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욱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 연세대 경영학·법학, 베이징대 법학 박사, 사법시험 43회, 사법연수원 33기, 전 법무법인 율촌 상하이 대표처 대표
허욱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
연세대 경영학·법학, 베이징대 법학 박사, 사법시험 43회, 사법연수원 33기, 전 법무법인 율촌 상하이 대표처 대표

2021년 4월 중국의 유명 여배우 A씨의 옛 남자친구가 인터넷에 “A씨가 이중계약을 체결해 세금을 포탈했다”고 폭로했다. 앞서 2018년에 다른 유명 여배우 B씨에게 비슷한 의혹이 제기돼 세무 당국이 조사에 나섰고, B씨가 추가로 납부한 세금과 벌금이 8억8400만위안(약 1547억원)에 이르는 사건이 있었는데, 유사한 논란이 또 불거진 것이다.

중국에서는 이중계약을 음양계약(陰陽合同) 또는 흑백계약(黑白合同)이라고 한다. 한쪽은 음지이거나 검은색이고, 다른 한쪽은 양지이거나 흰색이라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다. 양쪽 당사자가 동일한 사안에 대해 두 가지 계약을 체결한다. 양지에 있는 계약은 관련 법규와 주무 부서가 요구하는 기준에 맞춰 대외적으로 제출하는 ‘양계약(陽合同)’이다. 반대로 법규를 회피해 외부에는 공개하지 못하지만, 계약 당사자들이 해당 계약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실질적인 목표를 담은 음지의 계약이 ‘음계약(陰合同)’이다.

위 여배우들 사건과 같이 연예인과 제작사 간 체결하는 음양계약의 유형을 보면, 출연료를 쪼갠 다음 해당 연예인이 만든 매니지먼트 회사와 쪼갠 출연료만큼 각각의 계약을 체결하기도 하고, 출연료를 배우의 가족이 실제로 지배하는 회사에 증자 대금으로 지급하기도 한다.

중국 연예계에서 이런 음양계약이 나타나는 이유는 한신령(限薪令), 즉 개런티 상한제 때문이다. 중국 연예계는 천정부지로 오르는 주연 배우들의 몸값 때문에 제작 비용을 감당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개런티 상한제는 배우들의 총출연 개런티가 해당 프로그램에 투입되는 제작 비용의 40%를 초과하지 못하게 한다. 또 그 40% 안에서도 주연 배우의 개런티가 70%를 초과하면 안 된다. 이러한 규정을 어긴 음양계약의 효력은 얼마나 될까.

2021년부터 시행 중인 중국 민법전은 계약이 무효인 경우를 규정한다. 민사행위 무능력자가 한 법률행위, 행위자와 상대방이 허위의 의사 표시로 한 법률행위, 법률·행정 법규의 강행 규정을 위반한 법률행위, 공서양속(公序良俗⋅공공의 질서와 선량한 풍속)에 위반한 법률행위, 행위자와 상대방이 악의적으로 통모해 다른 사람의 합법적인 권익에 손해를 끼치는 민사상의 법률행위 등이 이에 해당한다.

과거의 계약법과 비교했을 때 민법전은 합법의 형식으로 불법적인 목적을 숨기는 상황을 계약의 무효 사유에서 삭제하고, 공서양속 위반을 무효 사유로 추가했다. 단 중국 법률은 아직 공서양속에 대한 구체적인 정의 조항은 없다. 그리고 개런티 제한을 위반한 행위가 공서양속 위반 행위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대해서도 아직 구체적으로 축적된 사례가 없다. 현행 민법전하에서 연예인과 제작사 간 음양계약이 개런티 제한령을 어겼다고 해서 무효가 될지는 의문이다.

한신령은 대부분 제작자, 배우 단체 등 자발적인 조직의 자정 결의 형식으로 존재하나 이를 위반하면 세무조사 등의 강력한 수단을 통해 제재가 이뤄진다. 중국 연예계의 음양계약은 양의 영역에서는 자정 결의의 형식을 빌린 국가의 통제가, 음의 영역에서는 어느 나라에도 뒤지지 않는 자본의 논리가 숨어 있다. 사회주의와 시장경제가 동전의 양면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중국을 사회주의 국가라고 하나 실제로 접해 보면 더 자본주의 국가 같다고 느끼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