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 로저스(Jim Rogers) 예일대 역사학, 옥스퍼드대 대학원(철학·정치경제 전공), 컬럼비아대 경영대학원 객원교수 / 사진 블룸버그
짐 로저스(Jim Rogers)
예일대 역사학, 옥스퍼드대 대학원(철학·정치경제 전공), 컬럼비아대 경영대학원 객원교수 / 사진 블룸버그

“내가 만난 어느 한국인 사업가는 ‘한국에서 사업하는 게 중국에서 하는 것보다 훨씬 힘들다’고 하소연했다. 그만큼 규제가 많아 힘들다는 이야기다. 정부가 도우려 하기보다 기업인 스스로 알아서 하도록 두는 편이 결과가 더 좋을 것이다.”

워런 버핏, 조지 소로스와 함께 세계 3대 투자 대가로 불리는 짐 로저스 로저스홀딩스 회장에게 지난해 12월 중순 이메일로 2020년 세계 경제 전망을 물었다. 며칠 후 그는 “런던 히스로 공항에 있는 호텔에 혼자 머물고 있으니 전화를 달라”고 답했다. 지난해 12월 21일 로저스 회장을 전화로 인터뷰했다. 그는 40분 가까이 미국 대선과 중국 경제, 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와 공유경제 등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를 풀어 갔다.

로저스 회장은 예일대에서 역사학을 전공하고 영국 옥스퍼드대 대학원에서 철학과 정치경제학을 공부했다. 1969년 스물일곱 나이에 ‘헤지펀드 제왕’ 조지 소로스와 함께 글로벌 투자사인 퀀텀펀드를 설립했고, 이를 통해 1980년까지 12년간 3365%의 누적 수익률을 기록하며 월가를 뒤흔들었다(같은 기간 미국 증시 성장률은 50%였다). 가족과 함께 2007년 싱가포르에 정착한 그는 세계 곳곳을 누비며 강연과 투자 자문, 방송 활동을 활발하게 이어 가고 있다.

‘딸바보’로 소문난 로저스 회장이 성탄 분위기가 한창인 토요일 오후 공항 호텔에서 혼자 뭘 하고 있을까 궁금해졌다. 올해 일흔두 살인 로저스 회장은 각각 17세, 12세인 두 늦둥이 딸이 있다.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인터뷰 말미에 슬쩍 물었다. 아니나 다를까, 런던에 있는 기숙학교에 재학 중인 딸을 만나러 왔다고 했다. 방학을 맞은 두 딸과 아내와 함께 곧 페루로 여행을 떠날 계획이란다.


2020년 세계 경제 전반적인 흐름은 어떻게 전망하나.
“미·중 무역전쟁의 여파로 앞으로 몇 년 간은 부진을 면치 못할 것이다. 미국과 중국의 경제 규모를 생각하면 두 나라의 갈등이 세계 경제에 미치는 충격은 클 수밖에 없다.”

미국 대선 결과는 변수가 되지 않을까.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 실패할 가능성은 매우 작다. 현직 대통령이 재선에 실패한 경우는 역사적으로도 드물다. 무엇보다 원하는 곳에 돈을 쓸 힘이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재선을 위해 부채를 늘려가며 엄청난 돈을 쓸 것이다. 그렇게 재선에 성공하면 (미국) 경제가 나빠지고 그 책임을 외국에 돌리면서 무역전쟁은 더 심각한 상황으로 전개될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빚이 늘어난 상황에서 경기가 저성장 국면으로 접어들면 문제 아닌가.
“걱정할 만한 상황이다. 부채가 워낙 많아져서 또다시 대규모 거품 붕괴 사태가 올 경우, 내 생애에 경험해보지 못한 최악의 위기가 될 것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는 중국이 쌓아둔 돈이 많아 도움이 됐는데, 이제는 중국도 부채가 많다. 금리가 낮아 당장은 괜찮겠지만 빚이 계속해서 쌓이면 언젠가는 큰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2007년 가족과 함께 미국을 떠난 것도 중국의 성장에 대한 확신 때문으로 안다. 미·중 갈등을 겪으며 생각이 달라진 건 아닌가.
“중국은 21세기의 가장 중요한 경제 대국이 될 것이다. 물론 환경과 인권 문제 등 풀어야 할 과제도 많다. 미국도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나라가 되는 과정에서 대공황과 남북전쟁 등 숱한 난관을 이겨내야 했다. 중국은 해마다 미국보다 10배는 많은 엔지니어를 배출하고 있다. 기술 분야에서 미국에 앞서나갈 여력이 많다.”

중국이 전 세계 부의 흐름의 중심이 될 것으로 예견한 로저스 회장은 애초 베이징 또는 상하이로 이사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대기오염이 심해 화교 자본의 영향력이 큰 싱가포르를 정착지로 선택했다. 로저스의 두 딸은 중국어(만다린)를 완벽하게 구사한다.

중국의 2020년 경제 성장률이 6%에 미치지 못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데.
“어떤 나라도 영원히 고속 성장할 수는 없다. 세계 경제가 위축되는 상황에서 중국만 예외일 수는 없다. 중국 정부는 ‘빚을 줄여가면서 망할 기업은 망하게 둘 것’이라고 했다. 진심이길 바란다. 그렇게 하는 것이 중국 경제나 세계 경제를 위해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한국은 어떻게 해야 할까.
“미국과 중국에 대한 무역 의존도를 줄이고 교역 대상을 다변화하려는 한국 정부의 노력은 바람직하지만, 어떤 노력을 하더라도 경기 하락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점은 고려해야 한다. 한국 경제의 가장 큰 문제는 정부가 너무 많은 부분을 규제하려 한다는 점이다. 내가 만난 어느 한국인 사업가는 ‘한국에서 사업하는 게 중국에서 하는 것보다 훨씬 힘들다’고 하소연했다. 그만큼 규제가 많아 힘들다는 이야기다. 정부가 도우려 하기보다 기업인 스스로 알아서 하도록 두는 편이 결과가 더 좋을 것이다. 반대로 정부 도움을 기대하는 사업가가 한국에 많은 것도 사실이다. 정부와 기업 모두가 힘을 합쳐 좀 더 개방적인 경제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차량 공유 업체 우버와 공유 임대 업체 위워크 등 공유경제 업계의 실적 부진에 대한 실망감이 커지고 있다.
“새로운 기술의 초기 정착에는 돈이 많이 들어간다. 우버와 위워크는 초기 성장을 위해 돈을 많이 썼고, 그 과정에서 손해를 많이 봤다. 바람직한 투자 방식은 아니다. 천천히 투자를 늘려 가며 성장해야 하는데 요즘은 모두가 빨리 부자가 되려고 욕심을 낸다. 하지만 우버와 위워크의 사업 모델 자체는 문제가 없다. 두 기업이 아니더라도 차량 공유와 공유 임대 사업은 성장을 이어 갈 것이다.”

브렉시트가 세계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어떻게 보나.
“당장은 힘들겠지만 장기적으로 영국 경제에 호재가 될 것이다. EU 국가와 교역에서 영국은 큰 이익을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브렉시트가 스코틀랜드와 북아일랜드의 분리주의자들을 자극해 결국 영연방(United Kingdom)이 붕괴할 가능성도 있다. 설령 그렇게 되더라도 현재 영국 영토 안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브렉시트가 경제적으로 도움 될 것이다.”

얼마 전 ‘앞으로 5년 한반도 투자 시나리오(비즈니스북스)’라는 책을 출간했다. 한국에 대한 관심이 특별한 것 같다.
“한반도는 앞으로 10~20년 동안 세계에서 가장 흥미로운 지역이 될 것이다. 관심이 갈 수밖에 없다. 통일 한국은 ‘위대한 나라’가 될 것이다. 북한의 싸고 숙련된 노동력과 풍부한 천연자원, 대한민국의 자본력이 결합해 엄청난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이) 규제를 완화하고 개방된 경제 구조를 만드는 것은 통일 한국의 미래를 위해서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