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증권가 빌딩 사이 ‘너구리 골목’ 금연 표지판 앞에서 직장인들이 담배를 태우고 있다. 사진 김문관 기자
6월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증권가 빌딩 사이 ‘너구리 골목’ 금연 표지판 앞에서 직장인들이 담배를 태우고 있다. 사진 김문관 기자

6월 4일 오전 11시 30분, 서울 여의도 한화투자증권 본사에서 국제금융센터(IFC) 인근까지 길게 이어지는 증권가 골목에는 60여 명의 직장인이 삼삼오오 모여 담배연기를 내뿜었다. 골목 양쪽 가장자리에는 수많은 담배꽁초와 담뱃갑이 나뒹굴고 있었다. 이곳은 한화투자증권을 시작으로 NH투자증권, 유화증권, KTB증권, 신한금융투자, 현대차증권 등 9곳의 증권사 고층빌딩 사이로 나있는 이른바 ‘너구리 골목’이다. 곳곳에는 금연 표지판이 설치돼 있지만, 사람들은 표지판 바로 앞에서도 거리낌 없이 담배를 태웠다.

직장인 김모(44)씨는 “담배를 태우지 않는데 이 골목에 들어설 때마다 담배연기를 피할 방법이 없어 갑갑하다”고 토로했다.

흡연자들이 ‘너구리 골목’으로 내몰리는 이유는 이곳에 공식적인 흡연구역이 매우 부족한 탓이다. NH투자증권 정문 앞 등 세 곳에 작은 흡연구역이 있지만 매우 비좁아 흡연하는 증권맨들을 모두 수용하는 건 불가능하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서울 영등포구는 지난해 말 사유지에서도 구청차원의 흡연 단속이 가능하도록 조례를 개정했다. 영등포구는 지난해 말부터 연면적 5000㎡(약 1512.5평) 이상의 대형 건축물이 속한 땅을 건물주가 원할 경우 정식 금연구역으로 지정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증권사들은 이에 협조적이지 않는 상황이다. 의무사항이 아닌 데다 정식 금연구역으로 지정되면 자비를 들여 흡연구역을 마련해야 하는 탓이다.

영등포구 보건지원과 관계자는 “상주하는 인원에 비해 흡연구역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에 9개 증권사 건물 중 일부 건물에만 흡연부스를 마련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라며 “9개 증권사와 공동으로 흡연부스를 설치하는 방안을 추진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정부와 지자체가 금연정책을 확대하면서 흡연구역은 제대로 확충하지 않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라고 지적한다. 관광객이 몰리는 서울 명동의 경우도 2호선 을지로입구역 롯데백화점 앞에 마련된 작은 흡연부스 외 흡연구역이 매우 부족해 행인이 많은 금연구역에서 담배를 태우는 모습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흡연구역이 부족하다 보니 흡연자와 비흡연자 모두가 동시에 피해를 입고 있는 셈이다.

흡연자는 금연구역에서 담배를 태우기 때문에 가끔 시행되는 단속에 걸리면 과태료 10만원을 내야 한다. 비흡연자는 원치 않는 간접흡연으로 건강을 해친다. 한 사회학과 교수는 “흡연자와 비흡연자의 충돌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흡연구역을 늘리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한국은 흡연구역 설치보다는 금연구역 확충에 정책 가중치를 두고 있다. 서울시는 흡연시설 설치 현황조차 모르고 있다가 지난해 8월에야 실태조사에 들어갔다. 조사 결과 서울시내 민간시설 등에 설치된 흡연구역은 6200여 곳이었다. 반면 서울시가 지정한 금연구역은 최근 5년간 급증해 15만5143곳에 달했다. 금연구역 대비 흡연구역 비중이 3.9%에 불과한 실정인 셈이다.

관련 업계 관계자는 “보건복지부는 오는 2025년까지 건물 내 지정흡연구역을 모조리 폐쇄한다는 방침을 세웠다”면서 “앞으로 한층 가중될 간접흡연 피해를 줄이고 혐연으로 번지는 사회적 갈등을 해소할 묘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