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벨 두로프 CEO는 검은색 옷을 즐겨 입는다. / 블룸버그

4월 16일(현지시각), 러시아에서는 유례없는 ‘디지털 블랙 아웃’이 일어났다.

인터넷 사이트와 수백만개의 개인 메신저가 불통되고 인터넷 쇼핑, 택배 서비스도 마비됐다. 러시아 정부가 구글·아마존 등 해외 클라우드 서버를 이용하는 러시아의 IP 주소 1800만개를 일시에 차단했기 때문이다.

러시아 정부는 “텔레그램 이용을 금지한 법원 결정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시적 혼란”이라고 해명했다. 이번 조치로 러시아 인터넷 트래픽의 40% 이상이 ‘올 스톱’됐다.

러시아가 ‘텔레그램과의 전쟁’으로 대혼란에 빠진 이틀 뒤인 4월 18일 ‘중동의 맹주’ 이란도 ‘텔레그램과의 전쟁’을 선언했다. 이란은 “민심을 선동하는 수단으로 악용된다”며 정부와 공공기관의 텔레그램 이용을 전면 금지했다.

‘여권의 대선 여론조작 스캔들’로 비화되고 있는 한국의 ‘드루킹 사건’ ‘안희정 전 충남지사 성폭행 스캔들’에도 텔레그램이 핵심 통신 수단으로 등장했다.

‘러시아와 이란의 대혼란, 한국의 대선 여론조작, 차기 대권 주자의 섹스 스캔들’ 등 엄청난 사건의 중심에는 개인 메신저 앱인 텔레그램과 파벨 두로프(35) 텔레그램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가 있다.

텔레그램은 러시아·한국·인도·브라질·멕시코 등 전 세계에서 2억명 이상(월간 이용자)이 애용하는 무료 모바일 메신저다. 하루 250억개의 메시지가 텔레그램을 통해 오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용자 개인 정보를 기업에 팔고 광고를 통해 막대한 수익을 올리는 서구의 소셜 미디어들과 달리 광고 없는 오픈 소스 메신저다. 군더더기 기능 없이 메신저 본연의 통신과 대화 기능에 충실하면서도 깔끔한 인터페이스가 특징이다.

메시지, 사진, 문서 등을 무작위로 암호화해 전송하는 기술을 적용해 해킹이 어렵고 비밀 대화 기능을 이용하면 일정 시간이 지난 뒤 대화 내용이 자동으로 삭제되는 등 고도의 보안성을 자랑한다. 가상 사설망(VPN)을 통해 다양한 접속 방법을 제공한다. 러시아 정부의 검열을 피해 독일 베를린에 서버를 두고 있다.

텔레그램은 두로프 CEO의 머릿속에서 탄생했다. 그와 그의 친형인 니콜라이 두로프(38) 텔레그램 최고기술책임자(CTO)가 개발, 2013년 8월 첫 서비스를 시작했다.

해킹 방지, 사생활 보호 등 고도의 보안성 덕분에 야당 정치인들뿐 아니라 러시아 정부 대변인이 기자들에게 브리핑 일정을 알릴 때도 사용할 정도로 러시아에 널리 보급됐다.

IS(이슬람 국가) 테러리스트들이 애용하는 메신저로도 알려져 있다. 러시아(1300만명), 이란(4000만명)에서 특히 많이 쓰이는데 한국에서는 2014년 카카오톡 압수수색을 계기로 널리 보급됐다. 중국은 2016년 텔레그램 이용을 금지했다.

두로프 CEO는 ‘러시아의 마크 저커버그’로 불린다. 1984년생으로 저커버그 페이스북 창업자와 동갑이고 소셜 미디어를 통해 젊은 나이에 억만장자 대열에 오른 이력도 닮은 꼴이다.

두로프 CEO는 2000년대 초반 페이스북이 인기를 끌자 러시아를 위한 소셜 미디어를 만들기로 결심하고 형과 함께 2006년 9월 ‘브콘탁테(VK·VKontakte)’ 서비스를 시작했다. VK는 출시 6개월 만에 가입자 10만명을 모았고 2년도 안 돼 경쟁 서비스인 ‘오드노클라스니키(Odnoklassniki)’를 눌러 ‘러시아의 페이스북’이란 별명을 얻었다.

우크라이나·슬로바키아·벨라루스 등 러시아어권 국가의 간판 소셜 미디어인 ‘VK’ 이용자는 4억명, 기업 가치는 30억달러에 달한다.



텔레그램은 뛰어난 보안성 덕분에 인기가 높다. / 블룸버그

푸틴의 정보 제공 요구 거부한 뒤 ‘유랑’

‘VK’의 성공은 두로프 CEO에게 ‘시련’이자 ‘도전’이 됐다.

2011년 이후 반체제 인사들의 ‘VK’ 이용 정보를 제공하라는 러시아 정부의 요구를 계속 거부했기 때문이다. 두로프 CEO는 “러시아 정부의 불법적인 요구에 절대 굴복하지 않겠다”고 선언, ‘자유의 전사’라는 찬사를 들었지만 ‘절대 권력자’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정적’이 됐다.

결국 2013년 12월 러시아를 탈출하고 3억달러에 달하는 개인 재산을 스위스 은행으로 이전했다. 2014년 4월 ‘VK’ CEO에서 물러난 뒤 친정부 성향의 인터넷 서비스 기업 메일루(Mail.Ru) 그룹에 회사도 ‘강탈’당했다. 최근 텔레그램 이용 금지 조치도 “테러에 이용될 수 있으니 암호 해독 키를 내놓으라”는 2016년 7월 러시아 정보기관(FSB)의 요구를 거부한 것에 대한 보복 조치다.

두로프 CEO는 텔레그램 금지 등 러시아 정부의 공격에 대해 “포기할 수 없는 인권이 공포나 탐욕 때문에 침해되어서는 안 된다”며 ‘디지털 저항’을 선언했다. 사재를 털어 인터넷 우회 접속 사설 가상망 서비스 이용을 촉구하면서 “러시아인들의 텔레그램 이용에는 문제없다”고 공언했다. 지난 3월 암호화폐공개(ICO·Initial Coin Offering)를 통해 텔레그램 운용 자금 17억달러 조달에 성공, ‘군자금’도 탄탄하게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 탈출 이후 두로프 CEO는 25만달러를 주고 카리브해 연안국가인 세인트키츠 네비스 국적을 취득했다. ‘암살’을 피하기 위해 한곳에서 5주 이상 머물지 않고 거주지를 옮기는 유랑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필요할 경우 인터넷을 통해 텔레그램 관계자들과 대화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유주의자를 자처하는 그는 영화 ‘매트릭스’의 주인공 ‘네오(키아누 리브스분)’를 연상케 하는 검은색 옷을 즐겨 입는다. 영화 속 네오가 가상 통제 체제인 ‘매트릭스’를 깨기 위해 목숨을 걸고 투쟁하듯 그의 ‘디지털 저항’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세계인들의 관심이 모아진다.


Plus Point

친형 니콜라이 두로프
천재 수학자‧프로그래머


파벨 두로프의 친형인 니콜라이 두로프. / 트위터

두로프 CEO는 1984년 러시아 레닌그라드(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났다.

저명한 언어학자인 아버지(발레리 세메노비치 두로프)를 따라 이탈리아 투린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아버지는 현재 상트페테르부르크대 언어학과 교수이며 할아버지는 제2차 세계대전 참전으로 무공 훈장을 받았다.

열여섯살 때인 2001년 아버지를 따라 러시아로 귀국, 상트페테르부르크 김나지움을 졸업하고 상트페테르부르크대학에서 언어학을 전공했다. 친형 니콜라이 두로프는 국제 수학·정보과학 경시 대회 챔피언을 지낸 천재 수학자이자 프로그래머다. VK와 텔레그램의 최고기술책임자(CTO)를 맡았다.

두로프 CEO는 2014년 ‘30세 이하 가장 유망한 북유럽 지도자’로 선정됐고, 2017년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에 핀란드 대표 자격으로 참석했다. 채식주의자로 개인 재산은 17억달러로 추정된다. 미혼이다.

방성수 조선비즈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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