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요다 아키오 도요타 자동차 사장과 쓰가 카즈히로 파나소닉 사장이 2017년 12월 31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합동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이듬해인 2018년 6월 도요타와 파나소닉은 전기차용 중형 배터리 원천기술 공동 개발 계획을 발표했다. 사진 블룸버그
도요다 아키오 도요타 자동차 사장과 쓰가 카즈히로 파나소닉 사장이 2017년 12월 31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합동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이듬해인 2018년 6월 도요타와 파나소닉은 전기차용 중형 배터리 원천기술 공동 개발 계획을 발표했다. 사진 블룸버그

“(일본 기업은) 씨름판에서 싸우지 않는다. 우리는 가격보다는 기술 경쟁으로 간다.”

리튬이온배터리를 세계 최초로 개발한 일본 화학회사 아사히카세이(旭化成)의 요시노 아키라(吉野彰·70) 명예 펠로는 10월 5일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 일본 배터리 기업의 전략에 대해 묻는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일본에서 축전지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요시노 아키라 박사는 매년 유력한 노벨화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인물이다.

현재 배터리 양산이 가능한 국가는 세계적으로 한국, 일본, 중국 세 나라뿐이다. 중국이 가격 경쟁력을 내세운다면 일본은 기술력으로 승부한다. 일본은 1990년대 니켈수소배터리, 니켈카드뮴배터리 상용화에 성공했다. 1991년에 소니가 리튬이온배터리 상업화에 성공하면서 북미와 유럽을 제치고 배터리 산업 종주국으로 자리를 공고히 했다. 전기차용 리튬이온배터리 시장에서 일본 파나소닉은 세계 1, 2위를 다투고 있다.

일본이 배터리 종주국으로 자리를 공고히 할 수 있는 것은 배터리 4대 핵심 소재 시장에서 최강의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사히카세이는 분리막 글로벌 시장 1위 업체이며, 코발트계 양극재 시장에서는 니치아 화학공업이 2위, 니켈계에서는 스미토모가 1위다. 음극재 시장은 인조흑연 분야에서 히타치화학, 일본카본 등이 기술력에서 압도하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모노즈쿠리(일본의 물건 만들기 철학)’가 자동차용 중형 배터리 분야로까지 영역을 확장했다”고 보도했다. ‘모노즈쿠리’로 잘 알려진 일본 교토 간사이에는 전기차용 중형 배터리 시장을 노린 차세대 배터리 개발 경쟁이 펼쳐지고 있다. 간사이 지역 리튬이온배터리 수출액은 2700억엔으로 일본 전체의 50%를 차지한다.

간사이는 전통 소재업에서 시작해 대학 연구기관까지 자동차용 중형 배터리 산업 저변이 넓다. 일본 시코쿠(四國) 도쿠시마(德島)에 있는 니치아화공(化工)은 한국에서는 발광다이오드(LED)로 유명한 회사지만, 요즘은 양극재 매출이 실적을 견인하고 있다. 니치아화공의 양극재 매출은 지난해 말 1150억엔(약 1조1700억원)으로 총매출의 25%를 차지했다.

전기차 배터리에서 양극재는 핵심 부품에 속한다. 리튬이온배터리는 리튬이온이 전해액을 통해 양극(陽極)과 음극(陰極) 사이를 왔다갔다하며 충전과 방전을 반복하는데, 여기에 쓰이는 양극과 음극을 양극재라 부른다. 니치아화공은 고순도 분말을 정제하는 기술과 발광다이오드 제작 과정에서 축적된 형광체 화학 합성 노하우를 바탕으로 양극재 제조 기술을 터득했다. 니치아화공은 양극재 기술 유출을 방지하기 위해 도쿠시마 공장에서만 생산한다.


민관 전고체 배터리 개발에 총력

일본은 최근 전기자동차(EV)의 단시간 충전, 장거리 주행을 실현하는 차세대 배터리 원천 기술 개발을 위해 전사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올해 6월 일본 경제산업성 산하 신에너지 산업기술종합개발기구(NEDO)는 도요타, 닛산, 파나소닉, 혼다 등 23개 대기업과 대학 연구기관 15개 기관이 참가하는 100억엔(약 1017억원) 규모의 전고체(all solid state)배터리 양산 4개년 개발계획을 발표했다. 파나소닉 외에 GS유아사와 후지필름, 멕셀과 소니 배터리사업부를 인수한 무라타제작소도 포함됐다.

선봉에 선 곳은 도요타다. 시조우 히데키 도요타 배터리 재료 기술 연구 부장은 “도요타가 NEDO에 파견한 엔지니어들의 면면만 봐도 도요타가 어떤 자세로 기술 개발에 임하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도요타는 배터리 최고 핵심 연구진을 NEDO에 파견했다.

도요타가 전고체배터리에 사활을 거는 것은 이 기술에 일본 자동차 산업의 미래가 달려 있기 때문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전고체배터리 기술을 확보한 나라가 미래 산업의 게임체인저가 될 것”이라며 “단순 배터리 분야는 물론이고, 전기차 시장에서 주도권을 쥐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도요타는 전고체배터리 전해질 관련 해외 특허 출원 건수 세계 1위 기업이다. 2006년부터 2015년까지 도요타는 총 24건의 해외 특허를 출원했다. 도요타를 포함, 일본 기업의 전고체배터리 관련 특허는 전 세계를 압도한다. 같은 기간 일본의 전고체배터리 해외 특허는 133건. 2위인 미국 40건, 한국은 20건에 불과하다. 도요타의 전고체배터리 개발 인력만 300명에 달한다.

도요타는 리튬이온배터리의 한계를 지적해 왔다. 지난해 9월 도요타의 우치야마다 다케시 회장은 “자동차 산업이 전기차로 재편되려면 배터리 기술 혁신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리튬이온배터리는 에너지 밀도를 300/㎏ 이상으로 높이기 어렵다. 60㎾ 배터리의 무게를 200㎏ 이하로 낮추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예를 들어 전기차인 GM 쉐보레 볼트는 리튬이온배터리팩만 345㎏에 달한다. GM 쉐보레 올 뉴 크루즈의 총무게(1250kg)와 비교해도 상당하다.

리튬이온배터리는 안전성에도 문제가 있다. 리튬이온과 전고체배터리의 가장 큰 차이는 전해질의 상태다. 전고체배터리는 말 그대로 양극재, 음극재, 전해질 모두 고체다. 고체이기 때문에 온도 변화와 외부 충격에 따른 위험이 적다. 리튬이온배터리는 온도에 따라 전해질이 얼거나 축소 팽창하기 때문에 외부 충격으로 전해질이 누출되면 화재가 발생하기도 한다.

도요타는 현재 전고체배터리 생산 라인 구축 단계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8월 도요타는 마쓰다와 미국 합작 투자 발표 현장에서 2021년 미국에서 생산될 전기차엔 전고체배터리가 장착될 것이라고 밝혔다. 도요타는 지난해 2월 미국 특허청에 전고체배터리 모듈 생산 관련 특허를 등록했다.

도요타 외에도 후지필름이 카메라용 필름 생산을 통해 축적한 롤투롤(Roll to Roll) 코팅 방식을 바탕으로 전고체배터리 시제품 생산에 성공했다. 무라타제작소는 2017년 소니의 배터리 부문을 인수하며 차세대 배터리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무라타의 무라타 쓰네오 최고경영자(CEO)는 지난해 10월 “2019년까지 전고체배터리를 상용화하겠다”고 했다.

다만 무라타가 개발 중인 전고체배터리는 도요타와 다른 방식일 것으로 예상된다. 그동안 전기차용 배터리 시장 진출 계획이 없다고 밝혀왔기 때문이다.

한편 일본은 전고체배터리 분야의 라이벌은 중국이나 한국이 아니라 미국으로 보고 있다. 닛케이비즈니스는 “미국배터리 벤처 업계에서 최근 눈에 띄는 성과가 쏟아지고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