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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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원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교수 서울대 이학 학·석사, KAIST 이학 박사
정희원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교수
서울대 이학 학·석사, KAIST 이학 박사

사람의 ‘내재 역량(intrinsic capacity)’은 세계보건기구(WHO)가 2015년에 제시한 개념으로, 나이 듦이 얼마나 건강하게 이뤄지고 있는지를 계산하기 위한, 일종의 눈에 보이지 않는 척도다.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인 기능을 개념적으로 점수화할 수 있다는 것인데, 마치 게임에서 나오는 주인공의 영역별 역량을 점수로 나타내는 것과 비슷하다. 건강한 나이 듦을 질병의 발생 여부로만 평가하기보다는 다면적인 삶의 요소들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기업의 가치를 평가할 때 개념적으로 고려하는 ‘내재 가치(intrinsic value)’와도 비슷하다. 계산하기 나름이지만, 통상적으로 내재 가치는 부채 비율이나 이익 성장 등 한두 가지 변수를 가지고 계산하기보다는 그 기업이 가진 미래의 비전과 지적 자산, 기업 문화에 기인하며 숫자로는 보이지 않는 회복 탄력성 모두를 고려하기 때문이다.

기업 경영자는 의사 결정의 파급력이 크고, 불규칙적으로 발생하는 중대한 사안이 많아 인지적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업무와 연관한 중요한 현안에 빠져 있다 보면, 건강이나 가족 같은 다른 요소는 머릿속에 잘 들어오지 않게 되는 경우도 많다. 센딜 멀레이너선은 이를 책 ‘결핍의 경제학’에서 ‘터널링’이라고 표현하는데, 개인의 내재 역량의 상당 부분을 주요 현안이 차지하게 돼 결과적으로는 당장 중요하지 않은 다른 것은 제쳐놓게 된다는 뜻이다. 이럴 때 몸에서는 노르에피네프린이나 코티솔 같은 스트레스 호르몬이 더 많이 분비되고, 이 호르몬은 단기적으로는 중요한 일에 집중할 수 있게 도움을 준다. 하지만 이처럼 업무가 내재 역량을 장악하게 되고, 스트레스 호르몬 과잉이 장기화하는 현상은 일종의 ‘번아웃’을 초래하게 된다. 마음의 혼란이 점점 심해 신체적, 정신적인 악순환의 고리를 만들게 되는 것이다.

문제는 늘 일이 많아 스스로 내재 역량 관리에 성공적이지 못한 경우가 흔히 발생한다는 것이다. 터널링의 결과로 몸과 마음에 결핍이 생기면 스트레스 호르몬이 오르고 수면의 질은 떨어진다. 이 결과로 더 자극적인 음식과 술에 대한 탐닉이 증가되고, 운동이나 명상, 독서 같은 마음이 쉴 수 있는 활동은 줄어드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잠을 줄이고 일은 더 많이 하고 있는데, 업무 효율은 오히려 떨어지는 것 같고, 늘 머리에 구름이 낀 것 같아 의사 결정의 질은 더 나빠지는 순간이 찾아온다. 배가 나오고 온몸이 아픈 것 같다. 업무 효율이 떨어지니 더 늦게까지 일을 하게 되고, 머리를 비우는 시간은 더 줄어들게 되고, 이런 악순환의 고리가 회복이 어려운 번아웃을 만들게 되고, 이 기간이 길어지면 몸은 일종의 ‘가속 노화’를 경험하면서 여러 만성 질환을 앓기 시작한다. 간혹 매체에 나오는 아름답지 못한 중장년의 남성들을 보면 많은 경우 이 사이클의 후반부에 접어든 상태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아차릴 수 있다.

내재 역량 경영은 결국 지금 내 머릿속에 무엇이 얼만큼을 차지하고 있는지를 자각할 수 있는 데서 시작한다. 일이 바빠 건강한 식사를 하지 못할 상황이라거나,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운동을 하지 못한다거나, 심지어 잠을 억지로 줄이고 있는 상황이라면, 이 상황의 진전은 의도했던 목표의 성취를 오히려 어렵게 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과잉과 치우침을 조정해서 마음이 고요할 수 있게 돼야 보다 나은 의사 결정이 가능해진다. 현대 심리학과 의학이 밝힌 사람의 내재 역량 경영 개념은 ‘대학’의 ‘수신제가(修身濟家)’가 경영자에게 이야기하는 가르침과도 일치한다. 코로나19 이후 세상의 모든 변화가 더 빨라지며, 연결의 스위치를 끌 수 없는 경우가 늘면서 번아웃을 호소하는 지식인이 크게 늘고 있다. 자신의 내재 역량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를 차분하게 생각해보는 게 필요한 시기다.

정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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