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욱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 연세대 경영학·법학, 베이징대 법학 박사, 사법연수원 33기, 전 법무법인 율촌 상하이 대표처 대표
허욱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
연세대 경영학·법학, 베이징대 법학 박사, 사법연수원 33기, 전 법무법인 율촌 상하이 대표처 대표

2021년 7월 13일 중국 은행보험감독관리위원회는 ‘은행업·보험업의 소흑제악 단속의 상시화 업무에 관한 통지(關於銀行業保險業常態化開展掃黑除惡鬥爭有關工作的通知)’를 반포하며 은행·보험 업계의 역량을 총동원해 소흑제악에 매진할 것을 선언했다. 소흑제악은 검은 것을 쓸어내고 악을 제거한다는 말이다. 검은 것은 ‘흑사회(黑社会)’라는 범죄 단체를 의미한다. 우리 식으로 범죄와 전쟁에 해당한다.

2018년 1월 11일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와 국무원은 ‘범죄 단체 특별 단속에 관한 통지(关于开展扫黑除恶专项斗争的通知)’를 반포하면서 범죄와 전쟁을 시작했다. 과거의 범죄와 전쟁은 지역사회의 치안 유지 활동을 의미했다. 특정 지역을 장악한 조직폭력배가 보호비 명목으로 돈을 뜯어내는 등의 행위를 단속하는 게 소흑제악의 출발이었다.

이번에 금융 업계의 소흑제악 규정이 반포되자 은행들은 앞다퉈 범죄 단체와 전쟁을 위한 구체적 행동에 나섰다. 모든 은행 지점 입구에 LED(발광다이오드) 게시판을 설치해 보이스피싱 범죄에 관한 지식 전파에 나섰고, 대출 업무에 대한 관리·감독을 강화해 대출 신청 접수 과정, 신청자 신용, 자금 사용처 등을 철저히 조사했다. 대출 자금이 고리의 사채 자금으로 유용되거나 범죄 단체로 흘러 들어가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다.

고객을 전수조사해 의심이 가는 금융 거래나 범죄 단체와 관련된 것으로 의심되는 계좌를 색출하고, 관련자의 행위를 모니터링하겠다는 지방 은행도 등장했다. 또 ‘은행업, 금융기구의 인민검찰원 공안기관 국가안전기관의 질의 및 동결 업무 규정(銀行業金融機構協助人民檢察院公安機關國家安全機關查詢凍結工作規定)’에 따라 범죄 단체로 흘러가는 자금줄을 차단하기 위해 수사기관이 관련 계좌를 동결하는 등의 강제조치를 취할 때 적극적으로 협조하기로 했다.

최근 들어 범죄 집단이 민생에 가장 큰 피해를 주는 부분이 전화 사기 등의 신형 범죄다. 이에 금융기관이 범죄 단체의 자금줄을 차단함과 동시에 피해자를 확실히 보호하는 규정도 마련했다. 2021년 6월 22일 중국 최고인민법원과 최고인민검찰원, 공안부는 공동으로 ‘전신 인터넷 사기 등 형사사건 처리의 법률 적용의 약간의 문제에 관한 의견<2>(關於辦理電信網絡詐騙等刑事案件適用法律若幹問題的意見<二>)’를 반포했다. 이 의견에는 전화 사기 사건 관련 계좌에 대해 압류 등의 조치를 한 경우 피해자의 우선반환권을 인정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중국 형사소송법 제245조는 ‘인민법원의 판결이 효력을 발생한 이후 압류·동결된 장물과 그 이자에 대해서는 법에 따라 피해자에게 반환해야 하는 경우 외에는 이를 일률적으로 몰수해 국고에 귀속시킨다’라는 규정을 두고 있다. 이 의견은 전화 사기 등의 신종 범죄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구체적인 근거를 마련한 것이다.

금융은 국민경제에서 혈관, 자금은 혈관을 흐르는 피에 해당한다. 중국은 지속해서 내수 시장의 성장을 바탕으로 한 외부 경제와의 조화를 강조하는 쌍순환 경제를 추진하고 있는데, 내수 시장의 성장이 기대한 만큼 속도를 내고 있지 않은 듯하다. 이런 상황에서 혈관에 쌓인 노폐물을 청소해서 내수 시장에 피가 잘 돌게 하자는 것이 금융 업계에서 소흑제악을 강조하는 이유라고 할 수 있다.

허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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