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년 프랑스 침공 당시 잠시 진격을 멈추고 참모들과 작전을 논의하는 독일 제7기갑사단장 롬멜. 당시 독일군은 목표만 부여하고 실천 방법은 전적으로 현장에 위임했다. / 위키피디아

군사학, 특히 전술학을 연구하는 이들에게 제2차세계대전 당시의 독일군은 상당히 흥미로운 케이스 스터디 주제다. 비록 전쟁에서는 패했지만 1942년 가을까지 벌어진 수많은 전투에서 경이적인 승리를 연이어 거뒀고, 그 이후에 전황이 바뀌어 수세에 몰렸지만 패전할 때까지 쉽게 무너지지 않을 만큼 잘 싸웠기 때문이다.

전 세계를 정복할 것 같았던 전성기에도 전력이 앞섰던 적이 없었을 만큼 전쟁 내내 부족한 상태로 싸움을 벌였다. 그래서 많은 이들은 독일군이 선전한 이유를 하드웨어가 아닌 소프트웨어에서 찾는다. 강인한 정신력을 거론하는 이들도 있지만 현대전에서는 그다지 의미가 없다. 그래서 전력을 극대화했던 독일군 특유의 지휘 방식에 초점이 모아진다.

이와 관련해 가장 대표적인 특징을 하나만 고르라면 거의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임무형 지휘 체계’를 꼽는다. 이 지휘 체계는 19세기 중후반에 정립돼 현재까지도 이어지는 독일군의 철학인데 제2차세계대전 당시에 가장 크게 꽃을 피웠다.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수단의 사용과 행동에 있어서는 일선에 완벽하게 자율권을 부여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사단장이 예하 연대에 언제까지 목표를 점령하라는 명령을 하달하면 연대장은 외부의, 심지어 명령을 내린 사단장의 간섭도 받지 않고 자신이 동원할 수 있는 수단과 방법으로 목표를 달성만 하면 된다. 사단장의 생각과 달리 진격로를 엉뚱하게 우회하든, 일시적으로 후퇴하든 상관없이 오로지 결과가 중시됐다.

또 연대장이 예하 대대에 명령을 내리면 대대장도 같은 방식으로 임무를 달성한다. 이처럼 말단 부대까지 내려가더라도 범위와 규모만 작아질 뿐이지 자율적으로 행동하는 원칙은 그대로 유지됐다. 덕분에 일일이 보고하고 지시받는 과정에서 생기는 마찰과 시간 낭비를 막을 수 있었다. 물론 자율을 보장받은 만큼 책임은 막중했다.

따라서 평소에 각 지휘 단위에 걸맞게 훈련이 이뤄져야 함은 당연하다. 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고 군기도 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작정 자율만 주면 낭패 보기 십상이라는 사실은 굳이 거론할 필요조차 없다. 이처럼 일선을 최우선으로 하고, 모두가 스스로 작전의 주체가 되는 독일군의 시스템은 제2차세계대전 초기에 큰 위력을 발휘했다.

공교롭게도 독일의 쇠퇴기는 이러한 특유의 체계가 히틀러에 의해 훼손되면서부터 시작됐다. 히틀러는 집권 초기에 군부의 협력을 끌어내려고 눈치를 봤지만, 1940년 프랑스를 굴복시키는 데 성공한 이후부터 태도가 돌변했다. 그 절정이 1941년 12월 19일 직접 지휘하겠다며 독일 육군 총사령관에 스스로 오른 사건이다.

히틀러는 모스크바 점령 실패의 책임을 물어 지금까지 잘 싸운 수많은 지휘관을 경질하고 군부를 발 아래 두는 데 성공했다. 문제는 이로 인해 임무형 지휘 체계가 무너지는 것을 넘어 히틀러가 일선에 배치된 주요 기갑부대까지 직접 통제했을 정도로 간섭이 심해졌다는 점이다. 제2차세계대전이라는 전쟁의 규모를 생각한다면 그야말로 어이없는 행보였다.

다음은 그 차이를 여실히 볼 수 있는 사례다. 1942년 12월 소련의 역습으로 스탈린그라드 도심에 33만 명의 독일 제6군이 포위당하자 히틀러는 현지 사수를 엄명했다. 고분고분했던 제6군 사령관 파울루스는 후퇴가 옳다고 생각했지만 감히 대꾸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결국 독일은 제2차세계대전 최악의 패배를 했고 이때부터 쇠락하기 시작했다.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포로가 된 독일군 포로. 일선의 자율을 박탈한 히틀러의 현지 사수 명령으로 독일은 대패했고 이후 내리막길을 걷게 된다. / 위키피디아

일선의 자율 박탈한 히틀러

반면 곧이어 벌어진 제3차 하르코프 전투 당시에 친위장갑군단장 하우저는 그냥 남아 있다가는 무의미한 패배를 당할 것이 확실하기에 도시를 사수하라는 히틀러의 명령을 무시하고 부대를 후퇴시켰다. 반격을 염두에 둔 행위였지만 분노한 히틀러가 다음 날 베를린에서 포탄이 떨어지는 최전방까지 찾아왔을 정도로 예상치 못한 항명이었다.

하우저는 소련군이 도심을 점령한 후 추격을 멈추자 태세를 전환해 역공을 개시했다. 이와 동시에 좌우에 있던 여타 부대들도 협공에 나서 순식간에 소련군 20여 개 사단을 격멸시키면서 스탈린그라드 전투 이후 의기양양했던 스탈린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었다. 문제는 이런 경험을 얻었음에도 이후 히틀러의 간섭이 더욱 심해졌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승리의 원동력이 됐던 독일군 특유의 시스템이 무너지면서 일선의 장군들은 ‘어떻게 싸워야 하나’보다 ‘어떻게 해야 히틀러의 질타를 받지 않을 수 있는지’를 더욱 고민하게 됐다. 물론 이것이 독일이 패전한 이유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이런 상태에서 승리를 바란다는 것은 요행에 가까웠다.

최근 심각한 내홍을 겪는 대한항공을 보면 히틀러의 지나친 간섭으로 좋은 시스템이 작동하지 못하고 몰락한 독일군의 모습이 보인다. 탈세, 폭력처럼 당국이 수사 중인 부분은 별개로 치고, 2014년 ‘땅콩 회항’이나 최근 사건을 오로지 경영상으로만 따지면 그런 세세한 부분까지 최고경영자가 간섭하려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글로벌 기업인 대한항공 정도의 오너 경영자라면 정작 고민해야 할 부분은 따로 있다. 조직과 직원을 믿지 못해 모든 것을 간섭하고 사람을 비이성적으로 대하면 당연히 문제가 생긴다.

이처럼 오너가 잘못된 간섭만 하고 여기에 더해 내외에 공분을 불러일으키는 행위를 남발한다면 기업이 성장하기는 힘들다. 그것은 당연한 역사의 법칙이다.

남도현 군사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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