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언을 많이 하는 사람일수록 권력을 추구하는 성향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조언을 많이 하는 사람일수록 권력을 추구하는 성향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2012년 한 취업포털사이트가 ‘직장 내 피로물질’에 대해 조사한 적이 있다. 당시 국내외 기업에 재직 중인 직장인 1101명은 ‘직장생활에서 귀하를 가장 피곤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받았다. 성별에 따라 답변이 갈렸는데, 남성 직장인은 ‘야근(52.4%)’이 가장 피곤하다고 답한 반면, 여성 직장인의 경우 야근, 늦은 밤까지 이어지는 회식, 개념 없는 직장동료 그 무엇도 아닌 ‘상사의 잔소리(48.0%)’를 직장 내 피로물질 1순위로 꼽았다. 

6년이 지난 지금도 직장 내 잔소리는 흔히 찾아볼 수 있다. 상사의 잔소리에 지친 직원들은 서점으로 달려가 자신의 마음을 할퀴어대는 상사를 당장 내일부터 어떻게 대할지 처방전을 찾아 헤맨다. 다만 이전까지는 부하직원만 해결책을 강구했다면, 요즘은 잔소리하는 주체, 상사도  마찬가지로 같은 문제를 고민하고 있다. 한국 직장 내 문화가 수평적으로 변화하는 움직임이 나타나면서 자신이 잔소리를 늘어놓는 상사가 아닌지, 왜 자신도 모르게 잔소리를 퍼붓고 있는지 등에 대해 고찰하는 상사가 늘어나고 있다. 

조언이 권력에 대한 감각을 일깨우는 것은 맞지만, 조언이 거부당할 경우 이 효과는 즉각 사라진다.
조언이 권력에 대한 감각을 일깨우는 것은 맞지만, 조언이 거부당할 경우 이 효과는 즉각 사라진다.

리황(Li Huang) 프랑스 인시아드 경영대학원 교수가 잔소리에 숨겨진 비밀을 찾았다. 그는 마이클 세러(Michael Schaerer) 싱가포르 경영대학 교수와 함께 저술한 ‘조언 제공: 권력으로 가는 교묘한 길(Advice Giving: A Subtle Pathway to Power)’이라는 논문을 통해 “조언하는 행동은 권력을 추구하는 성향과 관계가 있다”며 “다른 개인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에 대해 조언하면 그 사람에 대해 영향력이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고, 이는 권력에 대한 감각을 일깨워준다”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이 같은 결론을 도출하기까지 총 네 가지 실험을 동원했다. 첫 번째 실험에서는 조언과 권력의 상관관계를 검증했다. 300명의 실험자들을 모집하고, 이들을 세 그룹으로 나눠 △조언을 요청받았을 때 △자발적으로 조언했을 때 △단순한 보통의 대화를 나눴을 때 등을 각각 회상하도록 했다. 데이터 분석 결과, 조언한 시간을 떠올린 그룹은 단순한 대화를 나눈 그룹에 비해 상대방에 대한 영향력이 더욱 증가했다고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조언의 요청 여부는 중요치 않았다. 

리 교수는 “사람들은 조언을 요청받을 때, 일반적으로 자신이 가치 있다고 느끼는 것은 물론 상대방으로부터 존경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어 권력을 느낄 이유가 충분하다고 생각했지만, 실험 결과 요청받고 조언했는지와 자발적으로 했는지에 따른 차이는 없었다”고 말했다. 

조언하는 것만으로도 권력 감각이 살아나는데, 그 조언을 실제로 상대방이 따르는 모습까지 본다면 어떨까. 조언이 권력을 가져다 줄 수 있다는 사실을 더욱 명백히 깨달을 수 있지 않을까. 

연구진은 두 번째 실험을 통해 이 물음에 대한 답을 검증했다.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두 번째 실험에 참여한 100명의 실험자들은 자신의 조언을 상대방이 따르는 것을 목격했을 때 권력에 대한 감각이 더욱 크게 증가한다고 느꼈고, 이후 조언하는 빈도 역시 더욱 높아졌다고 답했다.

앞서 두 실험의 대상은 권력을 추구하는 성향이 원래 높은 사람들이 아닌, 무작위로 선발된 사람들이었다. 연구진은 권력 추구 성향과 조언의 상관관계를 더욱 명확히 증명하기 위해 세 번째 실험을 실시했다. 124명의 MBA 학생들을 모아놓고 그들 간 정치적 교류 행동을 측정한 것이다. 리 교수는 “이러한 네트워크에 참여해 인맥을 쌓으려는 이유는 상대방에 대한 영향력을 키우기 위한 것이므로, 권력 추구 성향을 측정하는 좋은 대용물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학생들에게 가상의 토론 주제를 주고 1 대 1로 논의할 수 있는 시간을 줬다. 리 교수는 “이때 상대방이 얼마나 조언했는지 설문조사를 했는데, 그 결과 권력 추구 성향과 조언 제공 사이 강력한 연관성을 발견했다”고 전했다. 

지금까지의 실험을 통해 권력을 추구하는 성향이 높을수록 조언하는 경향이 높다는 것이 확인됐지만, 네 번째 실험에서는 반대로 조언을 받는 사람이 조언 제공자의 권력에 대한 의지를 꺾을 방법을 알아냈다. 상대방이 확실하게 조언을 ‘거부’하는 것이다. 연구진은 188명의 대학생에게 ‘딜레마에 직면한 학생에게 서면으로 조언해달라’고 요청했다. 실험자의 절반은 문제에 처한 학생이 그들의 조언을 듣고 싶어한다는 소식을 받았고, 나머지 절반은 최종 결정을 내린 뒤 그들의 조언을 확인할 것이라는 소식을 받았다. 리 교수는 “실험 결과, 조언 직후 실험자들의 권력에 대한 감각은 10% 이상 증가했다”며 “다만 이러한 권력 감각 상승은 상대방이 조언을 듣고 싶어 할 때만 지속됐고, 조언을 거부당하면 이 효과가 즉시 사라졌다”고 설명했다. 

경영 리더십 분야의 세계적 구루인 맨프레드 케츠 드 브리스(Manfred Kets de Vries) 인시아드 경영대학원 교수 역시 리 교수의 의견에 동의했다. 그는 권력 중독의 지표 다섯 가지를 제시했는데, 그중 첫 번째가 ‘조언의 빈도’였다. 

이외에는 △자신의 직함과 재산에 따라 자신을 정의하는가 △언제나 모든 것을 이겨야 하는가 △당신의 위치에 따라 제공되는 특별 대우를 즐기는가 △주변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주고 싶은가 등이 있다. 케츠 드 브리스 교수는 “위 물음에 대해 모두 그렇다고 답했다면, 당신은 권력과 그 부속물에 대해 지나치게 집착하고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고 경고했다. 이어 그는 “나중에 후회할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많은 이들이 권력에 대한 욕구를 채우기 위해 현실과 타협할 준비가 돼 있다”며 “역사는 스스로를 파괴한 권력 중독자들로 가득하다. 언젠가 권력이 사라졌을 때 자신의 모습을 생각해보라”고 경고했다.


권력 중독, 유년 시절 경험서 영향

케츠 드 브리스 교수는 권력에 중독된 이들의 특징을 넘어, 왜 권력에 중독될 수밖에 없는지에 대해서도 설명한다. 그는 먼저 개인의 유년 시절 경험에서 원인을 찾았다. 케츠 드 브리스 교수는 “권력에 중독된 이들은 나약함, 두려움, 애정 결핍 등의 감정을 권력에서 보상받으려 한다”며 “권력에 대한 욕망은 힘으로 가장된 약점이라고 할 수 있다. 전 세계에서 권력을 독점했던 인물들을 살펴보면 이 설명과 정확히 일치한다”고 말했다. 

권력에 중독될수록 공감능력이 떨어져 주변 사람들을 괴롭힐 수 있다.
권력에 중독될수록 공감능력이 떨어져 주변 사람들을 괴롭힐 수 있다.

폭군의 대명사로 불리는 로마의 네로 황제가 대표적이다. ‘폭군들: 우리가 몰랐던 희대의 폭군 5인의 은밀하고 기이한 사적 이야기들’에 따르면, 네로는 어린 시절부터 정치 투쟁과 권모술수를 보고 자랐고, 그 중심에 있었던 어머니 아그리피나에 휘둘려 ‘마마보이’로 성장했다. 네로는 자신의 등 뒤에서 무한한 권력욕을 휘두르려는 어머니를 직접 죽였는데, 저자는 이를 두고 ‘친어머니를 살해하는 패륜을 저지른 네로의 광기는 바로 내가 상대를 죽이지 않으면 상대가 나를 죽이게 될 것이라는 두려움에서 나온 것’이라고 분석했다. 

즉 세상에 대한 공포를 전제 권력을 휘두르는 것으로 메꾸려 한 것이다. 히틀러 역시 유년 시절 폭력적인 아버지 밑에서 성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권력을 쥐었을 때 뇌에서 분비되는 호르몬 역시 권력 중독을 부르는 요인이다. 케츠 드 브리스 교수는 “다른 사람들에게 권력을 행사할 때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 분비가 더 활성화되는데, 이는 사람의 기분을 좋게 만들어주는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의 공급을 증가시킨다”며 “도파민의 급격한 증가는 중독성 있는 권력의 성질과 왜 그것을 포기하기 어려운지를 설명해준다”고 말했다. 그러나 도파민이 지나치게 많이 분비되면 인지 기능과 정서 기능이 떨어질 수 있다. 즉 상대방 입장에서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 떨어지고, 충동적인 행동을 부추겨 판단의 총체적 오류와 불필요한 위험을 감수하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케츠 드 브리스 교수는 “문제는 권력에 중독됐다는 것을 깨닫기 어렵게 만드는 권력 중독자 주변의 환경”이라며 “그들은 우호적인 목소리에 둘러싸여 있어 자신은 실수가 없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고 말했다.


기업, 권력 중독 방지 장치 마련해야

케츠 드 브리스 교수는 “정치 지도자들이 권력에 중독되는 것을 막기 위해 언론의 자유가 있고 권력 시스템이 분리돼 있는 민주주의 사회와 달리, 대부분의 기업은 권력이 최상위층에 집중돼 있어 권력 중독을 부추긴다”고 말했다. 그는 “조직에 도움되지 않는 무책임한 인수·합병(M&A)을 계속하는 등 실제로 무모하게 행동하는 예가 많은데, 이는 권력에 중독돼 객관적인 상황 판단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라며 “CEO들이 요구하고 받아가는 과도한 보상 역시 권력 중독의 또 다른 부작용”이라고 말했다. 

기업 내 권력 중독을 방지하기 위해선 열린 기업 문화가 필요하다.
기업 내 권력 중독을 방지하기 위해선 열린 기업 문화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기업이 리더의 권력 중독을 예방하기 위해선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할까. 먼저 기존 시스템을 더욱 활성화하는 방안이 있다. 케츠 드 브리스 교수는 “언론, 노동조합, 시민단체 등은 비즈니스 세계에서 권력이 최상위층에 쏠려 있는 구조를 상쇄할 수 있는 전통적 장치”라고 평가했다. 이외에도 직장 상사만 부하직원의 성과를 평가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부하직원도 상사를 평가할 수 있는 다면평가제도, 기업 내 조직 문화를 정기적으로 점검하는 제도 등을 도입하는 것이 케츠 드 브리스 교수가 생각하는 권력 중독 방지법이다. 그는 “가장 도움이 되는 것은 직원들이 상사 말을 건전한 방법으로 거부할 수 있는 조직 문화가 있는 것”이라며 “직원들이 그들의 마음속 말을 할 수 있을 때, 권력에 중독된 이들을 현실로 돌아오게 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plus point

고정관념 강해지는 권력 중독자 윈스턴 처칠도 아내로부터 경고받아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도 한때 권력 중독 증상을 보였다.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도 한때 권력 중독 증상을 보였다.

수잔 피스크(Susan Fiske) 미국 프린스턴대 심리학과 교수에 따르면, 권력에 중독된 이들은 사람을 세심히 관찰하지 않는다. 예전에는 남들에게서 큰 노력을 들여 필요한 자원을 겨우 얻어내야 했지만, 권력을 획득하면 그 자원을 이미 가진 경우가 많은 데다 설사 필요한 자원이라 할지라도 권력을 이용하면 쉽게 얻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개별적 특성을 파악하는 능력이 떨어지면 결국 ‘고정관념’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권력에 중독된 이들은 상대방에게 적의를 갖고 그들을 괴롭히기도 한다. 대처 켈트너(Dacher Keltner) 미국 UC버클리대 심리학과 교수는 “권력을 거머쥔 사람일수록 적의를 갖고 타인과 동료를 괴롭히며 모욕을 주는 경향이 강했는데, 이는 마치 ‘안와전두엽’이 손상된 환자와 같았다”고 말했다. 안구 바로 뒤에 있는 안와전두엽이 손상되면 사회 기준과 규범을 무시하는 무책임한 행동을 보이거나, 남의 감정을 배려하지 않는 행동을 하는데, 권력 중독 증상이 이와 비슷하다는 것이다. 

20세기 가장 위대한 정치가로 꼽히는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조차도 한때나마 권력에 중독됐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를 일깨워줬던 이는 그의 아내 클레멘타인이었다. 1940년 6월 27일, 클레멘타인은 “사랑하는 윈스턴, 당신의 태도가 변해서 이전만큼 친절하지 않다는 사실을 고백하지 않을 수가 없네요”라고 시작하는 편지를 처칠에게 적어 보냈다. 

그는 “당신 동료들과 부하들이 당신을 싫어할 위험이 있어요. 당신의 거칠고 위압적이며 빈정대는 그 태도 때문에 말이죠”라며 부하들이 회의에서 의견을 제대로 얘기할 수 없고, 이 때문에 최선의 결과를 도출하지 못할 위험이 크다는 사실을 일깨웠다.

이윤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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