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8세 되던 해, 문화혁명 선봉대 격인 ‘조반파’를 폭행했다는 이유로 노동교화에 끌려간 아버지는 14세가 된 딸이 영화 ‘영웅아녀(1964)’ 시작 전 상영되는 뉴스 필름의 한 대목에 등장한다는 소식을 접한다. 이에 아버지는 그 장면을 보기 위해 노동교화소를 탈출해 딸이 등장한다는 영화 필름을 쫓는다. 그 과정에서 아버지는 자신만의 절박한 이유로 영화 필름이 필요했던 한 소녀와 조우하게 된다. 결국 아버지는 우여곡절 끝에 다시 잡혀 들어가게 된다. 문화혁명이 끝나고서야 노동교화소에서 석방된 아버지는 사막에서 딸이 등장하는 ‘1초’의 필름을 찾는 여정을 마무리한다.
이는 중국판 시네마 파라다이스, 중국 영화계 거장인 장이머우(張藝謀) 감독의 영화 ‘1초 동안(一秒鐘·2020)’이라는 영화다. 우리나라에서는 ‘원 세컨드(One Second)’라는 제목으로 올해 설 연휴에 상영됐다. 2008년 베이징 하계 올림픽과 2022년 베이징 동계 올림픽 행사를 총연출한 장 감독은 대형 국가 행사에서 중국 문화와 현대 기술을 자신만의 감성으로 버무려 내는 데 걸출한 역량을 보여준 인물이다. 그는 문화혁명 시대를 배경으로 한 절절한 부정(父情)을 흑백 필름 ‘1초 동안’에 담아내 자신의 마음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영화에 대한 순수한 고백을 써내려 갔다.
중국에서 영화는 사회주의 국가 시대에 공민에게 공산당 혁명 사상을 전파하고 공민을 결집시키는 강력한 문화 사업 수단이었다. 이에 중국의 현행 ‘영화산업촉진법(電影產業促進法)’도 “국가는 농촌, 국경, 빈곤 지역과 민족 지구에 영화 활동을 지원하는 조치를 취한다. 국가는 소수민족 소재의 영화 창작을 장려·지지하고, 영화를 소수민족 언어로 번역하는 업무를 강화하며, 민족 지구 군중의 영화 관람에 대한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노력한다(제43조)”고 규정하고 있다.
중국은 중국 영화의 중국 내 보급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국가는 우수한 영화에 대한 외국어 제작을 지원하며 외교·문화·교육 등 대외 교류 자원을 종합적으로 이용해 영화의 경외 보급 활동을 전개한다. 국가는 공민, 법인과 기타 조직이 영화의 경외 보급 활동에 종사하는 것을 장려한다(제44조)고 규정한다. 중국 영화의 해외 진출도 적극적으로 지원할 것을 약속하고 있는 셈이다.
한국 영화도 중국 현지에서 상영되면서 한·중 문화 교류의 첨병 역할을 하고 있다. 2021년 한국 영화 ‘써니(2011)’를 중국판으로 제작한 ‘양광자매도(陽光姐妹淘)’와 중국에서 상영된 한국 영화 ‘오! 문희(哦!文姬·2020)’가 대표적이다. 세계 평단의 호평을 받은 한국 영화 ‘미나리(2020)’는 ‘꿈의 땅(夢想之地)’이라는 이름으로 번역돼 중국 언론이 그 성과를 상세히 소개하기도 했다. 영화 ‘기생충(2019)’으로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을 받은 봉준호 감독은 세계 영화팬들에게 자막의 벽 ‘1인치’를 넘어서 달라고 당부했다. 한·중 간 영화 산업 교류사는 이미 두 나라가 1인치의 장벽은 마다하지 않았던 역사를 보여준다.
강 위의 얼음은 두꺼워 보이지만 그 아래에는 여전히 맑은 물이 흐르고 물고기가 숨 쉰다. 한·중 간 문화 교류도 코로나19 영향으로 2022년에도 직접 왕래하기는 쉽지 않을 테다. 그러나 그 아래로는 청정한 교감을 나눌 수 있는 교류가 쉼 없이 이어질 것이다. 교류가 거창하고 화려할 필요도 없다. 짧지만 영겁과도 같은 여운을 주는 장이머우의 ‘1초 동안’의 시간과 봉준호의 ‘1인치’의 장벽을 뛰어넘으려는 노력이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