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욱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연세대 경영학·법학, 베이징대 법학 박사, 사법연수원 33기, 전 법무법인 율촌 상하이 대표처 대표
허욱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연세대 경영학·법학, 베이징대 법학 박사, 사법연수원 33기, 전 법무법인 율촌 상하이 대표처 대표


한 외국인이 중국 거리에서 지나가던 중국인에게 길을 물었다. 그 중국인은 친절하게 길을 설명해 주면서 목적지가 멀지 않았다. ‘마샹(馬上·금방)’ 도착한다며 확신에 찬 목소리로 외국인을 안심시킨다. 그런데 그 중국인이 가르쳐 준 곳으로 갔는데도 목적지까지 가는 데 한 시간이 더 걸렸다.

이는 과거 중국을 방문했던 한국 사람이 흔히 경험하는, ‘중국에서 길 묻기’ 에피소드다. 이제는 스마트폰이 등장해 손에 인공위성 지도를 들고 다니는 세상이 되면서 이런 에피소드가 많이 사라졌다. 지금은 중국뿐만 아니라 어느 나라에 가도 스마트폰 속 지도 애플리케이션(앱)과 길 찾기 앱이 목적지까지 대중교통, 자동차 등 각종 교통수단을 이용한 최적의 경로를 안내해준다. 더는 짧은 외국어로 더디게 길을 묻는 번거로움을 감내할 필요도 없게 됐다. 

기술이 발전하고 권리 보호 의식이 높아지면서 설렘으로 가득 차 중국 거리에 수놓았던 우리의 행종궤적은 법에 따라 보호받는 세상이 됐다. 행종궤적은 ‘다니고 추적하는 궤적’이라는 뜻으로, 사람의 소재지와 이동 경로를 말한다.

중국 개인정보보호법 제28조는 “민감개인정보는 일단 누설되거나 불법적으로 사용되면 쉽게 자연인의 인격적인 존엄을 침해하거나 또는 인신, 재산의 안전이 위해를 받을 수 있는 개인정보를 말한다. 여기에는 생체정보, 종교신앙, 특정 신분, 의료건강, 금융계좌, 행종궤적 등 정보와 만 14세 미만 미성년자의 개인정보가 포함된다. 특정한 목적과 충분한 필요성, 엄격한 보호조치를 취한 경우에만 개인정보 처리자는 민감개인정보를 처리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내 행종궤적의 밑그림이 되는 길을 측량하는 데도 중국은 일정하게 통제한다. 중국 측량법 제2조는 “측량이란 자연 지리 요소 또는 지표상의 인공 시설의 형상, 대소, 공간적 위치와 그 속성 등을 측정, 채집, 표시하고 그렇게 획득한 데이터, 정보, 성과를 처리하고 제공하는 활동”이라고 규정한다. 또한 제8조는 “외국의 조직 또는 개인이 중국 영토와 중국이 관할하는 기타 해역에서 측량 활동에 종사하는 경우에는 국무원의 측량 지리 정보 주관 부서와 군의 측량 부서의 비준을 얻어야 하고, 관련 법률과 행정 법규의 규정을 준수해야 한다. 외국의 조직 또는 개인이 중국 영역에서 측량 활동에 종사하는 경우에는 중국의 관련 부서 또는 단위와 합작을 해야 하고 국가 기밀과 관련되거나 국가 안보를 해쳐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다. 외국인이 함부로 그들의 길을 그리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인상 좋아 보이는 중국 아저씨에게 물어볼 수 있는 길은 외국인이 함부로 측량해서는 안 되는 정보이고, 그 길을 걸었던 나의 행적은 민감개인정보로 법의 보호를 받는다. 14억 명에 이르는 인구가 이동하는 경로와 그 빈도수에 관한 정보는 이제 빅데이터라 해 기밀정보가 된다. 또 미래 사업의 중요한 토양이 되기도 한다.

길 묻기는 같은 시각과 공간에 놓인 낯선 이방인 간에 가능한 가장 기본적이고 적의 없는 소통이다. 그런데 문명의 이기로 사람들은 점점 더 입을 닫게 됐다. 가끔은 중국의 낯선 거리에서 스마트폰을 그만 내려놓고 동네 어귀에서 햇볕을 쬐고 있는 어르신도 좋고, 짓궂게 뛰어노는 아이들에게도 길을 한번 물어보자. 중국 거리에서 길을 묻고 그 길을 직접 밟아 보는 경험은 중국 사람들의 시공간 크기에 관한 관념을 우리와 비교하고 경험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