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태윤 하버드대 경제학 박사, 한국개발연구원(KDI) 금융경제팀 연구위원, 카이스트(KAIST) 경영대 교수, 한국금융학회 부회장 / 사진 채승우 객원기자
성태윤
하버드대 경제학 박사, 한국개발연구원(KDI) 금융경제팀 연구위원, 카이스트(KAIST) 경영대 교수, 한국금융학회 부회장 / 사진 채승우 객원기자

정부와 학계가 현 국내 경기를 두고 엇갈린 진단을 이어 가고 있다. 가장 입장 차가 극명한 대목이 상품과 서비스 가격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디플레이션’ 여부다. 지난해 물가 수준을 나타내는 국내총생산(GDP) 디플레이터(명목성장률과 실질성장률의 차이)는 4분기 연속으로 전년 같은 기간과 비교해 마이너스(-) 증가율을 기록했다. 외환 위기가 들이닥쳤던 1998년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정부는 물가 하락을 두고 “총공급이 ‘일시적’으로 늘어난 결과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지난해 9월 3일 김용범 기획재정부 1차관은 “농산물과 석유 가격 하락으로 공급 측 요인이 영향을 미쳤다”고 선을 그었다. 해당 상품의 공급이 정상화하면 물가 수준도 되돌아온다는 이야기다.

학계 입장은 다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지난해 12월 23일 ‘이코노미조선’과 연세대 연구실에서 한 인터뷰에서 “한국 경제는 저성장·저물가 국면으로 이미 디플레이션에 접어들었다”고 단언했다. 디플레이션이 장기화하면 ‘소비 침체→기업 투자 감소→고용 감소→소득 감소→소비 침체 가속화’의 늪에 빠진다. 성태윤 교수는 학계에서 “한국 경제가 일본식 장기 침체기에 접어들었다”고 주장해왔다.

장기 침체기에 빠지면 경기가 일시적으로 개선돼도 눈에 띄는 추진력을 얻기 쉽지 않다. 정부는 2020년 경제 성장률을 2019년(2.0% 예상)보다 개선된 2.4%로 전망했다. 그러나 성태윤 교수는 디플레이션 위기에 빠진 한국 경제에 우려를 표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근본적 처방 없이 한국 경제의 미래는 밝지 않다”고 강조했다.


정부를 비롯해 경제 연구소에서 2020년 경제 성장률이 반등한다고 전망했다.
“지난해 지표가 최악이었으므로 기저효과가 있다. 물론 반도체 경기가 회복되겠지만 2017~2018년 호황기만큼은 아니라는 관측이 나온다. 정부가 제시한 2.4% 경제 성장률에 도달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경제 구조가 성숙하면 경제 성장이 둔화하기 마련이지 않나.
“맞는 말이다. 하지만 한국 경기가 세계 경기 사이클에서 이탈하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2017년 3~4분기 세계 경기가 수축하던 당시 소득주도성장으로 우리 경제에 ‘노동 비용 충격’이 가해졌다. 한국 경기가 다른 국가에 비해 빠른 속도로 침체됐다. 이후 경제 성장률, 투자, 고용과 같은 거시 지표가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만큼 최악인 상황이다. 저물가까지 겹쳐 사실상 디플레이션에 접어들었다.”

정부는 일시적 공급 충격이 원인이라고 선을 그었다. 2020년이면 물가도 정상화된다는 입장인데.
“GDP 디플레이터뿐만 아니라 대표적 물가지수인 생산자 물가지수와 소비자 물가지수도 최근 전년 동기 대비 마이너스(-) 성장으로 전환했다. 이걸 디플레이션이 아니면 무슨 현상으로 설명하나. 설령 2020년에 물가가 반등하더라도 그 상황을 ‘디플레이션에서 빠져나왔다’고 해석해야 한다. 만약 이보다 더 심한 디플레이션이 온다면 그건 늪에 빠진 정도의 경제 침체기다. 디플레이션의 장기화를 막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데, 정부는 현 상황을 제대로 진단도 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 처방도 어렵다.”

어떤 문제가 발생 가능한가.
“노동 비용 충격으로 기업이 국내 투자를 줄이고 있다. 과거에도 이런 비용 충격이 나타난 시기가 있었다. 1970년대 오일쇼크로 에너지 비용이 높은 회사가 어려움을 겪었고, 1997년 외환위기 때 부채 비용이 많이 드는 회사가 힘들었다. 이젠 노동 비용이 높은 회사를 중심으로 산업 전반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기업이 생산성을 유지하기 위해 노동 비용이 낮은 해외에 투자를 집중하고 있다. 최근 해외직접투자(FDI)가 많이 증가했다. 국내 투자는 줄어든 상태에서 해외 투자는 늘어나는 상황은 위기의 신호라고 볼 수 있다.”

체감 가능한 부작용은 무엇이 있나.
“고용이 위축된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자본과 노동은 적대적 관계가 아니다. 투자를 기반으로 자본이 축적돼야 신규 일자리가 늘어난다. 고용 지표를 보면 고령 세대는 정부 지출로 일자리가 느는데 젊은 세대 일자리는 줄어들고 있다. 현재 젊은 세대가 고통을 떠안는 구조가 형성되고 있다.”

정부 재정으로 경제 성장률을 견인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지난해 12월 정부가 발표한 경제 정책 방향도 재정 정책에 편향돼 있다. 재정 지출은 필요하지만 원칙이 있어야 한다. 우선 지출 목적을 △복지 지출과 △성장 지출로 나눠야 한다. 세부적으로 보면, 복지 지출은 추후 감축이 어렵기 때문에 재원 조달 계획이 뒷받침돼야 한다. 반면 성장 지출은 재원 조달 계획이 없어도 되지만 성장에 기여하는지 확실히 확인해야 한다. 예비타당성 조사가 터부시되고 있는데, 관리할 필요가 있다.”

성태윤 교수는 지방 인프라 사업을 대표적 예시로 꼽았다. 건설 투자 지표가 악화된 상황이지만 제대로 된 질적 투자가 필요하다는 것. 성태윤 교수는 “지방 인프라 사업을 주민 민원 격의 복지 지출이 아니라 성장 지출로 분류하고 예비타당성 조사를 철저히 거쳐야 한다”고 지적했다.

통화 정책은 어떤 방향으로 펼쳐야 하나.
“현재 경제 상황만 보면 금리 인하를 비롯한 추가적인 통화 정책의 필요성은 절실하다. 물가가 장기 목표에서 상당히 이탈한 상태다. 문제는 정부의 분양가 상한제와 핵심 포트폴리오 유도 정책으로 부동산 가격이 급등했다는 점이다. 금리 인하 정책에 상당한 제약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지표 개선을 위해 정부가 신경 써야 하는 부분은.
“현재 경제 구조상 자본 수익률이 높지 않고, 고령화로 노동 인구도 줄고 있다. 이럴 땐 자본과 노동을 효율적으로 결합해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 혁신의 핵심 정의다. 그럼에도 최근 타다 논의를 보면, 생산 요소(노동·자본)의 재배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면허증으로 묶인) 택시 업계 종사자(노동)가 플랫폼 모빌리티(자본)로 직장을 옮기면 새로운 결합이 가능하다. 이 경우 이들의 소득이 오히려 높아질 수 있고 새로운 산업 구조도 생긴다. 시장에서 선택된 산업이 확장되지 않으면 생산성은 낮은 상태로 지속할 가능성이 크다.”

민간 부문에 자체적 활력이 필요할 것 같다.
“노동 시장과 공공 부문 개혁이 절실한 시점이다. 우리 경제가 버티지 못하는 이유는 노동 시장이 경직적인데 임금만 올라가기 때문이다. 공공 부문도 마찬가지로 생산성은 낮은데 고임금 직무가 많다. 이쪽으로 노동 인구가 몰리면서 민간 부문이 위축되고 있다. 2020년에 근본적 문제인 정책 수정이 이뤄지지 않으면 경제가 개선되기 쉽지 않다.”

2020년 경제의 기회와 위기는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기회는 정책 수정의 여지가 있다는 점이다. 대외 요인과 달리 대내 요인은 관리할 기회가 있다. 기업에서 체감할 만큼 정책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 위기는 대외 경제 환경이다. 미·중 무역전쟁도 1단계 합의됐지만 제한적일 테고, 중국 경제도 실물경제와 금융시장이 모두 어려워지고 있다. 공급망 다변화에 신경 써야 한다.”

김소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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