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유럽 지도. 핀란드, 발트3국,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 헝가리, 유고슬라비아는 제1차 세계대전 후 탄생한 신생국이다. 다만 유고슬라비아는 승전국인 세르비아가 주변 민족들을 복속시켜 만든 나라다. 사진 위키피디아
1919년 유럽 지도. 핀란드, 발트3국,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 헝가리, 유고슬라비아는 제1차 세계대전 후 탄생한 신생국이다. 다만 유고슬라비아는 승전국인 세르비아가 주변 민족들을 복속시켜 만든 나라다. 사진 위키피디아

18세기 말 프러시아, 오스트리아, 러시아에 분할되어 사라졌던 폴란드는 1918년 11월에 다시 독립국이 되었다. 이처럼 폴란드가 150여 년 만에 다시 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끈질긴 저항에 힘입은 바 크다. 하지만 비슷한 시기에 있었던 3·1운동의 결과에서 알 수 있듯이 약소국이 단지 열망만 있다고 독립을 성취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전후 질서가 재편되는 기회를 틈타 독립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때 승전국들이 내세웠던 명분이 ‘민족자결주의’였다. 그런데 이는 패전국에 속해 있던 피지배 민족들에만 해당하는 원칙이었다. 정작 당시에 승전국인 영국, 프랑스 등이 지배하던 피지배 민족들이 훨씬 많았지만 이들 중에서 독립한 나라는 없었다.

반면 패전한 오스트리아-헝가리는 제국에 속했던 많은 피지배 민족들이 독립하면서 해체됐다. 단일 민족 국가에 가까웠던 독일은 봉변을 면했지만, 국토의 일부를 잃었다. 그리고 러시아를 타도하고 건국한 소련은 독일과 단독 강화를 하고 전선에서 이탈한 죄로 승전국 대접을 받지 못하고 핀란드에서 몰다비아에 이르는 엄청난 영토를 상실했다.

이 때문에 폴란드를 위시해 핀란드,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체코슬로바키아, 헝가리는 이들의 중간 지대에서 탄생했다. 그런데 독립을 실질적으로 주도한 승전국들이 고심했던 부분은 영토였다. 넓은 동유럽 평원은 지리적으로 명확한 단절점이 없는 데다 오랜 세월에 걸쳐서 여러 민족이 섞여 살아왔기에 국경을 획정하기 어려웠던 것이었다.


소련의 혼란기에 영토 확장을 목적으로 폴란드가 일으킨 1920년 전쟁 당시에 키예프 도심을 점령한 폴란드군. 이러한 군사적 도발로 인해 폴란드는 주변을 모두 적으로 만들었다. 사진 위키피디아
소련의 혼란기에 영토 확장을 목적으로 폴란드가 일으킨 1920년 전쟁 당시에 키예프 도심을 점령한 폴란드군. 이러한 군사적 도발로 인해 폴란드는 주변을 모두 적으로 만들었다. 사진 위키피디아
샤프는 최초의 액정 전자계산기 등을 비롯한 수많은 히트 상품을 만든 일본의 거대 전자 회사였으나 경영 실패로 대만의 폭스콘에 인수됐다. 사진 블룸버그
샤프는 최초의 액정 전자계산기 등을 비롯한 수많은 히트 상품을 만든 일본의 거대 전자 회사였으나 경영 실패로 대만의 폭스콘에 인수됐다. 사진 블룸버그

결국 특정 민족이 많이 사는 지역을 정점으로 두루뭉술하게 나누었는데 이는 20년도 지나지 않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게 되는 하나의 빌미가 되었다. 특히 가장 커다란 영토와 인구를 포용하며 탄생한 폴란드는 독립 직후부터 영토를 놓고 주변국들과 갈등을 벌였다. 문제는 외교적인 노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들지 않았다는 점이다.

폴란드의 피우스츠키(Jozef Klemens Pilsudski) 정권은 군국주의 성향이 강했다. 다수, 소수를 불문하고 폴란드인이 있는 곳이면 무조건 폴란드의 영토로 간주하고 다른 민족을 피지배 대상으로 보았다. 이들은 폴란드인이 다른 민족들보다 교육, 문화, 예술에 대한 소양이 풍부하다는 선민(選民)의식에 사로잡혀 당연히 새로운 지배자가 되어야 한다고 자부했다.

거기에다가 독일과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영국과 프랑스가 음으로 양으로 후원을 해주자 폴란드의 착각은 더욱 심해졌다. 그래서 독립한 바로 그해에 역시 신생국인 체코슬로바키아와 영토 분쟁을 벌였고 이듬해부터는 혁명의 와중에 혼란스러웠던 소련을 상대로 전쟁을 시작했다. 또한 패전국으로 전락해 어려움을 겪던 독일과도 수시로 충돌을 벌였다. 1920년 소련과 전쟁을 벌였을 당시, 폴란드는 총 100만 명의 병력을 동원했던 반면 소련은 80만 명 정도를 간신히 전선에 투입할 수 있었다. 그 정도로 1920년대 폴란드의 군사력은 주변보다 우세했다. 자신감 있었던 폴란드가 세계사의 혼란기를 틈타 영토 확장에 성공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신생국이 내실을 다져 국가를 튼튼히 하는 것보다 팽창을 먼저 선택했다는 것은 상당히 문제가 있었다. 결국 1930년대가 되자 그동안 수모를 감내하며 숨죽여 지내던 독일과 소련은 어느덧 폴란드가 넘볼 수 없는 강력한 존재가 되었다.

상황이 역전되면서 폴란드는 다시 한번 강대국의 위협에 살아남기 위해서 몸을 낮춰야만 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하지만 독일과 소련은 한 번 손보겠다고 단단히 벼르고 있었기에 폴란드와 우호적으로 지낼 생각을 눈곱만큼도 하지 않았다. 결국 1939년 9월 1일,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며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됐다.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직전에 폴란드군은 100만 명 정도를 동원했으나 독일은 150만 명을 전선에 투입했다. 전차나 작전기는 세 배 이상 차이가 났다.

설상가상으로 ‘폴란드를 나눠 갖자’고 독일과 약속했던 소련이 동쪽에서 100만 명을 투입해 밀고 들어오자 방법이 없었다. 영국과 프랑스에 매달렸으나 이들은 도와주겠다는 말과 달리 먼 산만 바라보았다. 같은 시기에 독일, 소련으로부터 침략을 당한 체코슬로바키아, 발트3국마저도 폴란드와 협력을 생각하지 않았을 정도였다.

결국 폴란드는 독립한 지 20년 만에 다시 지도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진정한 비극은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6년 후인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났을 때 폴란드는 총 600만 명 이상의 인적 피해와 국부의 40%가 사라지는 물적 피해를 입었다. 자신들이 최고라는 자만에 빠져 주변 모두를 적으로 만들었던 결과는 이처럼 비참했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자신들이 해당 산업을 이끈다고 자만하다가 변화에 뒤져 순식간에 몰락한 일본 가전 업체들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분명히 2000년대 이전 일본 가전의 위상은 대단했다. 하지만 앞으로도 당연히 그러리라고 생각하고 방심한 순간 그들은 무너져 내렸다. 자부심이 자만으로 바뀌면 어떻게 되는지 알려준 반면교사라 할 수 있다.

남도현 군사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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