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사장은 마음이 편치 않다. 얼마 전 어머니가 치매 증상을 보여 집으로 모시고 왔기 때문이다. 올해 82세인 어머니는 몇 해 전부터 기억이 잘 안난다고 자주 말했다. 뒤돌아서면 잊어버린다고, 나이는 속일 수 없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워낙 머리가 좋았기에 기억력이 떨어져 가는 것에 충격이 큰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도 자식들과 손자의 전화번호나 생일은 K사장보다도 더 잘 기억했다. 기억력 감퇴를 나이 들어가는 노화의 과정으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엔 달랐다. 매일 복용하던 혈압 약을 먹지 않아 집에 쌓여 있고, 집 안도 평소 어머니 성격처럼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지 않았다. K사장이 한 달에 2번쯤, 예전보다 자주 찾아가는데 오히려 못 본 지 오래됐다고, 왜 오지 않느냐고 서운해했다. 집 안에 건강식품이 가득 쌓여 있어 왜 이렇게 많이 샀는지 물어보니 대답을 못 하고 얼굴만 쳐다봤다.


치매 중기엔 친한 친구 몰라보기도

치매가 발병하면 기억력 장애가 생긴다. 당연히 기억날 것 같은 일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초기엔 본인이 경험한 중요한 사건을 일주일이 채 지나지 않아 완전히 잊어버린다. 기억날 만한 단서를 주거나, 재현해 보이면서 설명해도 전혀 기억을 하지 못하고 생소하게 느낀다. 그렇지만 중요한 옛날 기억은 비교적 온전하게 유지하고 있어 기억력이 떨어진 것을 가볍게 생각하거나 치매가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사람은 최근에 경험한 새로운 기억은 해마(기억중추)에 일시적으로 보관하다가 필요한 경우 신피질(주로 전전두엽과 측두엽 피질 중 변연계를 제외한 부분)에 장기기억으로 등록한다. 치매 초기엔 해마부터 약해지기 때문에 새로운 기억을 유지하고 오래 저장할 수 없지만, 신피질은 비교적 온전하기 때문에 옛날 기억은 잘 떠올린다.

치매 중기가 되면 해마가 더욱 약해지면서 오전에 경험한 사건을 오후에 기억하지 못한다. 신피질도 약해지기 시작하면서 중요한 옛날 기억도 많이 소실된다. 친한 친구를 몰라보거나, 자주 보지 않는 손자를 몰라보는 경우가 많다. 늘 다녔던 길도 잊어버려 집 근처에서 집을 찾아오는 능력을 점점 잃어버린다.

치매 말기가 되면 해마가 거의 녹아 없어져 방금 있었던 일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신피질도 많이 약해져 대부분의 옛날 기억이 사라진다. 화장실도 못 찾고 배우자나 같이 사는 가족도 알아보지 못하기 시작한다.

치매가 시작되는 시점에 남아 있는 뇌세포는 대부분 활력이 떨어져 있고 버틸 수 있는 시간이 길지 않다. 그래서 치매가 시작되면 빠르게 나빠진다.

이미 치매가 시작된 경우에도 뇌세포의 활력을 어느 정도 회복시킬 수는 있다. 활력이 회복되면 뇌기능이 호전돼 오래 버틸 수 있고, 진행도 늦춰진다. 이런 이유로 치매 치료로 인지기능 개선 치료뿐만 아니라 뇌세포 재활 치료를 동시에 해주는 것이 좋다. 치료는 초기 단계부터 하는 것이 좋다.


▒ 김철수
연세대 의대 졸업, 가정의학과 전문의, 경희대 한의학과 졸업, 한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