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 대표는 남편과 함께 가구점을 운영한다. 두 아들은 유학 중이다. 친정엔 다른 형제자매가 없어 집착이 심한 어머니를 두고 며칠씩 여행을 떠날 수 없다. 그래서 아들의 고등학교 졸업식에도 가지 못했다.

80대 후반인 친정어머니는 아파트 바로 위층에 혼자 살고 있다. 알츠하이머 치매로 진단받은 지 3년이 지났다. 낮에는 간병인이 돌보지만 도둑이라고 착각하는 망상이 심해 간병인이 자주 바뀌어 L 대표의 마음은 편치 않다. 어머니는 밤에 잠을 잘 자지 못해 새벽 1시 넘어서 잠이 드는데도 얼마 지나지 않아 깬다. 그러다 보니 낮잠을 많이 잔다. L 대표가 피곤해 어쩔 수 없이 일찍 곯아떨어진 다음 날이면 휴대전화에 어머니 번호로 부재 중 전화가 수십 통도 더 찍혀 있다. 밤새 전화를 걸고 또 걸고 한 것이다. 이런 일이 있을 때면 L 대표의 마음은 무너져 내리는 것 같다.

병원에서 치매약과 함께 수면제를 처방받아 온 적도 있다. 하지만 어머니는 양약을 완강하게 거부해 한약만 먹는다. 한약에도 수면을 돕고 망상에 도움이 되는 약이 있지만 약성이 약해 증상이 심할 때는 양약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 하지만 환자가 극구 양약을 거부하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잠을 못 자고 거실을 왔다 갔다 하면서 내는 소리가 아래층까지 전해져 올 때면 L 대표는 안타까우면서도 이러다 본인이 병이 날 지경이라 힘들다.

약도 싫어하고 침도 맞을 수 없는데 잠을 잘 자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이가 들수록 잠이 줄어 불면증이 생기는 경우가 많다.


한의학 치료도 병행하면 효과적

특히 대부분의 치매 환자는 불면이 심하다. 불안증 때문에 불면증이 더 심해지기도 한다. 약도 중요하지만 마음의 안정이 더 중요하다. 잠자리에 들기 전 스킨십이 도움이 된다. 옆에 나란히 누워 같이 잠을 자는 것도 좋다. L 대표의 경우는 자는 것도 불편하지만 남편이 있으니 그럴 수도 없다. 어머니를 먼저 재워드린 후 내려와 자면 몸이 힘들고 수면 시간도 부족해지지만 그래도 가장 편하게 잘 수 있는 방법이다.

한의학적으로 기(氣)를 내리는 혈자리를 자극하면 잠이 잘 온다. 제일 쉽고 편하게 누를 수 있는 혈자리로 ‘태충(太衝)’이 있다. 엄지발가락과 검지발가락 사이에서 발등 쪽으로 3~5㎝ 올라 온 위치를 누르면 아픈데, 이곳이다. 기를 내린다는 것은 뇌의 지나친 흥분을 가라앉혀주는 것으로, 당연히 잠이 잘 온다. 뿐만 아니라 스킨십 자체도 마음의 불안을 없애준다. 어린아이 재우듯이 이야기해주면서 살살 누르면 이내 잠이 든다. 한 번 두 번 기를 내리는 것은 재미있다. 약 없이 잠이 드는 것을 보면 신기하기도 하다. 하지만 기가 빠지는 일이기도 하다. 특히 밤에 기가 떨어진 상태에서 남의 기를 내리면 본인의 기가 빠지기 때문에 힘들다. 밤마다 계속 기를 내려주는 행위는 생각보다 쉽지 않다. 계속 하다 보면 처음만큼 기가 쉽게 내려가지 않는다. 기를 내리는 사람의 마음이 모이지 않고 정성이 부족해지면 상대방도 느낄 수 있다. 혈자리를 자극해도 쉽게 잠 들지 못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치매 환자의 기를 내리는 데는 사랑이 필요하다. 사랑의 기가 전달되기 때문이다. 아무리 치매 환자라도 간병인이 자신을 사랑으로 간병하는지 아닌지 분명히 느낀다. 마음을 다해야 하는 이유다.


▒ 김철수
연세대 의대 졸업, 가정의학과 전문의, 경희대 한의학과 졸업, 한의사

김철수 킴스패밀리의원·한의원 원장

  • 목록
  • 인쇄
  • 스크랩
ⓒ 조선경제아이 & econom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