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 애플 등에 엄청난 과징금을 부과한 마르그레테 베스타게르 EU 경쟁담당 집행위원. 사진 블룸버그
구글, 애플 등에 엄청난 과징금을 부과한 마르그레테 베스타게르 EU 경쟁담당 집행위원. 사진 블룸버그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독점 파괴자(Trust Buster)’ ‘EU(유럽연합)의 여성 차르(러시아의 옛 황제)’ ‘세금 여인(Tax Lady)’ ‘실리콘밸리의 저승사자’···.

마르그레테 베스타게르(Margrethe Vestager·50) 유럽연합(EU) 경쟁담당 집행위원은 현재 유럽은 물론, 세계에서 가장 ‘핫’한 정치인이자 관료다.

900명의 정예 조사 요원을 이끄는 그의 결정에 따라 미국과 유럽 등 세계 각국의 주가가 출렁이고 글로벌 기업이 천당과 지옥을 오간다.

가장 최근 그의 ‘타깃’이 된 기업은 구글과 구글의 모회사 알파벳이다.

베스타게르 위원은 7월 18일(현지시각) 구글이 반독점법을 위반했다며 과징금 50억달러(약 5조6500억원)를 물렸다. 반독점법 위반 기업에 대한 사상 최대 과징금이다.

사색이 된 순다르 피차이 구글 CEO가 “기술 혁신을 질식시키는 결정”이라며 펄쩍 뛰었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텍스 레이디(베스타게르 위원)는 미국을 너무 미워한다”고 볼멘소리를 했다. 하지만 그는 “사실에 따른 판단”이라며 눈도 깜짝하지 않았다.

매번 사상 최대를 경신하는 과징금을 물리는 그의 ‘활약상’ 때문에 EU 집행위원회 본부가 위치한 벨기에 브뤼셀에서 활동하는 산업 스파이의 수가 부쩍 늘었다는 보도까지 나온다.

베스타게르 위원은 훤칠한 키에 쇼트커트, 우아한 드레스를 즐겨 입고 항상 뜨개질 바구니를 들고 다니는 여성적인 모습이지만, 정치적 야망이 크고 필요할 경우 정면 대결도 마다하지 않는 ‘한 성깔 하는 정치인’으로 알려져 있다.


구글에 77억달러 과징금 부과

특히 자유 방임에 가까운 미국 기업 환경에 익숙한 실리콘밸리 기업에 ‘저승사자’ 같은 존재다. 미국에선 규제 대상이 아니라며 콧대를 높이던 실리콘밸리 기술 기업들이 그가 주도하는 반독점, 불공정 행위 조사를 받고 줄줄이 과징금 철퇴를 맞았다.

EU 경쟁담당 위원회가 미국 기업, 특히 실리콘밸리 기술 기업에 대한 ‘유일한 규제 기관’이란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다.

그에게 가장 호되게 당한 미국 기업은 구글이다. 구글은 이미 작년 6월 구글의 광고 검색 결과를 조작, 경쟁을 제한한 혐의로 EU 경쟁담당 위원회로부터 과징금 27억달러(24억2000만유로)를 부과받았다. 당시까지 사상 최대 과징금이었다.

지난 7월 50억달러 과징금을 추가로 부과받아 최근 2년 사이 구글에 부과된 과징금이 77억달러나 된다. 더구나 구글에 대한 EU 경쟁담당 위원회의 조사는 끝난 게 아니다.

현재 구글의 온라인 광고 ‘애드센스’ 계약의 독점법 위반 여부에 대해 조사도 진행 중이어서 구글이 앞으로 내야 할 과징금 규모는 천문학적 액수로 불어날 전망이다.

그는 올해 초 퀄컴에 과징금 12억달러(9억9700만유로)를 부과했고 작년에는 페이스북이 ‘왓츠앱’을 인수하면서 소비자에게 잘못된 정보를 제공했다며 과징금 1억3100만달러(1억1000만유로)를 부과했다. 아마존에 대해서도 작년 10월 세금 2억5000만유로를 징수했다.

구글 이전에는 애플이 베스타게르 위원에게 가장 ‘쓴 맛’을 본 기업이었다. 공교롭게도 미국의 거대 기업들이 주된 ‘사냥감’이었던 셈이다.

팀 쿡 애플 CEO가 2016년 1월 21일 브뤼셀을 직접 방문, 베스타게르 위원과 면담했다가 호되게 당한 일화는 유명하다. 당시 탈세 혐의 조사에 흥분한 쿡 CEO가 베스타게르 위원에게 법인세에 대한 ‘일장 강연’을 하면서 호통까지 친 것으로 알려졌다. 늘 웃는 얼굴로 쿡 CEO의 ‘훈시’를 묵묵히 들은 베스타게르 집행위원이 7개월 뒤 ‘애플은 불법으로 감면받은 세금 145억달러(130억유로)를 납부하라’는 결정문을 발표했다. ‘유럽의 법률을 잘 살펴 보라’는 점잖은 충고도 곁들였다. 팀 쿡 CEO가 할 수 있는 조치는 부과된 세금을 납부하고 소송하는 것뿐이었다.

그가 미국 기업을 상대로만 과징금 철퇴를 내린 것은 아니다. 2016·2017년 유럽 5대 트럭 회사의 가격 담합 혐의에 대해 38억유로의 과징금 매겼다. 유럽에서 카르텔에 대해 물린 사상 최대 과징금이다.

하지만 스타벅스, 맥도널드, 에어비앤비, 우버 등 미국 기업들이 불공정거래 위반, 또는 소비자 보호 규정 위반 등의 혐의로 줄줄이 조사받고 있어 당분간 ‘베스타게르’란 이름은 글로벌 기업, 특히 미국 기업에 공포로 남을 것이다.


덴마크 정치 상황이 차기 행보 변수

베스타게르 위원은 구글에 대한 ‘대담한 과징금 부과’ 이후 전 세계 좌파 세력의 스타 정치인으로 부상했다. 세계를 무대로 안하무인으로 돈을 긁어모으는 ‘탐욕스러운 실리콘밸리의 골리앗’을 혼내주는 ‘정의로운 다윗’ 이미지 메이킹에 성공했다는 평가와 ‘무책임한 포퓰리스트’란 평가가 엇갈린다.

내년 임기가 만료되는 장 클로드 융커(Jean-Claude Juncker) EU 집행위원장의 후임 물망에도 오른다. 하지만 본인은 애매모호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세금과 과징금 부과에 불복해 소송을 낸 애플, 구글 등과 법정에서 다투기 위해 집행위원 연임이 필요하다는 뜻도 간간이 내비치고 있다.

현지 언론들은 덴마크 정치 상황이 베스타게르 위원의 정치적 앞날을 좌우하는 가장 큰 변수가 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강경 우파의 지원을 받는 라르스 뢰케 라스무센 덴마크 현 총리는 최근 “베스타게르 위원을 EU 집행위원장에 추천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 공언했고 실업 수당 삭감 등에 분노한 덴마크 노조의 거부감도 여전히 심하다.


Plus Point

21세에 총선 출마, 30세에 장관 올라

베스타게르 위원은 1968년 덴마크 코펜하겐 인근의 소도시 글로스트럽에서 루터 교회 목사인 한스 베스타게르의 딸로 태어났다.

코펜하겐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뒤 21세 때인 1989년 덴마크 중도 좌파 계열 소수당인 사회자유당 소속으로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다가 낙선했다. 증조할아버지가 사회자유당 창당 멤버였다고 한다. 1998년 30세의 나이로 교육부 장관(~2001)에 임명됐고 2001년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2007년 당대표가 된 뒤 치른 총선에서 기존 의석의 절반에 불과한 17석(전체 의석 179석)을 얻는 데 그쳤다. “젊은 나이의 여성 당수에 대한 반감이 컸다”고 지인들은 전했다. 당시 실패를 계기로 미디어 컨설턴트를 영입, 과도하게 진지하고 심각한 정치인 이미지에서 탈피했다고 한다.

2011년 사회민주당 등과 3당 연정에 성공, 같은 여성 정치인인 헬레 토르닝-슈미트(Helle Thorning-Schmidt) 총리가 이끄는 내각에서 경제·내무장관과 부총리를 역임했다. 경제·내무장관 재임 당시 연정 리더인 토르닝-슈미트 총리의 반대를 무릅쓰고 기업 규제를 완화하고 고용과 실업 지원 프로그램을 과감히 축소하는 정책을 추진, 노조의 반발을 샀다. 2014년 호아킨 알무니아(Joaquín Almunia)의 후임으로 EU 경쟁담당 집행위원에 지명됐다. 토르닝-슈미트 총리와 함께 ‘덴마크판 웨스트 윙’으로 알려진 정치 드라마 ‘보르겐(Borgen)’의 실제 모델로도 유명하다.

고교에서 수학과 철학을 가르치는 남편(토마스 젠센)과 세 딸(마리아·레베카·엘라)을 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