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에서는 모든 구성원이 필수요원이다. 1명이 퇴사하면 서비스는 수개월씩 미뤄질 수도 있다.
스타트업에서는 모든 구성원이 필수요원이다. 1명이 퇴사하면 서비스는 수개월씩 미뤄질 수도 있다.

미국의 스타트업 전문 리서치 기관인 ‘시비 인사이트’는 2017년 실패한 스타트업 135곳의 경영자를 인터뷰해서 망하게 된 원인을 집계했다. 시비 인사이트에 따르면 망하게 된 원인 1위가 ‘시장이 원하지 않는 상품’, 2위가 ‘돈이 떨어져서’ 그리고 3위가 ‘제대로 된 인력 충원 실패’였다. 시장이 원하지 않는 서비스를 내놓았으니 매출이 없을 테고, 그런 서비스를 만든 스타트업에 돈을 투자할 벤처캐피털(VC)도 없을 것이라 1, 2위를 차지한 답은 사실 선후의 차이만 있을 뿐 같은 맥락이다. 따라서 적절한 인적 자원을 갖추지 못한 것이 스타트업이 망하는 두 번째 이유이며 응답자의 23%가 이에 해당했다.

그러나 사람 문제로 스타트업이 실패하는 경우는 위의 23%보다 훨씬 많은 것으로 분석된다.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노암 와서만 교수가 1만 명 이상의 창업자 데이터를 분석해 저술한 ‘창업자의 딜레마’에 따르면, 스타트업에서 인적 요인이 실패 원인으로 작용한 경우는 65%에 달한다. 위에 인용한 컨설팅 회사의 자료가 인적 자원의 역량 부족(Not the right team)에 국한한 것이라면 와서만 교수가 말하는 인적 요인(people issue) 65%는 조직원 간의 갈등 전반을 포함한다. 와서만 교수는 갈등의 종류를 초기 공동창업자나 초기 멤버 사이에서의 관계 문제, 역할과 의사 결정 문제, 보상 문제 그리고 회사가 성장하면서 직원 채용 문제, 투자자 문제, 경영진 교체 문제로 정리했다. 인사와 관련된 잘못된 결정들이 내려질 때마다 스타트업은 조금씩 안정성을 잃으며, 그 정도가 임계치를 넘기면 조직이 무너진다.

인적 요인이 그렇게 중요함에도 초기 창업자들이 사람 문제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 신중하지 못하거나 외면하는 경우까지 있다. 창업자들은 우선 고객의 지갑을 열 만한 아이디어를 찾느라 고민하고, 개발 방향이 정해지면 제품이나 서비스의 출시 일정에 최우선 가치를 둔다. 자금 소진 속도를 보며 때맞춰 투자나 대출을 구하러 다니는 일도 중요한 과제로 인정받는다. 그런데 이 중요한 과업들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해당 직무능력을 지닌 사람이 투입돼야 한다. 그것도 GG치기(패배를 선언하거나 포기한다는 의미로 멀티플레이 게임에서 많이 사용되는 용어) 직전의 찌들고 지친 사람이 아니라 출시할 서비스와 조직의 미래에 확신과 열정을 갖춘 사람이 필요하다. 머릿수만 채운다고 공장이 돌아가지는 않는다. 창업자를 포함한 전 직원이 높은 사기를 유지하는 것이 인사 담당자의 역할이며, 인사 담당자가 제대로 자기 역할을 하는 경우를 일컬어 좋은 조직문화를 갖췄다고 한다.

스타트업의 인사 담당자는 구성원이 지켜야 할 약속과 규정을 만든다. 때로는 창업 이념이나 미션도 멋진 단어로 정리해 직원들과 공유한다. 그러나 규정이나 미션이 컴퓨터 화면에 인쇄된 글자가 아닌 살아있는 문화로 만드는 것은 구성원과 창업자의 열린 커뮤니케이션이다. 스타트업이 인재를 모으고 싶다면 먼저 좋은 문화를 지닌 회사를 만들어야 한다. 좋은 조직문화를 만드는 데 실패하면 가장 높은 경쟁력을 지닌 직원부터 이탈한다. 회사의 전반적인 성장 속도도 떨어진다. 안타깝게도 ‘천천히 성장하면 되지’가 안 통하는 게 스타트업 동네다. 급격하게 성장하는 경쟁사에 VC 자금이 몰리면 천천히 성장하던 스타트업은 도태된다. 좋은 조직문화가 직원들에게 기쁨을 주는 것은 부차적인 효과이고, 스타트업은 조직문화 없이 생존 자체가 어렵다.

조직문화 조성에 필수적인 열린 커뮤니케이션은 여러 가지 긍정적 효과를 가져온다. 첫째는 실무자들의 현장 의견을 수렴할 수 있다. 고객의 목소리를 듣는 게 더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우니 사내에서 고객과 접촉이 가장 잦은 실무자의 의견을 상시 경청할 필요가 있다. 둘째, 실무진이 참여한 자리에서 합의된 결론이 시행되면 실무진들은 회사에 대한 주인의식이 생기고 업무 몰입도도 높아진다. 셋째, 대표에게서 회사 현황을 직접 들으면 존중받는 느낌을 받는다. 넷째, 이게 가장 중요한데 회사가 지향하는 가치를 경영진이 반복해서 말해 내재화시키면 이 가치가 직원들이 고객을 만났을 때 취하게 될 언행의 기준점으로 작동한다.

조직에 좋은 문화가 형성되면 열심히 일하는 이들과 높은 업무 성과를 보이는 이들이 많아진다. 이 둘이 항상 같은 것은 아니기에, 열심히 일하는 이에게는 성과를 높일 적절한 피드백을 주고 높은 업무 성과를 보이는 이에게는 감사와 보상으로 보답한다. 그리고 후배를 잘 가르쳐주거나 인내심이 있으면서 애사심까지 갖춘 직원들을 관리자로 승급시킨다.

주변에 안 좋은 영향을 끼치는 구성원을 발견하면 최선을 다해 신속히 제거한다. 미운 놈 떡 하나 더 주는 셈 치고 돈을 줘서라도 빨리 퇴사시킨다. 직원의 문제점에 대해 사내에서 가장 늦게 아는 사람이 경영진이기 때문에, 직원들은 이미 오염원(안 좋은 영향을 끼치는 구성원)에 대해 경영진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주시하고 있다. 특히 창업자와 개인적인 인연을 지닌 구성원이 저지른 잘못된 행동에 온정적 태도를 취할 경우, 정의감이 유난히 높은 밀레니얼 세대는 절망한다.


업무 책임 따지기보다는 협업해야

스타트업에 입사한 경력직들은 대부분 급여가 높고 복지가 좋은 대기업 출신이다. 지명도가 높은 대기업일수록 아이러니하게도 조직문화 측면에서 문제가 많다. 이직에서 오는 기회비용이 크기 때문에 회사가 함부로 대해도 직원들이 견디기 때문이다. 스타트업에 합류하게 되면 윗선 지시에 무조건 복종하는 습관이나 사내 정치 과잉의 기억은 빨리 지울수록 좋다. 일반 회사에서는 용인되나 스타트업에서는 하면 안 되는 것을 몇 가지 예로 들면 ‘부서 간 힘겨루기’ ‘궂은일을 다른 팀에 던지기’ ‘사내 하청’ 등이다. 여기서 ‘사내 하청’이란 예를 들어, 개발팀이 배제된 상품 기획 회의에서 기능과 사양이 정해지고 실무 개발자는 사후 지시를 받는 경우다. 실무자가 자신이 하는 일을 ‘왜’ 하는지 모르는 상태로 해야 한다면 산출물의 완성도와 함께 직무만족도도 심하게 떨어진다. 스타트업은 부서 간 장벽이 낮아야 한다. 쓰레기는 먼저 본 사람이 줍고, 업무의 책임 소재를 논하기보다 가장 빨리 끝내는 방법을 택해야 한다.

일반 회사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이 왜 스타트업에서는 문제가 될까? 답은 실패할 여유가 없는 절박함 때문이다. 회식하다 술 먹고 싸워서 한 사람이 퇴사하면 서비스 출시가 두 달 밀린다. 여기에 운영자금이 넉 달 치쯤 남았다고 생각해보면 직원들에게 어떻게 해야 할지 알 것이다. 스타트업의 직원은 모두 필수요원이다. 식물의 생장은 가장 부족한 요소에 좌우된다는 ‘최소량의 법칙’처럼, 가장 취약한 직원의 업무수행이 회사의 성장 속도를 좌우한다. 열심히 채용해도 늘 사람이 부족하니 누군가 두 몫을 하느라 지쳐 있다. 인지도 있는 브랜드, 기존 영업망, 경험 많은 선배, 이런 것들은 스타트업에 없다. 그런 상태에서도 달성할 목표가 있으니 유일한 자원인 사람이 더 소중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스타트업에서는 특히, 인사가 만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