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쿠버 명소인 스탠리파크에 사회적 거리 두기를 강조하는 푯말이 세워져 있다. 캐나다 정부는 사회적 거리 두기가 지켜지지 않자 최근 스탠리파크 내 차량 진입을 통제했다. 사진 유윤정 조선비즈 기자
밴쿠버 명소인 스탠리파크에 사회적 거리 두기를 강조하는 푯말이 세워져 있다. 캐나다 정부는 사회적 거리 두기가 지켜지지 않자 최근 스탠리파크 내 차량 진입을 통제했다. 사진 유윤정 조선비즈 기자

지난해 10월 부모님과 함께 밴쿠버에 유학 온 김정현(가명)씨는 최근 모든 것을 포기하고 한국으로 떠났다. 4월 4일 자로 밴쿠버에서 한국으로 가는 직항 비행기가 모두 중단된 터라, 현재 가능한 방법은 미국을 경유하는 것뿐이다. 그는 시애틀을 경유, 20시간 이상을 날아서야 인천공항에 도착할 수 있었다. 2만 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한 미국을 경유하는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그가 귀국길에 오른 것은 캐나다의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 시스템에 크게 실망해서다. 김씨는 아버지가 갑자기 다량의 객혈(喀血)을 하자 혹시나 하는 생각에 코로나19 검사를 받아보기로 했다. 그가 다닌 대학교 같은 반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며칠째 브리티시컬럼비아주 코로나19 진단센터는 통화가 되지 않았다. 이후 어렵게 연결된 뒤에도 심각한 호흡곤란 상태가 아니면 코로나19 검사를 해줄 수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 한인 클리닉과 병원 응급실도 호흡기 환자는 출입이 불가능하다며 진료를 거부했다. 김씨는 “코로나19에 걸려도 해줄 게 없으니 집에서 격리하라고 했다”면서 “진짜 아픈 사람은 기다리다가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와 가족들은 4월 10일 인천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격리시설로 이송돼 코로나19 검사를 받았고 다음 날 음성 판정이 나왔다. 자가 격리가 끝나는 4월 24일에 또다시 코로나19 검사를 받을 예정이다. 김씨는 “(코로나19) 검사를 받았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일단 안심이 된다”며 “2주간의 자가 격리 의무를 철저히 지킬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캐나다를 떠나 한국으로 돌아가는 유학생이 늘고 있다. 캐나다의 소극적인 코로나19 검사로 위기감이 커진 탓이다. 캐나다 정부는 현재 프런트라인 워커로 불리는 병원 종사자, 간병인 등을 제외한 일반인에게 코로나19 검사를 해주지 않는다. 심각한 호흡곤란으로 위독한 상태가 돼야만 검사받을 수 있다. 증상이 경미한 환자로 병상이 꽉 차는 상황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기침과 인후통, 고열이 있거나 코로나19 확진자와 접촉한 일반인은 자신이 혹시 코로나19에 걸린 것은 아닌지 두려움이 클 수밖에 없다. 응급실에 간다고 해도 MSP(의료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으면 하루 입원에 1000만원이 넘는 병원비를 내야 한다.


스탠리파크 내 문 닫은 아이스크림 가게. 사회적 거리 두기를 지키지 않는 시민들에게 1600여 건의 경고장이 발부됐다. 사진 유윤정 조선비즈 기자
스탠리파크 내 문 닫은 아이스크림 가게. 사회적 거리 두기를 지키지 않는 시민들에게 1600여 건의 경고장이 발부됐다. 사진 유윤정 조선비즈 기자

“Are you sick?”…마스크 쓰면 환자 취급 ‘문화 차이 탓’

유학생들의 위기감을 더욱 부추기는 것은 캐나다에 급속히 늘고 있는 코로나19 환자다. 캐나다는 3월 16일(현지시각) 코로나19 확산을 방지하고자 국경을 봉쇄하고 외국인 입국을 금지하는 강경책을 내놨다. 이에 더해 스타벅스, 맥도널드를 비롯해 모든 식당, 학교, 문화센터, 백화점 등을 폐쇄했다. 마트, 약국 등 필수 사업장을 제외한 상점 대부분이 문을 닫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는 주립 공원을 폐쇄하고 밴쿠버 명소인 스탠리파크 내 차량도 통제했다. 말콤 브롬리 밴쿠버 공원위원회 회장은 “사회적 거리 두기를 지키지 않는 시민에게 1600여 건의 경고장이 발부됐다”고 밝혔다.

이러한 긴급 처방에도 캐나다 내 코로나19 확진자는 걷잡을 수 없이 늘고 있다. 4월 15일 기준 코로나19 확진자는 약 2만8400명, 사망자는 1010명이다. 한 달 전 수십 명에 불과했던 확진자가 급속히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초등학생 아이와 조기유학을 온 박모씨는 “캐나다의 소극적인 검사에도 하루에 1000명 이상씩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온다는 것은 스스로 코로나19에 걸린 사실조차 모르는 일반인이 훨씬 많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아이의 유학을 위해 관광비자를 받아 온 유학 맘들은 의료보험 가입이 안 돼 아파도 병원에 가기 어려운 상황이다.

캐나다에선 마스크를 쓴 사람을 찾기 쉽지 않다. 최근에서야 조금씩 느는 추세지만, 마스크를 쓴 사람 대부분이 동양인이다. 캐나다에선 아픈 사람만 마스크를 쓴다고 생각하는 문화가 강하다. 코로나19 샘플을 채취해 검사하는 질병관리본부 직원, 환자를 대하는 의료진, 해외 여행객을 대하는 공항 직원들마저 마스크를 쓰지 않는 경우가 많다. 유학생 진모씨는 “코로나19가 무서워 마스크를 쓰고 싶은데, 오히려 병에 걸렸다고 생각할까 봐 쓰지 않고 마트에 가곤 한다”고 했다. 3월 15일 몬트리올에선 40대 한국인이 시내를 걷다 괴한이 휘두른 흉기에 피습당했고, 같은 날 20대 한국인이 괴한의 흉기 공격을 받고 중태에 빠지기도 했다.

사재기 열풍이 확산하며 현지에서 마스크를 구하기 어려운 것도 이유다. 마스크를 구하지 못해 한국에 배송을 요청하는 교민도 많다. 하지만 항공기를 통한 우체국 국제우편(EMS) 접수가 중단돼 이마저도 힘들다. 교민 중 일부는 커피 필터를 이용해 마스크를 직접 만들거나 한인 커뮤니티 등을 통해 마스크를 거래하고 있다. 캐나다에 10년 넘게 거주한 필리핀계 바네사는 “공기가 좋은 캐나다에선 그동안 마스크 쓸 일이 없었다”며 “수요가 없으니 마스크를 수입하지도 않았고, 쓰는 문화도 없기 때문에 코로나19 사태에도 마스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노스밴쿠버 웨스트우드에 있는 세이프웨이 매장. 사재기 열풍이 지속되며 휴지를 판매하는 매대가 텅텅 비어 있다. 사진 유윤정 조선비즈 기자
노스밴쿠버 웨스트우드에 있는 세이프웨이 매장. 사재기 열풍이 지속되며 휴지를 판매하는 매대가 텅텅 비어 있다. 사진 유윤정 조선비즈 기자

정부 “근로자 월급, 월세까지 보조”…유학생은 학비 환불도 못 받아

유학생들을 더욱 허탈하게 하는 것은 정부가 내놓은 대대적인 지원책이다. 캐나다 정부는 코로나19로 타격을 입은 기업과 근로자를 위한 고용보험(EI)과 긴급 대응혜택(CERB) 프로그램을 내놨다.

코로나19 사태로 해고되거나 월급이 줄어든 근로자에게 월 2000~5000캐나다달러(한화 약 180만~450만원)를 지원해 주는 정책이다. 4월 6일부터 13일까지 총 540명이 신청했다. 또 75% 임금 보조금 프로그램(CWSP)과 임시 임대 보조(BC-TRS) 프로그램도 시행할 예정이다. 코로나19로 월 소득이 25% 감소해 집세를 내기 힘든 중·저소득층을 대상으로 월 500캐나다달러(약 45만원)의 임대 보조금을 3개월간 지원한다.

그러나 수천만원의 학비를 내고도 학교 폐쇄로 피해를 본 유학생들은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이들은 캐나다 교육청에 4~6월 수업료와 미리 낸 신학기(올해 9월~2021년 6월)의 학비 환불을 요구하고 있지만 거부되거나 명확한 답변을 듣지 못한 상황이다.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어도 학비 환불이 되지 않아 귀국하지 못하는 유학생이 많다.

두 아이의 학비로 약 3000만원을 낸 심수정씨는 “부당하고 불합리한 캐나다 교육청의 환불 정책에 화가 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유학 맘 권모씨도 “학비뿐만 아니라 렌트비, 자동차 보험료, 각종 세금 등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고 했다. 일부 유학 맘들은 외교부와 영사관을 통해 학비 환불 민원을 제기하고 그래도 거부되면 법적 대응까지 검토하겠다는 분위기다. 현지 유학원 한 관계자는 “학부모들의 민원이 빗발치지만, 교육청에서 명확한 환불 정책을 내놓지 않고 있어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고 말했다.

밴쿠버(캐나다)=유윤정 조선비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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