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 인종·여성 차별 논란에 휘말린 래리 엘리슨 오라클 회장. 사진 블룸버그
소수 인종·여성 차별 논란에 휘말린 래리 엘리슨 오라클 회장. 사진 블룸버그

래리 엘리슨(Larry Ellison·75) 오라클 회장 겸 CTO(최고기술책임자)가 소수 인종, 여성 차별 논란에 휘말렸다. 블룸버그, 와이어드 등은 오라클의 소수 인종과 여성 차별 고용 정책이 미국 노동부 조사 결과 확인됐다고 1월 24일(현지시각) 일제히 보도했다.

미국 노동부는 “오라클의 최근 대졸 신규 채용자 500명 가운데 흑인은 6명, 히스패닉계는 5명으로 확인되는 등 소수 인종, 여성 지원자를 극단적으로 차별, 2013~2016년 4000만달러의 임금을 부당하게 줄인 사실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노동부는 “소수 인종, 여성 직원이 같은 일을 하는 백인 남성에 비해 평균 25% 낮은 임금을 받는 등 임금 차별도 확인됐다”고 밝혔다. 노동부는 작년 1월 인종과 성차별을 금지한 연방법을 위반했다며 오라클을 제소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오라클이 최종 패소할 경우 수억달러 손실이 예상된다고 보도했다.

소수 인종(유대인), 저소득 가정 입양아 출신으로 대학 중퇴 학력을 딛고 거부가 된 엘리슨 회장이 소수 인종, 성차별 혐의를 받은 것에 대해 실리콘밸리 성공 신화의 어두운 이면이 드러난 것이란 비판이 나온다.


‘풍운아, 악동, 플레이보이’ 평가 갈려

‘실리콘밸리의 풍운아’ ‘실리콘밸리의 악동’ ‘실리콘밸리의 플레이보이’.

실리콘밸리와 연결된 별명들이 상징하듯 엘리슨 회장은 ‘억만장자 공장’ 실리콘밸리를 대표하는 기업인이다. 2012년 개인 재산 440억달러(약 50조원)로 세계 억만장자 순위 3위에 오르는 등 ‘억만장자 톱10 리스트’에 빠짐없이 이름을 올리고 있다. 현재 재산은 595억달러(약 67조원)로 추정된다(2018년 11월 현재·포브스).

그에 대해서는 거듭된 혁신, 앞을 내다본 투자로 세계 최대의 데이터베이스 기업을 키운 위대한 기업인이란 평가와 ‘쓰레기 같은 독설(trash-talk)’을 불사하며 경쟁자를 밟고 올라선 무자비한 기업인이란 평가가 엇갈린다. 개인 제트기와 초대형 요트를 굴리는 호화로운 생활, 화려한 여성 편력으로 ‘플레이보이’란 딱지가 떨어지지 않는다.

엘리슨 회장은 1944년 뉴욕의 빈민가 브롱크스에서 플로렌스 스펠만의 혼외자로 태어났다. 생물학적 아버지는 이탈리아계 공군 조종사로 알려져 있다. 생후 9개월 때 폐렴에 걸리자 생활고를 견디다 못한 생모가 외삼촌 부부에게 입양 보냈다. 48세 때 생모와 첫대면했다고 한다. 양아버지는 뉴욕 엘리스섬의 이름을 따 성을 엘리슨으로 개명한 러시아계 유대인 이민자로 하급 공무원이었다.

비상하지만 반항기 가득한 소년으로 성장한 엘리슨 회장은 일리노이대 어바나샴페인 캠퍼스에 2년간 다니다 양어머니가 사망하자 학업을 포기했고, 시카고대에 입학했다가 한 학기 만에 중퇴했다.

청년 엘리슨이 포드 선더버드를 몰고 캘리포니아주에 도착한 것은 1966년이었다.

‘웰스 파고’ ‘암달’을 거쳐 ‘암펙스’에 정착, 미국중앙정보부(CIA)가 발주한 데이터베이스프로그램 ‘오라클’을 개발하던 그의 인생은 IBM의 컴퓨터 과학자 에드거 코드가 쓴 ‘관계형 데이터베이스’란 논문을 읽고 확 달라졌다.

고객 이름, 나이, 주소, 연락처 등 다양한 데이터로 표를 구성하면 어떤 항목으로든 조회하고 출력이 가능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할 수 있다는 코드의 주장은 지금은 당연하지만 당시에는 획기적인 아이디어였다.

‘돈 냄새’를 맡은 엘리슨 회장은 1977년 친구 두 명과 함께 ‘소프트웨어 개발 연구소(1982년 오라클로 개명)’를 창업, 2년 뒤 ‘오라클2’를 발표했다. 창업 자금 2000달러 가운데 1200달러를 엘리슨 회장이 냈다.


IBM·MS·HP·구글과 싸우며 성장

사업 초기 영업직원이 일단 계약을 따면 미래 매출에 해당하는 수당까지 챙겨주는 ‘영업 제일주의’로 경쟁사 IBM을 누르고 돈방석에 올랐다. 하지만 계약을 따기 위해 없는 기능을 과장하는 일이 다반사였고 거액 소송으로 회사가 흔들리자 1990년 직원 10%를 감원했다. 1990년대 ‘사이베이스’ ‘인포믹스’ 등과 죽기살기식 난타전을 벌였고 경쟁사들이 경영난으로 하나둘 사라지면서 승자가 됐다.

비슷한 시기에 창업해 IBM 컴퓨터용 소프트웨어를 팔아 성장한 마이크로소프트(MS)와도 무자비한 싸움을 했다. MS 상장 하루 전날 오라클을 전격 상장하는 등 자존심 대결에 이어 MS가 윈도용 SQL 서버로 데이터베이스 시장을 잠식하자 ‘안티 MS’의 선봉을 자처했다. “가까운 미래에 MS가 윈도에 점심식사를 끼워팔 것”이라는 독설도 퍼부었다.

닷컴 버블 붕괴, 9·11 테러, 반독점 소송(2003~2004년) 등의 위기를 피플소프트, 선마이크로시스템스 등의 인수·합병으로 극복했다.

2009년 ‘자바’를 개발한 선마이크로시스템스를 인수한 뒤 구글과 ‘맞짱’을 떴다. 2010년 구글의 모바일 운영체제 안드로이드가 ‘자바’ 기술 37개를 무단 도용했다며 88억달러에 달하는 초대형 저작권 소송을 제기했다. 1심 구글 승리(2012년), 2심 오라클 승리(2014) 등 엎치락뒤치락한 끝에 작년 3월 8년간의 전쟁에서 승자가 됐다.

‘실리콘밸리의 산파 기업’인 HP와도 각을 세우고 있다. 2009년 절친 마크 허드가 HP CEO에서 경질되자 오라클 사장으로 즉각 영입했고, HP는 기밀 유출 혐의로 소송을 제기했다. 오라클은 HP, MS, 시스코시스템스, 델, 후지쓰 등이 결성한 ‘안티 오라클’ 동맹으로부터 협공을 받고 있다.

클라우드 간판 기업으로 뜬 세일즈포스 창업자 마크 베니오프(44)와 ‘애증 관계’도 유명하다. 한때 오라클 창업자와 최연소 부사장으로 호흡을 맞춘 두 사람은 이제 서로 공격하는 사이가 됐다. 하지만 세일즈포스의 기업 가치가 400억달러를 넘으면서 창업 자금의 3분의 1(100만달러)을 투자한 엘리슨 회장의 재산도 덩달아 불어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고 사방에 적만 있는 것은 아니다. 고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자와는 둘도 없는 ‘절친’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잡스 회장의 애플 복귀 당시 애플 이사회 멤버로 참여, 지원 사격을 하기도 했다. 출신과 성장 배경(이민자 자손, 저소득층 입양아, 대학 중퇴)의 동질성이 개성 강한 두 사람을 연결했다는 분석도 있다.

최근에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와 친한 사이로 알려졌다. 테슬라의 초기 투자자인 그는 2대 주주 자격으로 작년 말 테슬라 이사회 참여를 선언했다.


Plus Point

요트·전투기 수집이 취미

래리 엘리슨 회장은 평소 요트를 즐기는 것으로 유명하다. 사진 블룸버그
래리 엘리슨 회장은 평소 요트를 즐기는 것으로 유명하다. 사진 블룸버그

1967년 아다 퀸과 첫 결혼 후 엘리슨 회장은 4번 결혼하고 4번 이혼했다. ‘돌싱’인 현재도 여배우 등과 끝없이 염문을 뿌리고 있다.

회사 창업 6개월 전 결혼한 두 번째 부인에게 지불한 위자료는 단 돈 500달러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네 번째 결혼식에는 잡스 회장이 결혼식 공식 사진사로 활동했다. 세 번째 부인과 사이에 두 명의 자녀를 두고 있다.

2003년 BMW 오라클 요트팀을 창설, 2010년 1억5000만달러를 들여 건조한 ‘USA17’호를 타고 아메리칸컵에서 우승했다. 요트를 만들고 팀을 구성, 직접 경기에 나서는 요트광이다.

비행기 조종 자격증 소유자로 전투기 2대 등 개인 비행기 여러 대를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BNP파리바 테니스 오픈 대회 지분 절반을 포함, 2개 테니스 대회 개최권을 가지고 있으며 맥라렌 F1 등 수퍼카 수집으로도 유명하다. 아큐라 NSX가 가장 아끼는 차로 알려져 있다.

캘리포니아주 우드사이드에 1억1000만달러짜리 저택에서 주로 거주하는데 일본식 정원에 심취, 거대한 인공 호수를 조성했다. 말리부에 여러 채의 별장과 하와이에서 6번째로 큰 라나이 섬의 98%를 소유하고 있다. 2010년 ‘아이언맨 2’에 카메오로 출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