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4년 트라팔가 광장에 모여 정부의 개전 선언을 듣고 환호하는 런던 시민. 전쟁의 무서움을 망각하고 있었기에 벌어진 현상이었다. 사진 위키피디아
1914년 트라팔가 광장에 모여 정부의 개전 선언을 듣고 환호하는 런던 시민. 전쟁의 무서움을 망각하고 있었기에 벌어진 현상이었다. 사진 위키피디아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는 너무나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다. 그전까지 간과하고 있던 많은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중에는 당연하다고 생각하던 것이 전혀 그렇지 않아서 놀라게 된 경우도 많았다.

우선 국내의 경우는 예측을 잘못하고 안이하게 대응하다가 마스크 대란, 백신 대란을 연이어 불러온 사례가 대표적이다.

외부로 눈을 돌리면 그동안 선진국으로 자부하던 많은 나라의 감염병 대책이 이 정도로 허술할까 하는 부분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1914년 8월 5일 영국 신문 데일리메일에는 영국이 독일에 전쟁을 선포했다는 기사가 실렸다.
1914년 8월 5일 영국 신문 데일리메일에는 영국이 독일에 전쟁을 선포했다는 기사가 실렸다.

日 코로나 방역망 허술 배경 ‘IT 혁신 부족’

특히 경제, 과학 분야에서 우리가 오랫동안 벤치마킹 대상으로 삼아오던 일본의 대응이 너무나 부실하다는 사실에 놀란 이들이 많았다. 한때 전자 산업을 선도하던 국가의 IT 인프라 수준이 심각할 정도로 허술했다.

우리나라처럼 주민등록 시스템이 되어 있지 않아 행정 처리에 곤란을 겪은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각종 보고를 팩스로 하고 집계를 수기로 한다는 사실은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일본도 세계적인 망신이라고 여겼는지 총리가 팩스 중심의 아날로그 행정 체계를 디지털로 전환하겠다고 선언했지만 최근 반발이 너무 심해 무산되었다는 보도가 전해졌다.

팩스를 기반으로 하는 유무형의 인프라가 너무나 오랫동안 공고하게 자리 잡다 보니 사용자들이 새로운 변화를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면서 벌어진 현상이다. 행정이 이럴 정도니 간편 결제는커녕 카드 사용조차 쉽지 않아서 시민들이 동전 지갑을 가지고 다니는 것이 일본에서는 당연하다. 이런 불편함은 변화를 수용하는 사회의 태도와 관련된 문제다.

미국이 IT 분야를 선도하는 이유 중 하나가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이고 수용할 수 있는 사회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다는 점이다. 반면 일본처럼 혁신을 부담스러워하는 고루한 사회라면 당연히 변화가 더딜 수밖에 없다. 그런 모습이 장기간 지속하면 어떤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인지 쉽게 예측할 수 있다. 당연히 우리가 참고할 반면교사라고 할 수 있다.

군사 부문도 마찬가지다. 군이 전쟁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대비하는 조직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혁신과 이를 받아들이는 것은 목숨과 직접 관련된 문제다. 상대보다 좋은 무기를 만들고 보유하는 것이 일단 중요하나 여기에 더해 이를 이용한 전략, 전술도 함께 개발되어야 한다. 의외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괴리 때문에 낭패를 본 사례가 흔하기 때문이다.


격파된 참호와 시신들. 무기의 성능이 달라졌음에도 과거 방식대로 싸우다가 엄청난 인명 피해를 입었다. 혁신을 제때 따라가지 못한 결과였다. 사진 위키피디아
격파된 참호와 시신들. 무기의 성능이 달라졌음에도 과거 방식대로 싸우다가 엄청난 인명 피해를 입었다. 혁신을 제때 따라가지 못한 결과였다. 사진 위키피디아

무기와 전쟁 방식 변화 괴리될 때 ‘낭패’

1914년에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을 때 참전국 대부분이 환호했다. 놀랍게도 전쟁을 반긴 것이었다. 무력을 통해서 해결해야 할 만큼 교전국 간에 원한이 쌓이기도 했지만 어처구니없게도 전쟁을 마치 올림픽이나 월드컵 같은 스포츠 경기처럼 낭만적으로 보는 시류가 형성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전쟁의 무서움을 몰랐기에 벌어진 ‘미친 시대의 자화상’이었다.

1871년의 보불전쟁 후 유럽에서 43년 만에 벌어진 강대국 간의 충돌이다 보니 전쟁의 참혹함을 아는 이들이 적었다. 많은 젊은이가 자원해서 전선으로 달려갔으나 직접 마주한 것은 지옥이었다. 그들이 피상적으로 알고 있던 전쟁과 현실은 전혀 달랐다. 잠깐 평화가 이어지는 동안 군사 분야에서 엄청난 변화가 있던 것을 간과한 결과였다.

무기의 성능은 기계, 화학 공업의 발달에 힘입어 엄청나게 발전했다. 19세기까지만 해도 상상도 못 하던 하늘과 물속에서의 싸움이 벌어졌을 정도였다.

문제는 정작 무기를 다루는 군의 사고방식이 100년 전 나폴레옹 전쟁 당시와 크게 바뀌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눈에 잘 띄는 울긋불긋한 군복을 입고 적진을 향해 돌격하다가 비명횡사하고는 했다.

통신 장비가 부실했던 예전에는 지휘 통솔을 위해 병사들에게 가시성이 좋은 군복을 입혔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바로 앞까지 다가가도 조준해서 맞추기가 어려웠을 정도로 총포의 성능이 떨어졌다. 19세기에 벌어진 전쟁을 배경으로 하는 많은 영화에서 묘사한 것처럼 보병들이 일렬로 정렬해 적진을 향해 천천히 전진하는 방식으로 싸웠다.

이처럼 무기의 성능이 획기적으로 변모했음에도 여전히 예전 전쟁 방식을 고수했던 것이다. 착검하고 일제히 돌격한 병사들이 마주한 것은 상대방 진지에서 날아 온 기관총탄이었다. 흥미로운 점은 공수가 바뀌어도 상황이 같았다는 사실이다. 결국 전선은 시신의 산으로 변해갔다. 뭔가 잘못되었음을 알았을 때는 너무나 많은 생명이 사라진 후였다. 하드웨어가 향상되면 이에 맞춰 당연히 소프트웨어도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바뀌어야 하는 것을 알면서도 단지 귀찮거나 새로운 것에 맞추기 싫다고 변화를 거부하다가는 더 큰 낭패를 보기 쉽다. 혁신은 모든 것이 함께 바뀔 때 가능한 것이다. 최근 생생히 드러난 일본 IT의 현실이나 제1차 세계 대전 초기의 모습은 생생한 증거라 할 수 있다.

남도현 군사칼럼니스트

  • 목록
  • 인쇄
  • 스크랩
  • PDF 다운
ⓒ 조선경제아이 & econom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