날에도 ‘동국여지승람’에 ‘울진송이’가 언급될 정도로 울진은 송이 명산지였다.

송이 생산량 기준으로 울진은 국내 최대 산지에 속한다. 강원도 양양과 삼척에서도 나고 경북 봉화나 영덕에도 송이를 맛볼 수 있지만 소나무가 많은 울진에는 그 양에서부터 못 미친다고 한다. 소광리 금강송 군락지 등으로 유명한 울진의 천혜 자연조건이 명품 송이를 잉태한다.

송이를 캐는 방식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변하지 않았다. 가족 단위로 온 식구를 동원해서 산을 헤집는다. 그것도 매일 가야 한다. 어느 순간 송이가 쑥 나왔다가 갓이 피어버리거나(이러면 가격이 떨어진다) 썩어버린다. 그럼 돈이 썩는 것이다.

국유림이든 사유림이든 송이 산을 통째로 낙찰받아 한달이고 두달이고 산속에 천막을 치고 살며 송이를 캔다. 간혹 등산객이라도 나타나면 송이를 몰래 캐가는지 지켜봐야 한다. 가을볕에 땀이 줄줄 흘러도 흙속 송이를 보면 산중 선인을 만난 듯 즐겁다.

울진에선 송이만 보물이 아니다. 값진 자연이 수두룩하다. 우선 옥색 바다를 끼고 도는 근사한 해안도로를 따라 진주 같은 어항과 해변이 총총 박혀 있다.


갓 캐낸 울진 송이를 들고 있는 모습. <사진 : 이우석>
갓 캐낸 울진 송이를 들고 있는 모습. <사진 : 이우석>

102㎞ 해안 드라이브도 매력적

기성망양해변과 후포 앞바다까지 이르는 해안도로는 그저 달리기만 해도 기분이 즐겁다. 최근에는 철조망도 많이 걷어내 더욱 시원스레 푸른 바다가 펼쳐진다. 한국의 ‘애틀랜틱 로드’라고나 할까. 길과 바다가 너무도 가까워 큰 파도라도 치면 도로에까지 넘실댈 듯하다.

무려 102㎞에 이르는 해안선을 따라 곧게 난 해안도로 드라이브는 울진의 매력에 흠뻑 젖을 수 있는 기회다. 관동팔경 중 하나인 망양정에서 남쪽으로 덕신리까지 난 해안도로와 후포항에서 북쪽으로 직산리까지 이어지는 해안도로가 백미로 꼽힌다.

대게 모양의 가로등과 그 아래로 줄에 오징어가 널려있다. 가을볕에 선탠 중인 오징어가 차창 밖으로 휙휙 지난다. 아쉬우면 차를 세우고 바닷바람을 맞으면 그만이다.

선선한 날씨 속 트레킹하기 딱 좋은 계곡들이 울진에 숨어있다. ‘작은 그랜드캐니언’이라 불리는 불영사계곡부터 신선계곡 등이 시원한 골바람을 품고 기다린다.

국내 최대 생태경관보전지역(102.84㎢)으로 꼽히는 왕피천을 따라 걸으며 기암괴석을 눈으로 훑으며 걷다가 길중간 용소까지 다녀오는 왕복 1시간짜리 코스도 좋다. 계곡을 따라 난 생태탐방로를 걷다가 학소대에 올라 용소까지 조망하고 쉬다 돌아오면 된다.

신선계곡도 좋다. 온천으로 유명한 백암산(1004m) 자락에 꽁꽁 숨은 신선계곡. 무릉계곡처럼 굉장한 이름을 가진 그야말로 비경(秘境)이다. 몇년 전 나무데크 탐방로가 만들어져 걷기도 편안하다. 계곡과 소(沼)가 끝도 없이 이어진다. 요즘은 송이철이라 탐방이 제한된다. 단풍 들 때쯤 다녀오기에 딱이다.

덕구와 백암 등 울진에서의 온천욕은 여행의 대미를 장식한다. 목욕 후 차가운 소주 한잔과 함께 즐기는 송이 불고기는 ‘식욕의 계절’에 몸을 제대로 채워줄 뿐 아니라 여행의 즐거움을 도시로 가져와 연장할 수 있는 최고의 특산품이다.


▒ 이우석
성균관대 미술교육학과, 여행기자협회 회장, 14년째 여행·맛집 전문 기자로 활동 중


여행수첩

맛집 천년한우식육식당은 울진군의 신선한 한우 쇠고기를 맛볼 수 있는 곳. (054)783-6818. 후포 왕돌회수산은 신선한 생선회와 우럭맑은탕(지리) 등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광어와 우럭, 가자미 등 동해 해산물을 만끽할 수 있는 곳이다.(054)788-4959. 근남면 산포리 망양정횟집은 흔히 서해안에서 맛보는 바지락 위주 해물칼국수와는 다른 가리비와 홍합을 잔뜩 넣은 ‘동해안 식’ 해물칼국수를 맛볼 수 있다.(054)783-0430.

잘 곳 백암온천 지구 내 한화리조트 백암은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백암온천을 즐기고 인근 후포항이나 신선계곡을 다녀오기 좋다.(054)787-7001. 커다란 대욕장이 있는 덕구온천호텔은 뒤편 응봉산 원탕까지 오르는 트레킹 코스로 유명해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054)782-06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