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마트·신세계에서 대형마트와 백화점이 사라진다면 이 기업은 매출과 이익을 유지할 수 있을까? 자동차라는 제품이 사라지는 날, 현대자동차는 어떻게 될까?

기업으로서 상상하기 어려운 위기를 20년 전 이미 겪은 기업이 일본에 있다는 건 꽤 알려져 있다. 후지필름이다. 2000년을 정점으로 매출의 60%, 이익의 3분의 2를 차지했던 사진필름 사업이 급격히 무너졌고 2011년 이후로는 아예 필름 사업 자체가 사라졌다. 이 여파로 업계의 거인 코닥은 2012년 파산했다. 반면 후지필름은 여전히 잘나간다.

더 놀라운 것은 이 기업이 역대 최고 이익을 낸 시점이 바로 ‘지금’이라는 것이다. 후지필름은 올해 3월 결산(2018년 4월~2019년 3월)에서 창립 85년 역사상 최고인 2098억엔(2조3000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전년보다 70%나 늘었다. 주력인 의료기기나 바이오·헬스케어 사업이 호조인 데다, 사무기기 사업의 구조개혁이 성과를 낸 것이 주효했다.

매출은 2조4315억엔(26조3000억원)으로 역대 최고였던 2007년의 90% 수준이지만, 이 역시 조만간 최고치를 경신할 것으로 보인다. 바이오·헬스케어 부문의 투자가 맹렬히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바이오·헬스 매출은 전년보다 4% 증가한 1조390억엔으로, 기존의 주력 사업 사무기기를 웃돌았다. 특히 의약품·의료기기 제조 부문은 10%나 성장했다. 최근 후지필름은 미국 바이오·의약 대기업의 제조 자회사를 980억엔에 인수하는 등 굵직한 투자를 계속하고 있다.

이 덕분에 실적 전망도 밝다. 올해 예상은 매출 2조4800억엔, 영업이익 2400억엔으로 전년보다 매출은 2%, 영업이익은 14%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영업이익은 2년 연속 사상 최고치를 경신할 전망이다.

후지필름의 성공 원인은 2000년 필름 사업의 매출이 정점에 달하기 전부터 이 사업이 사라질 것을 예상하고 장기 계획을 짰다는 데 있다. 방향은 세 가지였다. 필름 사업이 쪼그라드는 동안에 최대한 시장을 방어하고 고정비를 줄여나가는 것, 내부에 축적된 기술의 활용법을 찾아 성장동력을 이어가는 것, 기업 인수·합병 등을 동원해 신사업을 찾는 것이었다. 후지필름은 이 세 방향 모두에서 제대로 된 성과를 냈다.

작년 기준 후지필름의 사업 포트폴리오를 보면, 헬스케어 부문이 전체 매출의 43%로 가장 높다. 다음은 복사기 등 사무기기, 관련 서비스를 포함한 도큐먼트솔루션 부문이 41%, 나머지 16%가 디지털카메라 등을 포함한 이미징솔루션 부문이었다. 아직도 후지필름은 사무기기와 디지털카메라 회사라는 이미지가 강하지만, 5년, 10년 뒤에는 헬스케어 기업으로 이미지가 바뀔지 모른다. 후지필름에 중요한 것은 어떤 것을 다루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남고 성장하고 또 사회에 기여하는 기업이 될 것인가다.

후지필름의 지난 20년 실적을 살펴보면 또 하나 특이한 점이 보인다. 어떤 위기가 와도 무너지지 않는 전투력이다. 작년에 사상 최고 영업이익을 올렸다는 것만이 대단한 것이 아니다. 2001년 이후 연매출을 보면 단 한 번도 2조엔대 아래로 내려간 적이 없다. 그사이에 본업이었던 필름 사업 매출이 ‘제로(0)’가 됐고,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로 심각한 시장 축소를 겪기도 했지만, 많을 때는 2조8000억엔대, 적을 때도 2조1000억엔대 매출로 굳건했다.


도쿄 롯폰기에 위치한 후지필름 본사 전경. 사진 블룸버그
도쿄 롯폰기에 위치한 후지필름 본사 전경. 사진 블룸버그

영업손익을 보면 더 인상적이다. 주력 사업 소멸, 글로벌 경제위기, 대규모 구조조정비 투입 등이 한꺼번에 발생했던 2009년에 딱 한 번 영업손실을 기록한 것을 제외하면, 매년 1000억엔에서 2000억엔 사이의 영업이익을 꾸준히 지켰다. 본업이 사라져도,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돈을 절대 잃지 않았다는 얘기다.

최근 한국에서도 본업 소멸의 위기에 빠진 기업이 늘어나고 있다. 중소기업은 말할 것도 없고, 시장을 지배하고 있던 대기업도 마찬가지다. 어떻게 하면 기업의 체력을 잃지 않으면서 살아남고, 또 안정적 성장을 도모할 수 있을까? ‘이코노미조선’이 도쿄 롯폰기에 있는 후지필름 본사에서 고모리 시게타카(古森重隆·80) CEO 겸 회장을 단독 인터뷰하고, 지금까지 후지필름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그리고 후지필름은 무엇을 했는지, 현재와 미래의 리더에게는 무엇이 필요한지를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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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필름

설립 1934년
CEO 겸 회장 고모리 시게타카
COO 겸 사장 스케노 겐지
자회사(연결) 279개사(국내 90개사, 해외 189개사)
직원 수(연결) 7만2332명(2019년 3월 말 현재)
시가총액 26조2000억원(2조4332억엔, 10월 23일 종가 기준)

최원석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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