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임원인 김 이사는 얼마 전 82세 어머니에게 전화를 받았다. 며칠 전부터 몸에 힘이 없고, 일어서면 제대로 걷지 못하고 몇 발짝 옮기기도 전에 넘어지고 만다고 하소연했다. 생각해보니 어머니는 평소에도 자주 어지럽고 피곤해 꼼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기억력이 나빠졌다고 한 지도 꽤 오래됐다.

뇌에서 피질(皮質)은 바깥쪽에 신경세포가 많이 모여 있는 곳이다. 안쪽은 신경섬유가 많이 지나가는 곳으로 백질(白質)이라고 한다. 이 환자의 경우 피질 아래 부위(백질과 기저핵이 있는 곳) 여러 곳에 작은 경색이 지나간 흔적이 뚜렷했다. 대부분 아주 작은 크기지만 제법 큰 것도 몇 개 있었다.


증상 없는 ‘열공성 뇌경색’ 주의해야

대부분의 경우 가벼운 어지럼증이나 피로, 두통 등의 증상을 일시적인 것으로 보고 지나치기 때문에 뇌경색이 발생한 것을 모르고 지내왔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이번엔 비교적 경색이 크고 발생한 위치도 소뇌의 기능 장애를 일으키는 부위라서 운동실조(運動失調·위치와 태도를 바르게 잡지 못하거나 원하는 대로 움직일 수 없는 상태) 증상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그래서 어머니가 많이 놀랐을 것이다.

이렇게 작은 경색을 열공성 뇌경색이라 한다. 대뇌 동맥에서 바로 가지를 만들어 백질을 관통하는 아주 작은 소동맥이 막혀서 생긴다. 이곳에 직경 0.2~0.8㎜ 정도가 막히면 뇌경색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다른 뇌경색처럼 반신 마비가 되거나, 보행이 불가능하거나, 구음장애(構音障碍·발성 기관에 생긴 기능 이상으로 말하기 어려운 상태가 된 것)가 나타나거나, 손이 불편하거나, 몸이 저리거나, 감각이 마비될 수 있다. 여러 증상이 동시에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이보다 작은 크기의 소동맥이 막히면 증상이 없는 경우가 많다. 경색의 크기는 대부분 0.5㎜ 이하의 크기로 작은 편이지만 직경이 1.5㎝쯤 되는 것도 있다. 열공성 뇌경색의 원인은 고혈압이 60% 정도다. 25%는 심장이나 경동맥에서 작은 혈전이 떨어져 나와 생긴다.

김 이사 어머니의 혈압은 오히려 낮은 편이었다. 심장질환이나 당뇨는 없었지만 고지혈증은 심하고 꽤 오래됐다. 형제자매 모두가 고지혈증을 갖고 있고, 한 명은 혈관 치매를 앓고 있었다. 또 친정 어머니는 뇌졸중으로 돌아가셨다. 평소에도 많이 어지럽거나 심하게 피곤할 때 혈액검사를 해보면 콜레스테롤 수치가 300㎎/㎗ 이상 올라가 있는 경우가 많았다. 혈압이 높지 않고 이렇게 콜레스테롤 수치만 높아도 뇌경색이 생길 수 있다.

열공성 뇌경색은 전체 뇌경색 가운데 20%쯤을 차지한다. 일반 뇌경색처럼 재발 확률이 높은 편이다. 심장질환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아 심장마비로 사망할 가능성도 높기 때문에 심장 정밀검사도 받아야 한다. 열공성 뇌경색이 반복되면 뇌경색 증상이 뚜렷해지고, 심하면 치매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이 있으면서 두통, 어지러움, 심한 피로감, 일시적인 감각 이상이나 운동 장애가 생기면 바로 정밀검사를 해보는 것이 좋다.


▒ 김철수
연세대 의대 졸업, 가정의학과 전문의, 경희대 한의학과 졸업, 한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