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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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택 아주대병원가정의학과 교수 현 아주대병원 비만클리닉 소장, 현 대한골다공증 학회 부회장
김범택 아주대병원가정의학과 교수 현 아주대병원 비만클리닉 소장, 현 대한골다공증 학회 부회장

옛날 로마에서 전쟁을 승리로 이끈 장군들에게는 화려한 개선식(Triumphus)을 열 기회가 주어졌다. 개선장군은 4두 마차가 끄는 화려한 전차를 타고, 열렬한 환호를 받으며 로마 시내를 행진했다.

생애 최고의 순간 개선장군의 옆에는 노예가 있었다. 노예는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라고 크게 외쳤다. 이는 라틴어로 ‘너의 죽음을 기억하라’ 또는 ‘너도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라는 뜻이다.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교만하지 말라는 경고다. 최근 우리나라 사람들의 수명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런 이유로 자신이 영원히 살 것처럼 생각하고 내일을 준비하지 않는 이들이 많다.

잘 산다는 것은 잘 죽는 것을 포함한 개념이다. 그러나 잘 죽는 것에 대한 우리들의 인식은 매우 후진적이다. 죽음을 당당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마지막 순간까지 죽음을 거부하며 공포에 괴로워한다. 환자는 엄청난 공포에 통증, 호흡곤란, 연하장애 등 다양한 신체적 고통을 겪거나, 스스로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한다.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생전에 가족에게 자신의 임종을 상의하는 비중은 23.5%에 불과하다. 우리 사회에는 아직 산 사람의 임종을 상의하는 것이 불효라는 유교적 인식이 지배적이다. 평화로운 영면에 대한 논의를 막는 것이다. 영국의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5년마다 ‘세계 죽음의 질 지수’를 조사하는데, 한국은 80개국 중 18위에 머물렀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죽음을 준비할 것인가. 첫째, 정기적으로 병원을 방문해 자신의 건강 상태를 체크하고 의료진과 자신이 회복이 어려운 상황에 부닥쳤을 때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솔직한 대화를 나누는 것이 좋다. 

둘째, 생의 마지막 부분에 대해서 정리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 좋다. 인생을 회고하며 글로 정리해 보는 것도 좋다. 죽기 전에 하고 싶은 버킷리스트를 작성해, 하나씩 성취해 보는 것도 ‘웰다잉(well-dying)’의 중요한 요소다.

셋째, 임종에 대해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 놓는 것이 좋다. 어디서 임종을 맞이할 것인지, 누가 함께 있으면 하는지 등을 호스피스 종사자들과 상의한다. 재산 분할에 대해 증여, 상속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경제적인 면도 계획을 세워 유언장을 작성하고 공증을 받는다.

얼마 전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서거했다. 그는 자신의 장례식에서 백파이프로 연주할 곡까지 정하는 등 자세히 유언을 남겼다. 국민으로부터 많은 지지를 받지 못했던 찰스 3세의 부인 파멜라 왕비가 왕비의 자리에 오르도록 미리 정확히 의사를 표시했다고 한다. 생전에 잘 준비한 덕분에, 왕실 가족과 국민은 오직 고인의 생존 업적을 기억하며 애도하는 데만 마음을 쓸 수 있었다.

미국 원주민인 나바호족에게도 다음과 같은 격언이 있다. “네가 세상에 태어났을 때 너는 울었지만, 세상은 기뻐했다. 네가 죽을 때는 세상은 울어도 너는 기뻐할 수 있는 그런 삶을 살아라.” 이런 삶은 늘 죽음을 기억할 때 가능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