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록색 빛의 자락이 춤추듯 출렁이며 장관을 이루는 핀란드 키틸라의 오로라. <사진 : 이우석>
연록색 빛의 자락이 춤추듯 출렁이며 장관을 이루는 핀란드 키틸라의 오로라. <사진 : 이우석>

겨울은 추워야 제맛, 겨울에만 즐길 수 있는 것도 많다. 이 중 하나가 오로라(Nothern Light)다. 오로라를 보기 위해 핀란드로 날아갔다. 그것도 하필 가장 추울 때.

핀란드 북부 키틸라에 도착한 날의 기온은 영하 32도였다. 이날부터 시작된 추위는 이틀 후 자그마치 영하 40도까지 내려갔다. 도저히 상상조차 허용되지 않던 숫자 ‘-40’이 호텔 앞 날씨 전광판에 떡하니 찍혔다.

냉장고 냉동실(영하 20도)보다 산술적으로 2배 추운 날씨다. 화성(火星·경기도 도시이기도 하지만 정약용이 지은 성이 아니라 행성이다)의 표면온도 중 따뜻한 곳이 영하 40도다. 해는 오전 10시는 넘어야 떠오른다. 물론 오후 4시면 저문다. 백야(白夜)가 아닌 흑주(黑晝)다.

일단 헬싱키를 떠난 핀에어 항공기는 키틸라 공항의 활주로가 아니라 스케이트 장에 착륙했다. 트랩을 내려와 확인해봐도 두꺼운 얼음 바닥인데 신기하게도 미끄러지지 않았다. 비행기를 순록이 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풍경이다.


한파로 꽁꽁 얼어붙은 키틸라 레비 스키장의 카페. <사진 : 이우석>
한파로 꽁꽁 얼어붙은 키틸라 레비 스키장의 카페. <사진 : 이우석>

상상하지 못할 추위

맨 얼굴을 내밀고 바깥을 돌아다닌다면 기분이 무척 나쁠 듯하다. 누군가 계속 양손으로 뺨을 찰싹 찰싹 때리는 듯한 기분이다. 게다가 숨은 내쉬자마자 언다. 이 정도 기온이면 대부분 무척 건조하게 마련이지만 눈썹과 코털, 입술에 성에가 맺힌다. 숨 때문이다. 그래서 뭐든 얼굴 주변에 있는 물건(예를 들면 마스크나 안경, 모자 등)을 피부에 딱 붙여버린다. 눈썹과 코털은 부러진다.

아무튼 무척 추웠지만 오로라를 본다는 기대감에 즐겁고 행복했다. 밤이 길고 추울수록, 당연히 위도가 높을수록 극광 오로라를 볼 확률이 올라간다.

오로라를 보기 위해 매일 호숫가 주변을 배회했다. 든든히 대비했다. 히트텍과 타이즈를 여러 겹 껴입고 장갑도 벙어리 장갑까지 3개나 꼈다.

신자마자 무좀이 생기도록 고안된 발열 양말과 IS 테러리스트들이 쓰는 것처럼 생긴 복면도 많은 도움이 됐다. 오로라는 그 신비한 모습을 내게 쉽게 보여주지 않았다. 한국에서부터 가져온 발열 핫팩 100개는 모래시계처럼 돌아갈 날을 알렸다.

여러 밤을 호수나 산에 올라 기약 없이 오로라를 기다렸다. 이날 오로라 예보는 레벨 2(최고 9까지 있다). 강수 확률 20% 정도에 불과한데 비를 기다리는 꼴이었지만 그래도 뭔가 확신이 있었다. 감이 좋았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키틸라에서의 마지막 밤이 왔다. 오늘이 지나면 헬싱키로 돌아가야 한다. 마지막 날 저녁 식사 중이었다. 지우개처럼 맛없는 순록 스테이크를 잘라먹고 있었다. 붉게 상기된 얼굴(아마 추워서 그랬을 것이다)의 핀란드인 가이드(이름이 하겔이었던가)가 식당으로 뛰어들어왔다. “노던 라이트, 노던 라이트!” 그는 테이블이 흔들릴 정도로 큰 목소리로 외쳤다.

우리 일행은 갑자기 트램펄린에라도 올라탄 것처럼 동시에 뛰어올랐다.

어두운 바깥으로 뛰쳐나갔다. 검은 하늘에 희끄무레한 구름 같은 것이 뭔가 바삐 움직이고 있다. 한참을 바라보며 망막을 최대한 열자 어렴풋이 연두색을 띠고 있다. 그토록 기다리던 오로라였다.

달렸다. 순록처럼. 미리 빌려놓은 렌터카가 숙소에 있었기 때문에 호텔까지 한 700~800m 거리를 한 번도 쉬지 않고 내달렸다. 폐부는 드라이아이스를 밀어넣은 듯 시렸지만 그만큼 심장도 벅차올랐다.

부랴부랴 호숫가로 차를 몰았다. 무조건 마을보다 어두운 곳으로 가야 한다. 별을 관측할 때도 마찬가지다. 주변에 빛이 거의 없는 호숫가에서 보니 좀 더 선명한 녹색과 붉은색을 띠고 있다. 이토록 조급했던 적은 없었다. 포커스를 수동으로 맞춰야 하는데 이것저것 따질 겨를이 없었다. 초점이 나간 줄도 모르고 연신 셔터를 눌러댔다. 내려앉았다가 접히고, 또 넓게 퍼지며 갈라지고…. 활발하게 돌아다니던 오로라가 얼추 초점이 맞았을 때부터는 야속하게도 숲 뒤편에 얌전히 웅크리고만 있다.

원래 이곳에 오면 매일 오로라를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밤이면 달 뜨듯 오로라가 항상 춤을 추고, 실제로 제다이 광선검처럼 ‘웅~’하는 소리도 들을 줄 알았다. 사전을 읽을 수 있을 만큼 환한 녹색 오로라를 불꽃놀이 감상하듯 볼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것은 굉장히 드문 일이란 것을 현지인들의 반응을 보고 깨달았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굉장히 춥다. 이 날이 문제의 ‘영하 40도’ 날이었다. 설국열차처럼 하얀 성에가 뒤덮은 카메라는 이미 액정이 켜지지 않는다. 곧 이어 배터리가 순식간에 방전됐고 릴리스 전선이 엿치기하듯 뚝 부러졌다. 조작을 위해 카메라에 손을 대면 손가락이 딱딱 붙고, 뷰파인더에 눈을 댈라치면 뺨이 붙어버린다. 이제 방으로 돌아갈 때가 됐다. 따뜻한 곳으로.


▒ 이우석
성균관대 미술교육학과, 여행기자협회 회장, 14년째 여행·맛집 전문 기자로 활동 중


TIP 여행정보

즐길 거리 얼어붙은 툰드라 평원인 레비(Levi)에서 여행자가 체험할 수 있는 것은 꽤 많다. 하늘 같은 관(冠)을 쓴 순록이나 시베리아허스키가 끄는 썰매를 타고 택시처럼 이동할 수 있으며, 스노 모빌을 몰고 새하얀 숲과 얼음땅을 달릴 수도 있다. 물론 알파인이나 노르딕 스키도 즐길 수 있고, 설피를 신고 트레킹에 도전할 수도 있다.

가는 길 핀에어가 인천~헬싱키(매일 1회), 헬싱키~키틸라(매일 2회, 스케줄은 요일별로 상이) 구간을 운항한다. 헬싱키 반타 공항은 편리한 환승 절차와 세련된 쇼핑·식음장으로 유명하다. 핀에어 프리미엄 라운지는 다양한 휴식공간과 함께 사우나 시설까지 갖췄다. 레비 인구는 약 6000명이며 연중 약 40만명의 관광객이 방문한다. 43개 슬로프(리프트 29기)를 보유한 핀란드 최대 스키 리조트가 있으며 각종 국제대회를 치를 수 있는 약 230㎞의 크로스컨트리 트랙도 있다.
웹사이트(www.levi.fi).

국가 정보 겨울철 기온은 아주 추우며 해가 불과 5시간도 떠 있지 않는다. 콘센트는 한국과 같은 돼지코 모양, 유로존에 속해 있어 통화는 유로를 사용한다.

렌터카 오로라를 즐기려면 기동성은 필수다. 66년 역사를 자랑하는 유럽카는 유럽·북남미·오세아니아·아시아·아프리카·인도 등 전 세계 140개국 20만대 이상의 친환경 차량을 보유하고 있는 유럽 대표 렌터카 회사다. 도심과 공항 등 약 3700개의 대리점을 통해 차량 렌털 서비스를 제공한다. 한글로 된 홈페이지를 통해 여러 지역에서 차를 빌릴 수 있으며 핀란드 키틸라 공항 내 부스에서 차량을 인도받으면 된다.
문의 유럽카코리아(www.europcar.co.kr)
(02)317-8776, 88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