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막식 공연. 하지만 대회 공식 스폰서들이 광고를 꺼려했을 정도로 중국은 대회를 체제 선전의 장으로 이용했다. 사진 셔터스톡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막식 공연. 하지만 대회 공식 스폰서들이 광고를 꺼려했을 정도로 중국은 대회를 체제 선전의 장으로 이용했다. 사진 셔터스톡

2월 4일부터 20일까지 베이징 동계올림픽이 열렸다. 코로나19가 여전히 세계를 강타하는 가운데 중국의 인권 탄압에 항의하기 위해 많은 서방국가가 외교적 보이콧을 진행했다. 중국은 성공적인 대회였다고 자화자찬했지만, 1936년에 있었던 베를린 올림픽 이후 가장 최악의 대회였다는 평가까지 나온다. 

생방송하는 외신기자들의 취재 활동을 기관원들이 방해하는 등 중국은 올림픽을 노골적인 체제 선전의 장으로 만들었다. 거기에다 단순한 ‘홈 어드밴티지’를 넘어 편파적으로 중국에 유리한 판정을 남발하도록 분위기를 형성했다. 이에 항의하면 관영 매체는 물론 외교 당국까지 나서서 비난하기도 했다. 

더불어 중국의 전략적 우방인 러시아는 약물 문제로 개인 참가만 허락받은 상태였음에도 또다시 같은 범죄를 저질렀다. 더구나 당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을 예정하고 있었으나 대회에 차질을 줄 것을 우려한 중국의 요청을 받아들여 폐막 후로 연기했다는 사실이 알려지기까지 했다. 올림픽이 야합의 장소로 변질된 것이다.

사실, 전쟁을 제외한다면 올림픽이나 월드컵 같은 국제적인 경기 대회가 내셔널리즘(민족주의)이 가장 강하게 표출되는 시공간인 것은 사실이다. 팔이 안으로 굽는 것처럼 자국 선수나 팀을 응원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규칙을 지키지 않고 정정당당하게 경기에 임하지 않으면 비난을 받는다. 경우에 따라 자국민으로부터도 거센 비난에 직면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중국과 러시아가 저지른 논란과 별개로 열심히 능력을 발휘해준 선수들의 멋진 모습에 많은 이가 감동했다. 특히 동계올림픽에서 가장 중요한 이벤트라 할 수 있는 아이스하키 결승에서 핀란드가 러시아를 격파하고 사상 최초로 우승한 사건은 핀란드 국민은 물론 양국의 역사적인 관계를 잘 알고 있는 모든 이를 흥분시켰다.

흐뭇했던 장면도 있었다. 은퇴 후 해설자로 대회에 참석한 이상화와 현역으로 출전한 고다이라 나오의 우정이 대표적이었다. 한때 경쟁하던 라이벌이었음에도 서로를 진심으로 존중하는 모습이 너무나 멋졌기 때문이었다. 일본에서도 같은 반응이 나왔을 정도였다. 최근 한․일 관계의 그늘이 워낙 짙다 보니 그들의 우정이 더욱 빛을 발한 것이었다.


B-17 폭격기를 조종하던  미국 파일럿 찰리 브라운(왼쪽)과  Bf 109 전투기를 몰던 독일의 프란츠 스티글러.  40년 후 말년을 의지하는  좋은 친구가 된 두 사람. 사진 위키피디아·유튜브
B-17 폭격기를 조종하던 미국 파일럿 찰리 브라운(왼쪽)과 Bf 109 전투기를 몰던 독일의 프란츠 스티글러. 40년 후 말년을 의지하는 좋은 친구가 된 두 사람. 사진 위키피디아·유튜브

전쟁 와중에도 우정의 미담은 꽃핀다

그런데 아주 적은 사례지만 전쟁에서도 상대를 배려하는 모습이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 스포츠의 경쟁이 치열하다고 하지만 전쟁과는 비교 자체가 되지 않는다. 특히 목숨을 걸고 싸우는 전투 중에 교전 상대와 아름다운 일이 생긴다는 것은 어쩌면 말도 되지 않을 수 있다. 그런데도 미담을 넘어 평생의 동반자가 되는 인연을 만든 경우까지도 있었다.

1943년 12월 20일, 미 제379 폭격 비행대는 독일 폭격에 나섰다. 파일럿 찰리 브라운이 조종하던 B-17 폭격기도 그중 하나였는데 작전 중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꼬리 날개가 절반쯤 날아간 데다 동체 곳곳이 파손되었고 엔진도 하나가 정지되었다. 10명의 승무원 중 1명이 전사하고 자신을 제외한 모두가 부상을 입은 최악의 상황이었다.

이에 브라운은 대열을 벗어나 기지로 귀환에 나섰다. 하지만 얼마 가지 못해 독일 제27 전투비행단 소속으로 Bf 109 전투기를 몰고 요격 나온 프란츠 스티글러에게 발견됐다. 스티글러는 곧바로 공격 기동에 들어갔는데 곧바로 B-17의 상태가 심각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속도를 줄여 가까이 다가간 스티글러는 겁먹고 있던 브라운과 눈이 마주쳤다.

잠시 고민 끝에 스티글러는 이들을 집으로 돌려보내 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는 B-17의 비행 방향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신호를 보내 연합국 관할지역으로 유도했고, 그렇게 한참을 동행해서 비행한 후 브라운이 안전지대에 들어가자 가볍게 경례를 하고 돌아갔다. 보고를 받은 미군은 스티글러가 처벌받게 될 것을 우려해 이 미담을 비밀로 취급했다.

하지만 절박한 와중에도 Bf 109의 기체 번호를 기록해둔 브라운은 전쟁이 끝난 후에 스티글러를 찾기 시작했다. 마침내 약 50여 년이 지난 1990년에 이들은 극적으로 재회하게 되는데 공교롭게도 가까운 곳에 살고 있었다. 당연히 이 둘은 말년을 함께하는 돈독한 친구가 되었고 약속한 듯이 2008년에 몇 달 차이로 생을 마감했다.

사연을 취재한 기자에게 스티글러는 “그들이 집으로 가려고 했기에 보내줬을 뿐입니다”라고 덤덤하게 이야기했다. 스포츠도 마찬가지지만 전쟁터에서 이런 아름다운 이야기가 나올 수 있었던 것은 결국 판단은 심장을 가진 인간이 하기 때문이다. 편법을 동원해서라도 무조건 남을 눌러야 직성이 풀리는 이라면 명심해야 할 숭고한 가치라 할 수 있다.

남도현 군사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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