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나비 스틸 크릭 드라이브에 있는 코스트코 매장. 3월 3일(현지시각) 찾은 이곳엔 화요일 오전인데도 휴지와 생수, 돼지고기 등이 품절돼 구매할 수 없었다. 사진 유윤정 기자
버나비 스틸 크릭 드라이브에 있는 코스트코 매장. 3월 3일(현지시각) 찾은 이곳엔 화요일 오전인데도 휴지와 생수, 돼지고기 등이 품절돼 구매할 수 없었다. 사진 유윤정 기자

“최근 한국인이 비행기 푯값의 10배를 주고 상하이 비행기를 타고 대거 중국으로 입국했다는 뉴스 봤어요? 지금 한국 사람이 중국으로 다들 가고 싶어 한다네요. 중국 정부가 대응을 잘하고 의료 기술이 뛰어나니까 다들 중국으로 피신하는 것 같아요.”

2월 25일(현지시각) 캐나다 밴쿠버 버나비. 초등학생 아이를 둔 김진희(가명)씨는 하교하는 아이를 기다리던 같은 반 학부모 중국인 레나(가명)씨가 건넨 말에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김씨는 2년 전 아이의 조기유학을 위해 밴쿠버에 정착했다. 레나씨 역시 유학 맘으로 둘은 아이 등하굣길에 인사하며 친하게 지냈다.

김씨는 당황스러워 말문이 막혔다. 그는 “말도 안 된다. 가짜뉴스 퍼뜨리지 말라”며 “한국 사람 그 누구도 비행기 푯값 10배를 주면서 중국으로 가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했다. 또 다른 유학 맘 윤모씨도 거들었다. “위챗에서 가짜뉴스가 퍼져나가고 있다”며 “한국 의료가 세계 최고 수준인데 당신이라면 중국에 가겠느냐”라고 말했다. 김씨와 윤씨는 결국 중국 유학 맘들과 사이가 멀어졌다. 캐나다 유학 맘들 사이에선 한인 마트를 당분간 이용하지 말라는 이야기도 돌고 있다. 중국인들이 중국인이 많은 중국인 마트를 피해 한인 마트로 대거 옮겨왔다는 게 이유다.

밴쿠버의 한 대학에서 어학연수 중인 박모씨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그는 최근 중국 유학생 친구들에게 “한국인들이 코로나를 피하러 캐나다로 대거 입국한다는데 한국 정부가 제대로 관리를 못 해 이 지경까지 된 것 아니냐”는 비난을 들었다. 그는 “사실이 아니라고 얘기해도 믿지를 않았다”며 “중국에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시작됐고, 중국인의 한국 입국 금지를 안 한 건 우리 잘못 일 수 있겠지만 한국인이 중국에 가고 싶어 한다는 것은 명백한 허위”라고 말했다. 이후 그 역시 중국 유학생들과 불편해졌다고 한다. 박씨는 “괜한 말을 한 것은 아닐까, 집에 돌아오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며 “하지만 그 친구들이 무례하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다”고 했다.

한국인과 중국인이 갈등을 빚는 사이 캐나다에선 동양인을 보는 시선이 사뭇 차가워지고 있다. ‘이민자의 나라’라 불리는 캐나다는 비교적 인종차별이 없는 국가 중 하나로 인식됐다. 그러나 코로나19 사태가 심각성을 띠면서 이들의 포용성도 시험대에 오른 것이다.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노스밴쿠버의 한 레스토랑에서 일하고 있는 허소영씨는 “사장님이 손님 앞에서 기침하는 모습을 절대 보이면 안 된다고 주의를 줬다”며 “일반적인 감기인데도 기침을 해서도 마스크를 써서도 안 된다고 하니 괴롭다”고 했다. 영주권자인 조모씨는 “동양인이 카페에 들어가면 갑자기 다들 일어나서 나간다”며 “사람들이 피하는 분위기가 슬프지만, 스스로 더욱 위생에 신경 쓰고 있다”고 말했다.

아이와 함께 조기유학을 온 최지영씨도 “버스에서 기침을 한 번 했을 뿐인데 버스 운전기사와 다른 승객들이 계속 째려보는 것 같아 집에 오는 내내 위축됐다”며 “밴쿠버에서 동양인에 대한 폭행이 있었다는 뉴스도 본 터라 괜히 겁이 나서 도망치듯 아이와 버스에서 내려 집까지 걸어왔다”고 말했다.       

캐나다 현지 한국인과 한국서 입국하는 관광객 사이의 갈등도 커지고 있다. 불안감이 커진 현지 유학 맘들이 한국에서 오는 관광객들에게 2주간 자가격리를 요구하면서다. 한 커뮤니티 사이트에는 현지 한국인이 한국에서 들어온 지인이 준 선물을 받고 찝찝했다는 글도 올라왔다. 아이들과 ‘한 달 살기’를 위해 3월 중순 밴쿠버 입국 예정인 서모씨는 “2주간 자가격리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내가 무슨 바이러스 덩어리가 된 기분이 든다”며 “당장 가서 먹거리, 생필품을 사야 할 텐데 돌아다니지도 못하고, 걱정이 많다”고 했다. 

캐나다의 분위기가 이렇게 달라진 것은 이곳에서도 확진자가 점점 생겨나고 있어서다. 3월 4일 밴쿠버가 속한 브리티시컬럼비아(BC)주에서만 13번째 확진자가 발생했다. 토론토가 속한 온타리오주에서도 20번째 확진자가 나오면서 질병 확산 여부에 대한 긴장감이 높아졌다. 중국, 이란, 일본, 한국 등 캐나다 이민율이 높은 국가에서 순간적으로 바이러스가 확산하고 있는 것도 그 이유다. BC주 13번째 확진자는 홍콩과 인도 여행을 다녀온 80대 여성으로 현재 중태로 알려졌다.


밴쿠버 다운타운 내 한 어학원. 코로나19 사태 심각성이 커지면서 일부 어학원에선 동양인 간 갈등도 심화하는 분위기다. 사진 유윤정 기자
밴쿠버 다운타운 내 한 어학원. 코로나19 사태 심각성이 커지면서 일부 어학원에선 동양인 간 갈등도 심화하는 분위기다. 사진 유윤정 기자

캐나다도 사재기 열풍 확대

교육청은 최근 바이러스 관련 안전지침이 담긴 공문을 학부모에게 보내 코로나19 발병 국가에 ‘여행 자제’를 권고했다. 학부모 사이에선 혹시나 코로나19가 학교로 확산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에어캐나다는 4월 10일까지 베이징, 상하이 등 중국 본토로의 항공편 운항을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

세계 최대 크루즈선사 협의체인 CLIA(Cruise Lines International Association)는 중국, 홍콩, 마카오에 이어 2월 26일 한국 출발 승객의 크루즈 승선 불허 방침을 내렸다. 캐나다에선 크루즈를 통해 알래스카, 밴쿠버아일랜드 등을 즐기는 가족 단위 관광객이 많았다. 프랑수아 필립 샹파뉴 외무부 장관은 최근 오타와에서 열린 내각 회의에서 “한국, 이란, 일본, 이탈리아 등 각국에서 순간적으로 감염 위험성이 증가하는 사례를 보고 있다”며 “해외 여행 계획을 세운 캐나다인은 여행에 대해 각별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당부했다.

불안감이 커지자 캐나다에선 사재기가 확산하는 분위기다. 3일 찾은 버나비 코스트코에는 휴지와 통조림, 생수, 돼지고기 등 생필품이 동나는 광경이 연출됐다. 중국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리치몬드 코스트코에도 쌀, 밀가루, 시리얼, 냉동과일을 비롯해 손 소독제, 마스크 등이 품절됐다. 캐나다 정부가 “자가격리 14일을 대비해 물, 쌀, 약, 과일 등 유사시 구비할 수 있는 물건들을 미리 사 달라”고 발표한 영향이다. 버나비 코스트코 매장 직원 안드레아씨는 “평일 오전에도 휴지는 대부분 품절된다”며 “코로나 확산에 대비해 생필품을 미리 비축해 두려는 고객들이 많기 때문”이라고 했다.

한국도 요주의 국가 중 하나다. 캐나다는 자국민의 한국 방문 여행에 대한 주의 조치를 1단계에서 2단계로 격상했다. 캐나다는 한국에서 두 번째로 이민자가 많은 곳으로 약 25만 명의 재외동포가 거주하고 있다. 매년 약 20만 명의 한국인 관광객이 방문한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밴쿠버를 비롯한 각 지역 한인회도 주요 행사를 줄줄이 취소하고 있다. 오타와 한인회는 3월 1일 예정됐던 101주년 삼일절 기념행사를 코로나19 확산으로 취소했다. 일부 교회·절 등 종교단체도 행사를 취소하는 분위기다. 서리에 있는 밴쿠버 서광사는 “코로나19로 인해 당분간 일요 법회와 대중 공양을 쉬기로 했다”며 “선재 한글학교도 봄방학을 앞당겨서 4월까지 문을 닫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밴쿠버(캐나다)=유윤정 조선비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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