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카이 마코토 감독. 사진 최원석 조선일보 기자
신카이 마코토 감독. 사진 최원석 조선일보 기자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 ‘날씨의 아이’를 만든 신카이 마코토(新海誠·47) 감독을 인터뷰한 것은 지난 1월 말 도쿄 중심지 이치가야의 제작사 사무실에서였다. 3년 전부터 인터뷰 요청을 했었지만, 당시 그는 “‘너의 이름은.’ 후속작 만드느라 여유가 없다”며 “작품 공개 이후에 기회를 보자”고 했다.

2016년 ‘너의 이름은.’은 일본 애니메이션의 글로벌 흥행 역대 2위에 올랐을 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372만 관객을 모았다. 그러나 지난해 개봉한 후속작 ‘날씨의 아이’는 일본 내 성공과 달리 한국에서 67만 관객에 그쳤다. 신카이 감독은 양국 관계에 대한 안타까움과 세계적인 격차 확대, 우경화 상황에서 개인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 솔직히 얘기했다.

개점 휴업 중인 요즘 국내 극장가에선 그의 작품이 ‘조용한 러시’다. ‘너의 이름은.’과 ‘날씨의 아이’ 재개봉에 이어, 4월 22일 ‘언어의 정원’, 5월 중순 ‘날씨의 아이’가 더빙판으로 다시 선보인다.


언어의 정원(2013년). 사진 신카이 마코토
언어의 정원(2013년). 사진 신카이 마코토
너의 이름은.(2016년). 사진 신카이 마코토
너의 이름은.(2016년). 사진 신카이 마코토
날씨의 아이(2019년). 사진 신카이 마코토
날씨의 아이(2019년). 사진 신카이 마코토

창의력의 원천은 무엇인가.
“내 작품이 다른 사람에게 다가갔다는 실감, 나도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을 수 있구나라는 충족감이다. 2002년 ‘별의 목소리’를 공개했을 때다. 50석밖에 안 되는 소극장에서 20분짜리 짧은 애니메이션을 관객에게 처음으로 선보였다. 서툴고 졸렬한 작품이었지만 50명이 아주 크게 손뼉을 쳐 줬다. 인생 최고 순간이었다. 한 번 더 그런 기분을 느끼고 싶었던 것이 가장 큰 모티베이션(동기 부여)이 됐다.”

작품을 만들 때 세계 관객을 염두에 두나.
“그렇지는 않은데, 계기가 있었다. 우선 ‘별의 목소리’는 혼자 만든 것이었기 때문에 해외 관객은 생각지도 못 했다. 그런데 DVD를 냈을 때 세계 각지에서 메일이 와 무척 놀랐다. 그래서 글로벌한 시장을 노리고 2011년 ‘별을 쫓는 아이’를 만들었는데, 실패했다. 지브리 취향이 들어간 판타지인데, 세계 공통의 신화를 기본으로 일본 관객이 아니더라도 쉽게 즐기도록 하겠다는 생각이었다. 반응은 정반대였다. 해외에서도 국내에서도 ‘(전작) 초속 5센티미터(2007년)가 더 좋았다, 당신에게 기대하는 건 그런 작품이다’라는 얘기가 아주 많았다. 충격이었다.”

그래서 어떤 생각을 하게 됐나.
“다음 작품 ‘언어의 정원(2013년)’에서는 정말 끝까지 일본의 로컬 한 영화를 만들려고 했다. ‘만요슈(萬葉集·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가요 모음집)’ 이야기를 꺼낸다든지, 일본 정원을 무대로 한다든지, 일본 고교생과 교사 이야기를 다룬다든지 말이다. 이 작품은 국내뿐 아니라 국외에서도 평이 아주 좋았다. 그래서 ‘너의 이름은.’을 만들 때는 ‘미쓰하’라는 무녀(巫女)가 나와 신사(神社)에서 춤을 추고, 일본 전통공예인 손목 끈이 쓰이는 식으로 일본적 모티브를 의도적으로 넣었다. 이런 모티브는 해외에서도 인기를 얻었다. 무대가 된 장소를 직접 가보려고 일본에 여행 온 사람도 많았으니까. 일부러 글로벌을 노리고 만든다고 되는 게 아니라, 자기가 발 딛고 있는 곳을 더 깊이 파는 로컬 한 작품을 만드는 쪽이 결과적으로 바깥세상으로도 더 잘 전달되는 것 같다.”

‘너의 이름은.’부터 도쿄 풍경을 극사실 묘사했는데.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이 계기였다. 그전까지 일본 사회는 일상생활이 계속될 것 같은 느낌이었다. 경제적으로는 차츰 가라앉고 있었지만 말이다. 그런데 그 큰 지진이 일어난 이후 일본의 실질 특성이 바뀌었다. 대지진과 보조를 맞추듯, 자연재해가 거의 매년 일본 여기저기서 일어나 사람이 죽는다든지 거리 모습이 바뀐다든지 하는 광경을 지켜봐야 했다. 그러면서 ‘도쿄조차 지금 모습으로 있지는 못하지 않을까’라는 두려움이 커졌다. ‘너의 이름은.’ 에필로그에서 주인공 타키가 구직 활동을 할 때 ‘도쿄도 언젠가 사라질지 모릅니다’라고 말한다. 그 대사는 작품 만들 때 내가 절감한 것이었다. 도쿄가 바뀌어 버리기 전에 영화에 기억을 담아두고 싶은 마음, 언젠가 닥칠 재해에 준비한다는 기분으로 ‘내 영화에서 먼저 바꿔버리자’라는 마음이 동시에 있었다. 그런 마음이 도쿄의 비주얼을 치밀하게 묘사한다든지, ‘날씨의 아이’ 라스트 신처럼 눈 딱 감고 도쿄가 제대로 물에 잠기게 해버린다든지 하는, 그런 묘사로 이어진 것 같다.”

‘날씨의 아이’에선 고통받는 세계 젊은이들에 대한 위로가 느껴진다.
“젊은이들을 둘러싼 상황이 어떤 나라에서나 비슷해지고 있다. 인터넷·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엔 절망한 젊은이들의 공통된 감정이 넘쳐난다. 타인과 다른 생각을 말하거나 하면 강하게 비판받고 공격받는 현상, 뭔가 조금이라도 잘못된 것을 하면 일거에 무너질 만큼 두들겨 맞는 일이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다. 사람이란 잘못을 저질러 가며 성장하는 것일 텐데, 지금 일본은 한 번의 실패도 용서받지 못할 것 같은 사회가 돼버렸다. 한국에서도 그런 기분이 들지 모르겠다.”

행복하지 않은 사람이 많은 걸까.
“‘지금의 세계가 행복한 것일까’라고 묻는다면 ‘행복하지 않다’고 말할 사람이 꽤 많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게 극단으로 가면 ‘전쟁이라도 나서 세상이 뒤집혔으면 좋겠다’ ‘재해가 올 거면 차라리 빨리 와주는 쪽이 오히려 후련할 것 같다’고 여기는 사람도 있을 거다. ‘어떻게든 계속되고 있는 지금 삶이 그리 좋은 것은 아니지 않을까’라는 기분이 모두에게, 내 마음속 어딘가에도 조금씩 있을지 모르겠다. 그것을 관통해 다음에 다른 세계까지 가버리는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날씨의 아이’에서 날씨는 미쳐버린 세상, 숨 막힐 것 같은 사회 분위기의 치환이다). 그렇지만 세계가 미쳐버린다 해도 거기에서 꿋꿋하게 살아나가는 결론을 만들려고 했다. ‘날씨의 아이’에서 호다카가 히나에게 ‘우리는 반드시 괜찮을 거야’라고 말한다. 실은 도쿄가 물에 잠겨서 괜찮지 않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내가 너를 아무 일 안 생기게 해줄 테니까’라는 의미다.”

한국·일본에도 그런 기분을 가진 이들이 꽤 있을지 모르겠다. 서로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채 겉만 보고 공격할 수도 있고.
“어차피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면, 상대를 부숴버리겠다는 심정이 들 수도 있다. ‘너의 이름은.’은 서로 모르는 타키와 미쓰하라는 소년·소녀의 몸이 바뀌면서 서로를 알아가는 얘기이지 않나. 서로가 상대방이 돼버리기 때문에, 그 사람이 신경 쓰이게 되고 좋아지게 된다. 관계를 개선하고 싶다면 상대 처지에 공감하고 상대 기분을 생각해줘야 한다. 그걸 반복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도쿄=최원석 조선일보 국제경제전문기자

  • 목록
  • 인쇄
  • 스크랩
  • PDF 다운
ⓒ 조선경제아이 & econom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