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오산 기지에서 이륙 준비 중인 U-2S 정찰기. 60년 전에 개발된 기종임에도 여전히 활동 중인 미군의 전략 정찰 자산이다. 사진 위키피디아
2006년 오산 기지에서 이륙 준비 중인 U-2S 정찰기. 60년 전에 개발된 기종임에도 여전히 활동 중인 미군의 전략 정찰 자산이다. 사진 위키피디아

1월 6일, 삼성전자는 앞으로 생산할 자사의 최신 스마트TV에 애플 아이튠즈와 에어플레이 2를 탑재한다고 발표했다. 다음 날 LG전자도 같은 서비스를 제공할 것임을 밝혔다. 독불장군처럼 고유의 플랫폼을 고집해온 애플이 아이튠즈를 타사 기기에 탑재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삼성전자와 애플의 동맹은 ‘적과 동침’으로 불리며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삼성전자와 애플은 스마트폰 시장을 놓고 지난 7년 동안 치열한 법적 공방을 벌여온 견원지간(犬猿之間)이다. 애플은 삼성전자로부터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을 공급받고 있다. 하지만 애플이 삼성전자에 우호적이어서 이런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아니다. 삼성전자가 생산하는 제품의 좋은 품질을 포기할 수 없어서 내린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만일 애플에 대안이 있다면 즉각 삼성전자와 거래를 중단할 것이다.

삼성전자와 애플이 겪는 어려움을 살펴보면 두 회사 간 낯선 동맹의 맥락을 이해할 수 있다. 애플이 최근 내놓은 신제품들은 전작과 달리 시장의 이목을 끌지 못했다. 게다가 애플은 매출 규모가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중국 시장에서 고전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 간 무역전쟁에 따른 중국 소비자의 반미(反美) 감정과 중국 전자 업체의 선전 탓에 애플은 맥을 못 추고 있다. 애플의 시가 총액은 지난해 8월 미국 기업 최초로 1조달러를 돌파했지만, 불과 4개월 만에 40%나 떨어졌다.

삼성도 지난해 4분기 실적이 10% 이상 감소될 것으로 예측되는 암울한 상황이다. 그동안 엄청나게 돈을 벌어준 반도체 부문의 시장 전망이 좋지 않고, 다른 사업군도 성장세가 둔화하는 중이다. 따라서 스마트TV의 사례처럼 하드웨어가 강점인 삼성과 소프트웨어에서 우위에 있는 애플의 합종연횡은 어쩌면 살아남기 위한 당연한 수순이라고도 할 수 있다.

경영에 있어 그 어떤 가치보다 우선돼야 할 것은 ‘이익’이다.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서라면 어제의 경쟁자가 오늘의 우군이 되는 것은 흔한 일이다. 오히려 ‘영원한 친구도 영원한 적도 없다’는 말처럼 동맹과 배반이 수시로 벌어지는 외교·군사 관계에 비한다면 산업계에서 벌어지는 이런 일들은 약과다. 군사 분야에서는 자신과 맞서 싸우는 적을 도와주는 말도 안 되는 사례가 의외로 많다.

1960년 5월 1일, 소련은 영공을 불법 침범한 미국 정찰기를 격추했다고 발표하면서 생포한 조종사와 비행기 잔해를 공개했다. 때는 냉전 시대, 미국과 소련의 대립이 한창이었다. 당시 소련 총리였던 니키타 세르게예비치 흐루쇼프는 미국에 공식적인 사과와 함께 책임자를 처벌하고, 이 같은 사태의 재발 방지를 요구했다. 만일 이를 수락하지 않는다면 같은 해 5월 16일로 예정된 승전국 회의를 무산시키겠다고 했다.

부인할 수 없는 여러 증거로 인해 미국은 소련 영공을 침범했음을 물밑에서는 인정했다. 하지만 미국은 공식적으로는 끝까지 무대응으로 일관해 소련을 자극했다. 결국 회의는 무산됐고, 미국과 소련 간 긴장 관계는 한층 더 심각해졌다. 이것이 유명한 ‘U-2 격추 사건’이다. 이를 계기로 미국의 전략 정찰기인 U-2가 세상에 알려졌다.

1950년대 개발된 U-2는 속도가 느리지만 무려 24㎞ 고고도까지 올라가 정보를 수집하는 정찰기로, 지금도 활약하고 있다. 첩보위성이 보편화하기 전에는 이런 정찰기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다른 나라의 영공 침범을 감행했다. 다른 나라에 대한 정보 획득은 포기할 수 없는 군사 활동이다.

무단 영공 침범은 침범당하는 나라와 침범한 나라 모두가 사실을 제대로 공표하기 어려운 일이다. 무단으로 영공을 넘어가 정찰하는 쪽은 국제법을 위반했으니 당연히 그렇고, 만약 당한 쪽이 정찰기를 격추하지 못했다면 자신들의 방공망이 허술하다고 시인하는 꼴이기 때문이다. 소련은 U-2의 존재를 알고 있었지만 격추하지 못해 전전긍긍하며 독이 올라 있었다. 결국 수많은 실패 끝에 간신히 격추에 성공했다.

어쨌든 이 사건으로 미국은 수세에 몰렸지만 그렇다고 소련 정찰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핵전쟁 위험에 시달리던 당시에는 어떻게든 공격 징후를 미리 탐지해야 했다. 미국은 U-2가 격추당한 이유를 이 정찰기의 속도가 느려서라고 판단했다. 따라서 새로운 정찰기는 소련의 미사일을 피할 수 있도록 고속 비행이 가능해야 할 것이라고 결론내렸다.


전량 퇴역했지만 ‘가장 빠른 유인 비행기’라는 타이틀을 현재까지도 보유한 SR-71 정찰기. 냉전 당시 가장 중요한 정찰 대상인 소련에서 도입한 티타늄으로 제작했다. 사진 위키피디아
전량 퇴역했지만 ‘가장 빠른 유인 비행기’라는 타이틀을 현재까지도 보유한 SR-71 정찰기. 냉전 당시 가장 중요한 정찰 대상인 소련에서 도입한 티타늄으로 제작했다. 사진 위키피디아

美, 소련 도움으로 정찰기 개발

이를 목표로 개발해 1966년부터 실전 배치된 새로운 전략 정찰기가 최대 마하 3.3의 속도로 비행할 수 있는 SR-71이다. 냉전이 종식된 후인 1998년에 전량 퇴역했지만 SR-71은 지금까지도 가장 빠른 유인 비행기라는 명성을 가지고 있다.

미국은 U-2 격추 사건 후에 영공을 침범하지 않기로 비밀리에 약속했음에도 수시로 SR-71로 근접 정찰을 벌여 소련의 신경을 긁어놓았다. 또 종종 중국·북한·쿠바처럼 방공망 체계가 허술한 국가의 영공을 가로지르며 정보를 수집했다. SR-71은 한마디로 레이더로 뻔히 보이지만 쫓아가거나 격추할 방법이 없는 무시무시한 무기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소련의 도움이 없었다면 미국의 SR-71 개발은 상당히 늦어졌을 것이다. 개발 당시에 연구진이 가장 고민했던 부분은 기체의 재질이었는데,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소재가 소련에서 생산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볍고 튼튼하며 열전도도 낮아야 하는 조건을 충족하는 소재는 티타늄이었다. 티타늄의 최대 생산국은 공교롭게도 소련이었다.

그런데 티타늄은 제련이 어려워 가격이 비싼 데다 수요까지 적어 구하기 힘든 소재였다. 소련 말고는 정찰기에 쓸 만한 품질 좋은 티타늄을 생산하는 나라가 없었다. 결국 미국 정보 당국은 유령 회사를 설립하고 소련에서 티타늄을 수입해 SR-71을 만들어냈다. 소련과 미국의 적대국들을 두고두고 괴롭혔던 정찰기가 사실은 소련의 도움으로 만들어진 셈이다.

그런데 티타늄이 미국으로 반출되면 군사용으로 전용될 수 있는 물자임을 소련이 몰랐던 것은 아니었다. 나중에 밝혀진 사실에 따르면, 소련은 티타늄을 공급해 주는 대가로 미국으로부터 적대국 반출이 금지된 반도체를 비롯한 여러 물자를 받았다고 한다. 아무리 첨예하게 대립했던 냉전 시대였을지라도 이익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눈감고 포기해야 했던 것이다. 산업에서뿐 아니라, 안보 분야에서도 많이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지 이처럼 적과 동침은 종종 있었던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