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안동에서 일을 마치고 서울로 향하는 중앙고속도로 치악휴게소(춘천 방향). 오후 8시 지붕 위로 어스름이 내리기 시작했다. 식당에 들어서니 식판을 받아 든 여행객들이 삼삼오오 자리를 잡고 있었다. 앞선 사람의 뒤통수를 보며 구수한 음식 냄새를 따라가니 ‘휴게소 대표 프리미엄 메뉴, 뽕잎밥정식’이라는 플래카드가 보였다. 쌉싸름한 나물밥을 떠올리니 입안에 침이 고였다. 주문 후 음식값을 건네자 점원이 말을 건다. “오늘 운 좋으세요. 딱 한 그릇 남았어요.”

‘뽕잎밥정식’은 치악휴게소가 올해 5월 첫선을 보인 지역특산메뉴다. 점원은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하루에 20~40그릇 정도의 분량만 판매한다고 했다. 반딧불이로 유명한 고니골 뽕잎을 쓰는데, 원재료비가 비싸다 보니 많이 팔아봤자 이윤이 크게 안 남는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고춧가루를 푼 간장을 밥에 넣고 쓱쓱 비벼 한술 뜨니 뽕잎향과 간장, 참기름이 어우러져 오묘한 맛이 났다. 도톰한 감자전은 간을 하지 않아 재료 본연의 맛을 느낄 수 있었고, 시래기와 두부를 넣고 오래 끓인 된장찌개는 구수했다. 후식으로 곁들인 매실차는 달콤시원했다. 김범주 치악휴게소 관리소장은 “뽕잎밥정식으로는 가격 갖고 트집 잡는 사람을 못 봤다”고 자랑했다. 서울 시내에서 이 값을 내고 이런 음식을 대접받기는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맛없고 비싸다.’ 고속도로 휴게소 식당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생각이다. 화장실도 깨끗하고 주유소 기름값도 싸지만, 휴게소 식당에서 식사만은 피하고 싶다는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얼마 전부터 고속도로 휴게소 식당이 제법 붐비기 시작했다.

‘먹방 TV’ 예능프로그램에서 휴게소 음식을 소개된 이후 생긴 진풍경이다. TV 프로그램에서 지역 특색 음식으로 소개된 휴게소 식당의 식권 판매대 앞은 주말마다 장사진을 이룬다. 가장 대표적인 음식이 올해 휴게소 간식계의 최고 히트상품으로 떠오른 안성휴게소(부산 방향) ‘소떡소떡’이다. 소시지와 가래떡을 꼬치에 끼워 튀긴 음식인 ‘소떡소떡’은 TV 예능프로그램에서 소개된 이후 하루 매출이 1000만원까지 치솟았다. 일 판매량으로는 약 2850개에 이른다.


왼쪽부터 치악휴게소(춘천 방향)의 뽕잎밥정식, 보성녹차휴게소(목포 방향)의 꼬막비빔밥, 안성휴게소(부산 방향)의 소떡소떡. 사진 김명지 기자
왼쪽부터 치악휴게소(춘천 방향)의 뽕잎밥정식, 보성녹차휴게소(목포 방향)의 꼬막비빔밥, 안성휴게소(부산 방향)의 소떡소떡. 사진 김명지 기자

특산품으로 진화하는 휴게소 맛집들

고속도로 휴게소는 차 안에 쌓인 쓰레기를 버리고, 급한 허기를 채우기 위해 들르는 곳이란 고정관념이 깨지고 있다. 소득 수준이 높아지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발달하면서 휴게소에서도 가격이 다소 비싸더라도 유명하고, 특색 있는 음식을 먹겠다는 풍조가 생겼고, 사람들에게 특별히 주목받는 메뉴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배종엽 전 한국고속도로휴게시설협회 부회장은 “고속도로 휴게소의 단편적인 메뉴 구성에 식상해 있던 사람들이 매스컴을 통해 새로운 음식을 접하자 격렬히 반응하고 있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한국도로공사 휴게시설처장을 지낸 배 전 부회장은 고속도로 휴게소 운영만 30년을 한 베테랑이다.

도로공사에서 시행 중인 프리미엄 식단 취급 장려 정책, 1개소 1식단 특화 개발 식품 의무화 정책이 해를 거듭하며 성과를 내는 것도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몇 년 전부터 인접 지역 지방자치단체와 손을 잡고 지역 특산품을 접목해 특색 있는 메뉴를 개발하는 고속도로 휴게소 식당이 눈에 띄게 늘었다. 신선하고 맛깔나는 고명과 특화한 육수를 만들어 특색 있는 음식을 제공하는 식당은 운전자들의 입소문을 타고 퍼져 나갔다.

도입 초기단계인 한국과 달리 일본 고속도로 휴게소는 지역 특산품 메뉴가 일반화되어 있다. 옛 에도시대를 테마로 리모델링한 동북고속도로(東北道)의 하뉴휴게소는 지역 명물인 장어를 재료로 한 ‘장어덮밥(1300엔)’이, 도쿄에서 닛코로 향하는 길에 있는 사노휴게소는 인근 지역에서 나는 청정 지하수를 이용해 뽑은 면발을 사용한 ‘사노라멘(600엔)’이 유명하다. 이훈 한양대 관광학부 교수는 “일본처럼 지역 특산품을 가공하고 스토리를 입힌다면 휴게소 음식관광이 활성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의 일반 고속도로 휴게소 식당 음식의 가격과 서비스에 대한 불만은 여전히 높다. 목적지가 있는 운전자를 대상으로 하는 만큼 빠른 속도로, 일정한 맛의 음식을 적당한 가격에 내야 하지만 말처럼 쉽지 않다. 고속도로 휴게소 특식 메뉴로 ‘새뱅이해물순두부’를 개발한 중앙고속도로 단양휴게소(부산 방향)의 홍기억 조리실장은 “찌개의 국물맛을 일정하게 유지하고, 빠르게 음식을 내기 위해서 많은 시행착오를 거쳤다”고 설명했다.

고속도로 휴게소 특식 메뉴들은 진짜 맛있을까. 전국 187곳 휴게소 가운데 도로공사가 선정한 휴게소 대표 음식 20개와 MBC 예능프로그램에서 코미디언 이영자가 소개한 휴게소 음식 10종 가운데 지역 특색을 살린 메뉴를 판매하는 휴게소 식당 10곳을 선정하고, 9월 15일부터 18일까지 ‘이코노미조선’ 기자들이 직접 방문해 취재했다. 음식의 맛, 식당의 청결도, 신속성, 가격 등을 세분화해 데이터를 수집하고 별점을 매겼다.


plus point

휴게소 음식값 절반은 임대 수수료

지난해 고속도로 휴게소 음식점 가운데 24.6%가 매출액 절반 이상을 수수료로 낸 것으로 조사됐다. 밥값에서 반을 뚝 떼고 나머지로 재료비와 인건비 등을 충당한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수수료가 매출의 50%를 차지하는 휴게소 식당에서는 손님이 7000원짜리 음식을 주문하면 3500원이 임대 수수료로 나간다. 식당은 나머지 3500원으로 밥을 차려내고 종업원을 쓰고 수익을 남긴다.

고속도로 휴게소 운영권은 한국도로공사 입찰을 통해 결정된다. 고속도로 휴게소는 공공 인프라 성격을 갖고 있어 높은 가격을 써낸 업자가 아니라, 여러 업체가 낸 가격의 평균치에 가장 근접한 업자에게 운영권을 준다. 이렇게 운영권을 받은 민간기업이 휴게소 내 식당과 점포들로부터 수수료를 거둬들인다.

휴게소 식당들은 특색 있는 메뉴를 개발하면서도 재료비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을 늘 고민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새뱅이해물순두부처럼 지역색을 살리면서도 국내산 식재료 대신 저렴한 수입산을 활용한 상품들이 나왔다.

휴게소 식당의 최근 가장 큰 고민은 인건비다. 김범주 치악휴게소 관리소장은 “시간외수당을 포함하면 1인당 임금이 20% 이상 올랐다”며 “인건비를 고려하면 현재 24시간 영업 시스템을 유지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했다.

김명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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