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욱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 연세대 경영학·법학, 베이징대 법학 박사, 사법연수원 33기, 전 법무법인 율촌 상하이 대표처 대표
허욱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
연세대 경영학·법학, 베이징대 법학 박사, 사법연수원 33기, 전 법무법인 율촌 상하이 대표처 대표

여러 외국 기업은 중국에서 비즈니스를 하는 데 있어서 통일된 기준이나 표준이 없다는 것에 당황한다. 나아가 이런 표준이 기울어진 운동장이 되면 외국 기업이 느끼는 부담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국가적 표준이 없다는 말은 중국에서는 ‘위에는 정책이 있으면 아래에는 대책이 있다는 말(上有政策, 下有對策)’로도 표현된다.

2021년 10월 중국 공산당 중앙과 국무원은 ‘국가표준화 발전 요강(國家標準化發展綱要)’을 반포했다. 국가의 모든 영역에서 국내외적으로 인정받는 기준을 구축할 것을 선언한 것이다. 중국은 2025년까지 표준을 정부 주도에서 정부와 시장이 공동으로 제정하는 것을 목표로 잡았다. 표준의 운용은 산업과 무역 중심에서 경제·사회 전반으로, 표준화 업무는 중국 내에서 선도해 다른 나라와도 상호 발전을 촉진한다. 표준화 발전은 수량을 위주로 한 규모형에서 표준 품질을 강조하는 효율형으로 전환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공산당은 구체적으로는 산업 전반에 걸친 표준화와 표준화 실시 범위의 양적·질적 확대, 표준화에 있어서 깊이 있는 국제 합작을 통한 개방성 제고, 표준화 발전을 위한 인프라(기반 시설) 건설 등을 추진하라고 강조했다. 이런 노력을 통해 중국은 중국적 특색의 표준화 관리체제를 개선해 시장이 선도하고 정부가 인도하며 기업이 주체가 되고 사회가 참여하는 개방 융합형의 표준화 업무를 새롭게 개척해 나갈 것을 선언했다.

이 표준화 요강에서 우리가 가장 주목해야 하는 건 미래 산업 분야에서의 표준화다. 인공지능(AI)·양자정보·바이오 기술 등 영역의 표준화 연구와 신세대 정보기술·빅데이터·블록체인·위생건강·신에너지·신소재 등 응용 전망이 활발한 기술 영역에서는 기술 연구개발과 표준 제정을 동시에 추진해 신기술 산업화 응용 발걸음을 빠르게 하도록 했다. 또 스마트선박·고속철도·자율주행차·로봇 등 영역의 핵심 기술 표준을 제정해 산업 혁신을 추진하도록 했다.

이런 미래 산업 분야의 핵심 기술 표준화는 데이터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2021년 9월 30일 중국의 공업정보화부는 ‘공업과 정보화 영역 데이터 보안관리방법(시험실시)’ 의견 수렴안을 반포했다. 이 수렴안의 제6조는 “산업 감독관리 부서는 공업과 정보화 분야에서의 데이터 개발 이용 및 데이터 보안 표준 체계 구축을 추진하고 산업 표준의 제·개정 작업을 조직하여 진행한다”이다. 데이터 처리에서 표준 제정과 관철을 강조하고 있는 셈이다. 표준 제정에 관한 총론으로서 국가 차원의 방향 제시와 각론으로서 각 산업 수준에서의 실천을 강조하고 있다.

USCBC(US-China Business Council)는 2021년 9월 중국 비즈니스 환경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USCBC는 중국과 비즈니스를 하는 미국 기업 200여 곳으로 구성된 민간 조직으로, 1973년 미국에서 설립됐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22%가 표준 제정을 중국의 보호주의 현상 중 하나로 꼽았다. 미국 기업은 중국이 ‘국가표준’이라고 쓴 말을 ‘보호주의’라고 읽는다는 얘기다.

중국이 강조하는 국가표준이 자칫 외국 기업에 들이대는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식 잣대가 돼서는 안 된다. 다만 국가표준화 작업은 중국이 지속해서 외부와 눈높이를 맞추려는 노력의 일환으로도 평가할 수 있다. 특히 미래 산업의 핵심 기술 영역 등에서 우리는 중국의 표준을 역으로 잘 활용하고 그 제정 과정에도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낼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