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욱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 연세대 경영학·법학, 베이징대 법학 박사, 사법연수원 33기, 전 법무법인 율촌 상하이 대표처 대표
허욱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
연세대 경영학·법학, 베이징대 법학 박사, 사법연수원 33기, 전 법무법인 율촌 상하이 대표처 대표

“분투(奋斗)냐, 탕평(躺平)이냐.” 최근 중국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가 된 말이다. 분투는 효율 우선 시대와 성과 지상주의를 묘사하는 말이다. 반면 탕평은 말 그대로 ‘평평하게 누워 있다’는 뜻으로, 침대에 누워 휴대전화만 보고 있는 청년들의 꿈 없는 현실을 나타낸 말이다.

중국 청년들의 분투를 가장 대표하는 말은 ‘996제’다. 이는 일주일에 6일, 오전 9시에 출근하고 오후 9시에 퇴근하는 근무제도를 가리킨다. 목표 달성을 위해 야근과 주말 근무도 마다하지 않아 불이 꺼지지 않는 플랫폼 대기업의 사무실 모습은 역동적으로 발전하는 중국을 상징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 996제 반대 움직임이 일었다. 노동자를 생산 도구로만 보는 것에 반기를 든 것이다. 중국의 노동법 제36조는 노동자의 매일 노동 시간은 8시간을 초과해서는 안 되고, 매주 평균 노동 시간은 44시간을 넘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996제는 처음부터 노동법을 위반한 제도였던 셈이다. 이러한 반(反)996제 움직임에 정부와 최고인민법원도 거들고 나섰다.

2021년 6월 30일 중국의 인력자원사회보장부와 최고인민법원은 노동인사쟁의에 관한 전형적인 안례(제2집)를 반포했다. 이를 살펴보면 996제, 야근비 포기 합의, 급여에 야근비를 포함하는 약정을 통해 무제한 야근을 강요하는 행위 등 과도한 야근이 분쟁 대상이 된 사안에서 사용자에게 패소를 선고한 판결이 10여 건에 이른다. 나아가 2021년 8월에 최고인민법원은 심각하게 법률에 규정한 노동 시간 연장의 상한에 관한 규정을 위반한 996제는 무효라고 재차 확인했다.

996제로 대변되는 분투는 개혁·개방 초기의 선부론, 흑묘백묘 이론과 일맥상통한다. 즉, 성과를 위해 과정이 경시되는 걸 용인하는 풍토와 맞닿아 있다는 것이다. 반면에 996제를 반대하는 분위기에는 공동부유(共同富裕·다 함께 잘살기)론이 있다. 2021년 5월 20일 중국 공산당 중앙과 국무원은 ‘저장성의 공동부유 시범구의 고품질 발전 건설의 지지에 관한 의견(關於支持浙江高質量發展建設共同富裕示範區的意見)’을 반포하면서 공동부유 전략을 시범 실시하겠다고 선언한다. 2021년 8월 17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중앙재경위원회의 중요 담화를 통해 공동부유는 사회주의의 본질적인 요구이자 중국식 현대화의 중요한 특징이라며, 중국 인민 중심의 발전 사상과 고품질 발전 과정에서의 공동부유를 강조했다. 공동부유 시기에는 노동법과 사회보장법이 필연적으로 부각될 전망이다. 최저임금과 사회보험 확대, 과도한 야근의 제한, 안전생산 등 노동 기준이 다 같이 잘사는 사회에서 더 강조될 것이다. 국가는 모든 역량을 동원해서 시장 주체가 노동자 기본 권익에 손해를 끼치는 행위들을 감독할 것이다. 동시에 직원대표대회와 노조 등의 목소리가 더욱 커지며 효율보다는 공평이 사회 전면에 나서면서 노동자의 참여권과 협상권이 더욱 강화될 수 있다. 이를 통해 단체협상 강화 등 노무관리에서의 절차적 정의도 계속 강조될 가능성이 크다.

공동부유 시대에 기업은 노동자에게 분투를 강요하기보다는 세분화하고 정밀화된 직무성과 관리로 전통적인 노무관리 방법을 대체해야 한다. 또 인센티브 제도를 개선해 노동자 직무 의식을 고취하고, 노동의 양보다는 질을 신경 써야 한다. 2022년 호랑이해가 밝았다. 탕평을 하는 젊은이도, 분투를 강요당하는 젊은이도 없게 중국은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길을 묵묵히 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