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런 버핏(왼쪽)은 중국 양복 ‘트랜즈’를 즐겨입는다. 그는 빌게이츠 등 지인들에게도 이 양복을 권했다. <사진 : 블룸버그>
워런 버핏(왼쪽)은 중국 양복 ‘트랜즈’를 즐겨입는다. 그는 빌게이츠 등 지인들에게도 이 양복을 권했다. <사진 : 블룸버그>

버락 오바마 미국 전 대통령이 미국 재계를 대표하는 최고경영자 20명을 불러 회동을 가졌을 때다. 미국 경제 성장 방안 논의를 끝낸 오바마에게는 워런 버핏의 낡은 넥타이가 유독 눈에 들어왔다. 오바마는 바로 자신의 넥타이 중 하나를 그에게 선물했다. 워런 버핏의 넥타이 일화는 후에 ‘블랙 워런 버핏’이라 불리는 제이 지(Jay Z)와의 만남에서도 이어졌다. 그는 패셔니스타로 손꼽히는 제이 지의 넥타이를 칭찬했는데, 제이 지는 그 넥타이를 워런 버핏에게 직접 매어주며 선물했다. 워런 버핏은 “난 넥타이 선물은 거절하지 않아요”라며 특유의 웃음으로 답했다.

2017년 3월 기준, 약 756억달러(약 85조4280억원)의 재산으로 세계 2위 부자로 기록된 가치 투자의 전설, 워런 버핏. 주로 붉은색을 즐겨 매는 그의 넥타이는 낡았다. 또한 80대 노장의 슈트는 스타일리시하지도 않으며, 넥타이 매듭 또한 완벽하지 않다. 그럼 슈트는 초고가의 명품 이탈리안 맞춤 슈트일까? 영화 속 월스트리트 갑부들의 드레스룸은 개인 테일러(tailor)가 완벽하게 재단한 최고급 원단의 슈트들과 셔츠들이 즐비하게 걸려 있지만, 고향 네브래스카주 오마하에서 평범한 일상을 고집하는 워런 버핏은 다르다. 그는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입는 이탈리안 최고급 브랜드 브리오니(Brioni)나 남자들의 드림 슈트인 에르메네질도 제냐(Ermenegildo Zegna)가 아닌, 중국 브랜드 ‘트랜즈(Trands)’의 슈트를 입는다.


극단적으로 단순한 패션 추구

‘트랜즈’는 중국 다롄에 본사를 둔 슈트 브랜드로, 100% 수작업으로 슈트를 생산한다. 회장인 마담 리는 가난한 농사꾼의 딸로 태어나 재봉틀 하나로 시작해, 중국 전역에 22개 공장을 둔 브랜드로 키웠다. 워런 버핏은 자신이 ‘트랜즈’의 열혈 지지자가 된 이유를 ‘매일 입어도 새 옷 같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그의 말 한마디로 ‘트랜즈’의 주식은 한때 최고 72%까지 치솟기도 했다. 또한 친한 친구인 빌 게이츠에게도 소개해 빌 게이츠도 ‘트랜즈’ 슈트를 입는 갑부 리스트에 합류했다.

워런 버핏의 슈트 철학은 그의 투자 철학과 닮았다. 그는 벤저민 그레이엄이 남긴 ‘가격은 당신이 지불한 것이고, 가치는 당신이 얻은 것이다’라는 명언을 인용하곤 하는데, 자신의 슈트를 위한 투자에서도 가치 중심적인 선택을 하고 있다. ‘비즈니스맨이 꼭 패셔니스타가 될 필요가 있는가?’라는 것이 워런 버핏의 질문이다. 그에게는 비싼 가격을 치러야 하는 최고급 브랜드보다는 적당한 가격의 가치 높은 브랜드가 명품이다. 또한 워런 버핏은 회색, 감색, 검정 슈트와 화이트 셔츠, 붉은색 또는 푸른색 넥타이를 조화시키는 비슷한 슈트 스타일을 추구한다. 워런 버핏처럼 자수성가한 갑부들 중에서는 이런 극단의 심플 패션을 추구하는 이들이 많다. 이에 대한 전문가들의 분석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 결정의 시간을 줄이기 위해서다. 하루에도 수많은 중요 결정을 해야 하는 그들에겐 무슨 옷을 입고 어떻게 스타일링해야 할까 하는 시간 투자는 가치가 없다. 슈트, 셔츠, 넥타이 컬러를 제한해 어떻게 조합해 입어도 무난한 스타일만 선택한다. 

중국 다롄에 본사를 둔 ‘트랜즈’의 베이징 매장. <사진 : 블룸버그>
중국 다롄에 본사를 둔 ‘트랜즈’의 베이징 매장. <사진 : 블룸버그>


최소 비용으로 최대 가치 실현하는 패션

두 번째, 심플함으로 쉽게 ‘아이코닉 이미지’를 창조할 수 있다. 워런 버핏은 짙은 회색의 투 버튼 홑겹 재킷 슈트와 붉은 넥타이, 하얀 셔츠, 안경으로 그만의 아이코닉 이미지를 완성시켰다. 스티브 잡스가 검정 터틀넥 니트와 청바지만 고집하던 것과 비슷하다.

세 번째, 최소 비용의 최대 가치를 위해서다. 자신의 힘으로 억만장자가 된 천재들은 생각 방식이 일반인들과 다르다. 미국 노스다코타 주립대학의 연구에 따르면, 미국인들은 수입의 3.8%를 옷 쇼핑에 사용한다고 한다. 워런 버핏 같은 갑부들이 수입의 3.8%를 옷에 투자할 리 없다. 그가 약 4800만원 상당의 18K 금장 롤렉스를 차고 있긴 하지만, 그의 재산 규모에 비하면 너무 소박한(?) 시계라 할 수 있다.

‘비즈니스맨이 꼭 남성 패션지 화보에 등장하는 듯한 슈트 룩을 연출해야만 할까’라고 반문하는 기업가라면, 워런 버핏이 이상적인 롤모델이 될 것이다. ‘패셔너블’보다는 ‘밸류어블(Valuable)’을 추구하는 ‘가치 중심적 슈트 입기’가 워런 버핏식 슈트 입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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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냐(Zegna) 이탈리아 명품 남성 패션 브랜드로 남성 정장, 니트웨어, 스포츠웨어, 액세서리, 향수 등을 제작·판매하고 있다. 설립자의 이름에서 유래한 에르메네질도 제냐는 1910년 이탈리아 북부 트리베로(Trivero)에서 작은 원단 공장으로 시작해, 고급 원단 생산으로 쌓은 인지도를 바탕으로 1960년대 남성복 시장에 진출했다. 이후 에르메네질도 제냐는 ‘뛰어난 품질과 착용감’ 을 브랜드 철학으로 내세우고 프리미엄 남성복을 선보이며 성장했다.
트랜즈(Trands) 1995년 중국 다롄(大連)에 위치한 다양촹스(大楊創世)라는 회사에서 만든 남성 슈트 기성복 브랜드다. 2007년 트랜즈를 처음 접한 워런 버핏은 “갖고 있던 슈트를 다 버리고 트랜즈 슈트 9벌을 샀다” 고 말했다. 또한 “나는 외모로 찬사를 받아본 지 오래됐는데 다양촹스의 리 여사가 만든 트랜즈를 입고부터는 늘 찬사를 듣는다” 고 만족감을 표했다. 그리고 자신의 파트너인 찰리 멍거 버크셔 해서웨이 부회장과 빌 게이츠에게 “옷 가게를 열어 미국에서 트랜즈 슈트를 팔면 언젠가 부자가 될 것” 이라는 농담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