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광우 서울대 경제학과, 인디애나대 경영학 박사, 세계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장관 특보, 금융위원장,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 사진 김흥구 객원기자
전광우
서울대 경제학과, 인디애나대 경영학 박사, 세계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장관 특보, 금융위원장,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 사진 김흥구 객원기자

전광우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을 만난 지난해 12월 17일 오전 서울 삼성동에는 비가 내렸다. 새벽부터 시작된 빗줄기는 해가 뜬 후에도 출근길 직장인을 괴롭혔다. 젖은 재킷을 털며 전 이사장이 있는 무역센터 25층 집무실로 들어서자 그가 창문을 가리키며 “맑은 날에는 전망이 좋은데 오늘은 흐려서 가시거리가 짧다”고 말했다. 전 이사장은 “잔뜩 먹구름 낀 날씨가 꼭 우리나라 경제 상황처럼 보여 오늘 인터뷰 주제(경제 분석·전망)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다”며 웃었다.

잡담을 나눌 때는 온화한 미소로 일관하던 그가 인터뷰 시작과 함께 표정을 바꿨다. 전 이사장은 한껏 굳은 얼굴로 “한국의 경제 체력이 빠른 속도로 약해지고 있다”며 “2020년에는 정책을 정치를 위한 도구로 쓰는 걸 멈추고 기업이 뛸 수 있는 여건부터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문재인 정부의 경제 정책 점수를 후하게 쳐도 60점 이상 주기 어렵다고 했다. 전 이사장은 “외풍에 쉽게 흔들리는 경제 구조인 만큼 경제 외교 전략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2019년 국내외 경제가 어떻게 움직였는지 평가해달라.
“먼저 대외 상황부터 돌아보고 한국으로 넘어가겠다. 2019년은 전 세계 주요국의 경기 상황이 전반적으로 악화한, 그래서 국제기구나 신용평가사의 성장 전망치가 여러 차례 하향 조정된 한 해였다. 여기에 미·중 무역전쟁, 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같은 악재까지 겹쳐 경기 심리가 더 위축됐다. 시장을 달구기 위해 각국 정부는 금리 인하에 나섰다. 그전까지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풀린 유동성을 정상화하는 기조가 강했는데, 2019년에는 다시 돈을 푸는 쪽으로 돌아섰다. 마이너스 금리로 거래되는 주요국 채권 규모가 확대된 것도 지난해의 특징이다. 유동성은 늘고 채권 금리는 떨어지니 미국 같은 강대국 증시는 ‘불황 속 활황’을 즐겼다. 한국은 대외 경기 침체의 충격을 상대적으로 더 많이 받았다. 수출 감소 추세나 폭이 다른 나라보다 빠르고 컸다. 국가 경제 전반의 물가 수준을 보여주는 국내총생산(GDP) 디플레이터(명목 GDP를 실질 GDP로 나눈 값) 상승률이 2019년 상반기 -0.6%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국 중 가장 낮게 나왔다는 분석 결과(한국경제연구원 조사)만 봐도 유난히 흔들렸던 한국 경제의 현실을 볼 수 있다. 국내 증시도 주요국 대비 바닥을 기어 해외 투자자들이 이탈했다. 정부에서 재정 투입 정책을 펼쳤지만 효과는 미미했다.”

왜 한국 경제만 유독 더 나빴을까.
“경제 체력이 그만큼 약해진 것이다. 주식시장을 예로 들어보자. 증시는 그 나라 기업의 실적이다. 기업이 미래에 창출할 수 있는 수익을 현가로 바꾼 게 주가라는 개념이다. 한 국가 경제의 연간 실적을 볼 수 있는 가시적인 지표 중 하나가 증시라는 의미다. 그런데 2019년 한국 주식시장은 미지근했다. 2018년 마지막 개장일(12월 28일)에 코스피지수 종가가 2041.04였는데, 현재 2168.15(2019년 12월 16일 종가 기준)에 머물러 있다. 6%가량 올랐지만 다른 나라 증시와 비교하면 제자리걸음이나 다름없다. 이마저도 대장주 삼성전자가 5만원의 벽을 뚫어준 덕분이다. 삼성전자를 빼고 보면 뒷걸음질 쳤다. 반면 미국·일본·독일 등 선진국의 연평균 상승률은 20%를 웃돈다. 신흥 시장 상승률도 13% 정도다. 이게 한국 경제 체력의 현주소다.”

체력을 어떻게 길러야 하나.
“대내외 환경이 모두 도와줘야 하지만, 우선 내부적으로는 경기 진단과 해결을 정치적으로 접근하지 않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 경제의 가장 큰 문제는 잠재 성장률이 점점 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근본적인 개선이 필요한 시점이다. 현금 한 번 푸는 식의 단발성 이벤트로는 안 된다. 받는 사람은 신나겠지만 국가적으로는 효과 보기 어렵다. 우리 신체도 치료제를 써야 할 때 진통제를 놓는 상황을 반복하면, 결국 몸이 더 망가지지 않나.”

‘근본적인 개선’은 무엇을 의미하나.
“정부가 정책을 만들고 시행하는 모습을 보면, 순기능에 초점을 맞추고 부정적인 효과를 간과하는 경우가 잦다. 모든 정부가 그래 왔다. 정책은 만드는 사람 마음 같지 않아서 기대효과가 약할 수 있고, 나라 안팎 여건에 따라 평가가 수시로 바뀔 수도 있다. 중요한 건 부정적인 효과가 더 클 때 실패를 인정하고 수정할 수 있는 용기가 있느냐다. 정책이 스며드는 시차(時差)를 고려한 기간이 지나고도 개선 조짐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오류를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

실패한 정책은 어떤 게 있을까.
“예컨대 최저임금 제도를 보자. 좋은 취지인 건 안다. 하지만 속도가 너무 빨랐다. 정치적으로 접근했기 때문이다. 곳곳에서 기업이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주 52시간제 도입도 이해 관계자들과 충분한 논의 없이 정치가 밀어붙인 결과물이다. 국내 기업이 해외 시장 개척에 나서는 걸 단순히 ‘투자 다변화’로만 이해해서는 안 된다. 국내 투자 환경이 열악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는 2020년을 정부가 ‘경제 정책을 리셋(reset)하는 해’로 만들어주길 기대한다. 정부가 미래 지향적인 자세로 용기와 책임감을 느껴주면 좋겠다. 지금은 뭐랄까, 인기 영합적인 성격이 너무 짙다. 이런 정책 기조가 더 확산되면 그 부담은 고스란히 기업 몫이 된다.”

정부가 대외적인 조치도 취해야 할 것 같다.
“물론이다. 모든 나라가 중요하지만 특히 주변국과의 견고한 협력 관계 설정이 필요하다. 일본을 보자. 서로 좋아하고 싫어하고를 떠나서, 양국 사이에는 경제 관련 연결 고리가 많다. 일본과 관계 악화가 우리 경제에 도움이 될 리 없다. 우리는 일본이 절대 만만치 않은 경제 대국이라는 사실을 자주 잊는 것 같다. 역대 노벨상 수상자 명단만 봐도 아시아를 대표하는 기초과학 강국은 일본뿐이다. 국제회의에 가보면 일본 경제 외교의 힘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 이런 나라와 정치적인 이유로 경제 협력 관계까지 깨뜨리는 건 자살 행위다. 국익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중국과의 경제 관계에 대해서도 말해달라.
“나는 2020년 한국 경제가 만날 대표적 리스크로 중국을 꼽는다. 중국의 국가 부채는 GDP 대비 300%에 달한다. 2007년에 150% 수준이었는데 12년 만에 두 배 늘었다. 기업 부채는 GDP 대비 200% 정도다. 중국 정부는 이게 위험 수위라는 걸 알면서도 경기 위축을 우려해 선뜻 부채 축소에 나설 수 없는 딜레마를 안고 있다. 중국발(發) 리스크에 대한 정책적 대응 시나리오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한국은 수출의 4분의 1을 중국에 의존하는 나라다.”

2020년 경제 분위기가 2019년보다는 나아질 것이라는 전망이 꽤 많다.
“여기서 나아진다는 건 지금이 너무 바닥 수준이니까 그보다는 살아날 것이라는 의미다. 기저효과가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는 말일 뿐 상황이 180도 바뀐다는 게 아니다. 수출이 영원히 내리막길을 걷지는 않을 것 아닌가. 최근 미국과 중국이 무역 협상 1단계 합의에 도달했으니 이런 부분도 경기 반등을 조금은 기대하게 만드는 배경이다. 미국 역시 11월 대선을 앞두고 경기 부양 쪽으로 정책을 강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끝으로 현재까지 정부의 경제 정책에 점수를 준다면.
“100점 만점 기준으로 60점 정도면 될까. 이것도 사실 후하게 준 편이다. 낙제다.”

전준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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