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어섬 인근 북한강에서 조정을 즐기는 모습. <사진 : 이우석>
붕어섬 인근 북한강에서 조정을 즐기는 모습. <사진 : 이우석>

이제 곧 장마가 시작한다. 비가 온다고 여행을 주저할 일은 아니다. 비가 오면 오는 대로 멋진 곳이 있다. 모든 강이 시작한다는 강원도, 그 안에서 금강산 가는 길 화천(華川)은 이름처럼 물이 근사한 곳이다. 일찍이 시인‧묵객이, 또 근래엔 음유시인 정태춘이 노래한 그 북한강. 강물이 흐르고 또 멈춰 파로호를 이루고 명경이 되어 하늘을 비춘다. 아침이면 물은 안개가 되어 수줍은 산하를 가린다. 그저 둘러볼 뿐 아무것도 안 해도 좋다. 그리운 금강산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고 내려오는 물을 마시면 된다.

때마침 이른 더위의 나날이라 물을 보는 여행이 즐겁다. 물의 고장 화천에선 물가에서 여러 가지를 즐길 수 있다. 차가운 새벽 강물을 기다리며 풀벌레 소리를 듣고, 낮엔 옛 선현처럼 그늘에 앉아 관수(觀水)를 해도 좋다. 땅 이름이지만 결국 물 이름인 고을, 화천은 그런 곳이다.


민물고기 많은 붕어섬에 낚시꾼들 모여

흔히 멋진 풍경을 보면 ‘그림 같다’고들 한다. 보통은 아름다운 것을 화폭에 담으니, 실사(實寫)를 보고 풍경화 같다고 하는 말은 실로 극찬이다.

그림도 여러 종류가 있으니 ‘그림 같은 풍경’도 역시 다양하다. 필묵으로 일필휘지로 그려낸 수묵화, 맑고 투명한 수채화, 느낌 자체만을 보는 추상화.

지금 화천땅에 가면 여러 그림을 만날 수 있다.

아침에는 고요한 물안개가 피어난 그 안에 수묵화를 펼친다. 햇볕이 좋은 날이면 와트만지에 한 붓씩 찍어낸 수채화로 산수를 물들인다. 맑은 호반에는 산천을 그대로 찍어낸 ‘데칼코마니’도 있다. 데칼코마니(Decalcomanie)란 그림을 그린 후 물감이 마르기 전에 종이를 접어 대칭으로 찍어낸 초현실주의 회화 기법이다. 막스 에른스트(Max Ernst)의 작업으로 유명하다.

스위스 호반도시 루체른과 인터라켄을 골고루 닮았다. 화천군 역시 아름다운 물의 나라다. 산에 댐을 지어 생겨난 크고 길쭉한 호수가 강처럼 이리저리 뻗어 있다.

그 중심에는 붕어섬이 있다. 북한강에 있는 섬이다. 붕어섬은 댐 건설로 생겨난 섬이다. 원래 작은 동산이었다. 이름처럼 붕어 등 다양한 민물고기들이 살고 있어 낚시꾼들에게는 원래부터 이름났다. 강변에 가로누운 화천열차펜션의 객실 창문을 열면 바로 붕어섬이 보인다.

산들로 둘러싸인 곳에 강이 호수처럼 고요히 흐르고 그 가운데 붕어섬이 버티고 있다.

화천은 강물 위에 데크를 놓아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자전거로 달려볼 수 있다. 강변을 달리다 데크를 따라 물 위를 달리고, 또 낡은 철교를 지나는 등 지그재그로 강물 위를 누빌 수 있다.


화천의 보쌈 맛집 ‘콩사랑’의 두부보쌈. <사진 : 이우석>
화천의 보쌈 맛집 ‘콩사랑’의 두부보쌈. <사진 : 이우석>

125미터 높이 ‘평화의 댐’도 볼거리

화천은 원래 금강산 유람길의 길목이었다. 지금은 군부대가 위치한 최전방이라 이 지역이 품은 여러 곳의 멋진 경치를 감상하기엔 다소 제약이 있지만 대신 그 덕분에 민족의 소원인 평화 통일에 관한 염원을 담은 볼거리가 있어 위안을 삼는다. 바로 ‘평화의 댐’이다.

아이러니하다. 원래 1980년대 군사정권이 ‘북한의 수공’에 대비한다며 국민적 모금을 통해 건설한 댐이다. 훗날 댐의 군사적 기능에 대해 부풀렸다며 대국민 사기극이란 소릴 듣기도 했지만, 지금은 수자원 확보와 평화를 기리는 목적으로 이용되고 있다.

파로호 상류 높이 125m 거대한 규모의 ‘평화의 댐’은 금강산에서 발원한 북한강 지류를 막은 댐으로 최북단 군사분계선 남쪽 9㎞에 위치했다. 이곳은 때 묻지 않은 경치도 좋고 ‘평화의 종’ 공원 등 둘러볼 만한 곳도 많다.

평화의 종은 세계에서 가장 큰 범종이다. 의미가 깊다. 전 세계 분쟁국가에서 일일이 모은 탄피를 녹여서 만든 것이다. 통일과 평화를 마음속으로 빌면서 타종할 수 있다. “피스!”

이곳에는 역대 노벨평화상 수상자의 평화 메시지와 핸드프린팅, 전쟁유품 등 볼거리가 전시돼 있어 자녀들과 함께 방문해도 의미가 있다.

물의 도시는 찾아오는 이에게 언제나 상쾌함을 준다. 물은 바람을 시원하게 만들고 향긋한 풀 내음을 담아 오감을 만족시킨다. 폐부를 씻어낼 수 있는 100리 산소길도 있고, 차로 구불구불 언덕을 넘어 가는 것보다는 물에서 배로 가는 것이 더 가까운 오지 ‘비수구미 마을’도 있다. 세상의 시름과 완전 차단된 듯한 비수구미 마을에선 힘찬 계곡도 만날 수 있으니, 화천에는 ‘바다’를 제외한 모든 물이 다 있다.

이제 곧 연꽃을 틔울 준비를 마친 서오지리 늪에서 호수나 강과는 또 다른 물을 만날 수 있다. 그저 반영(反暎)만이 가득한 늪. 잔잔한 그림을 가르며 배가 전진한다. 눈이 다 시원하다.

이름도 재미난 딴산 유원지는 화천 9경 중 제2경이라는 인공폭포가 있는 곳이다. 80m 절벽에서 떨어지는 낙숫물이 보기에도, 듣기에도 시원하다. ‘산 속 바다’라는 파로호도 만날 수 있다. 화천군 동쪽과 양구군 서쪽이 함께 물을 안고 있다.

국내 대부분 호수가 그렇듯 파로호 역시 인공호다. 1944년 화천댐이 만들어지며 생겨났다. 6·25 한국전쟁 당시 치열한 전투가 벌어져 북한군과 중공군 수만 명을 수장한 곳이다. 파로호에 서노라면 고요한 호숫물이 마치 분단된 땅에서 흘러나온 피눈물처럼 애잔하다.


▒ 이우석
성균관대 미술교육학과, 여행기자협회 회장, 14년째 여행·맛집 전문 기자로 활동 중


여행수첩

화천열차펜션 화천의 요모조모는 스위스 호반도시를 빼닮았지만 산악열차가 있는 스위스와는 달리 그동안 철길 하나, 역(驛) 하나 놓일 틈이 없었다. 금강산 가는 길목이라 일제 자본이 철로를 놓으려고 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화천에 열차가 있긴 하다. 실제로 달리는 열차는 아니지만 10량이나 되는 늘씬한 ‘새마을호 디젤 기관차’가 호반에 버티고 서 있다.

새마을호를 개조해 북한강변 붕어섬 인근 화천민속박물관 앞에 설치한 열차펜션이다. 10량을 나눠 총 21개의 객실을 갖췄다. 2인실(침대), 4인실(침대, 온돌), 9인 단체실(온돌) 등으로 다양하게 구성했다. 위치도 좋다. 다리 하나만 건너면 시내 중심부로 이어지고 여름철 화천 쪽배 축제가 열리는 붕어섬, 산천어 축제장도 바로 지척에 있다. 코레일관광개발(www.korailtravel.com), 대표전화 1544-7755.(033)441-8877

먹거리 화천읍 화천시장 내 옛골식당은 동태찌개로 유명한 곳. 매콤 시원한 국물에 쫀쫀한 동탯살이 담긴 찌개가 제법 맛있다. (033)441-5565. 청정 지역에서 자란 쇠고기 등심을 맛보려면 화천읍내 화천터미널 옆 골목 송화식당에 가면 좋다.(033)441-5100. 화천이 자랑하는 민물고기 매운탕은 화천경찰서 인근 청기와집이 잘한다.(033)442-4440. 형수님 식당은 갖은 반찬에 차려오는 백반으로 아침식사하기 좋은 곳이다.(033)442-3533.

종합관광안내 화천관광안내소 (033)440-28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