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위키피디아
사진 위키피디아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미국의 분단을 가속한 게 아니다. 코로나19는 이미 국가로서 망가져 있던 미국을 세계에 노출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미국 시사지 ‘애틀랜틱’은 미국에서 백인 경관의 흑인 폭행·사망 사건을 두고 전국에서 시위가 격화하는 것을 이렇게 표현했다. 코로나19는 인종차별·빈부격차라는 미국 사회의 어두운 면을 재부각한 하나의 재료일 뿐이었다는 얘기다. 이 상황을 어떻게 봐야 할까? 해답을 찾기 위해 2019년 노벨경제학상 공동 수상자인 에스테르 뒤플로(Esther Duflo) MIT 교수를 최근 이메일로 인터뷰했다. 그는 빈곤·격차 문제 해결을 위한 실증연구로 유명하다. 뒤플로 교수는 “경제를 향상하려면 저소득층의 빈곤 탈출이 우선”이라고 주장한다. 지난달 국내에서 번역 출간된 그의 공동 저작 ‘힘든 시대를 위한 좋은 경제학’에 잘 설명돼 있다.


노벨경제학상 최연소(수상 당시 46세) 수상자이자 두 번째 여성 수상자다. 왜 그렇게 여성이 적었을까. 노벨상을 받고 어떤 느낌이었나.
“여성 노벨경제학상 수상자가 적었던 이유 중 하나는 경제학 분야에 여성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경제학 분야에서도 여성이 성공하고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 같아 기뻤다. 내 수상이 여성이 자기 일을 더 발전시켜 나가고 남성이 여성을 더 존중하도록 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 됐으면 좋겠다.”

코로나19로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에서도 불평등 문제가 부각되고, 이것이 사회적 충돌로 이어지고 있다.
“불평등은 대부분 선진국에서도 심화하고 있다. 이미 부자인 사람들이 더 부유해졌을 때, 곤경에 처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처지에 더 분노하게 되고 누군가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리려고 한다. 세계적으로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는데 코로나19가 이를 최악의 상황으로 만들었다.”

지금 미국의 상황을 어떻게 보나.
“개발에 밀려난 사람들, 폭증하는 불평등, 신뢰가 바닥으로 떨어진 정부, 극도로 분열된 사회와 정치 등은 이제 부유한 나라에서도 흔히 나타나는 문제다. 내가 그동안 가난한 나라를 연구하며 경험했던 문제가 미국 정치 담론의 최전선이자 핵심 주제와 매우 닮았다. 거대 테크 기업들은 엄청나게 돈을 벌고 있다. 많은 사람이 직장을 잃었지만 주식 시장은 빠르게 회복되고 있다. 반면 과거에 중산층이었던 사람들조차 사는 게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코로나19로 악화한 경제 상황은 테크 기업 부자들을 위해 저소득층과 흑인들이 희생됐다는 인식을 다시 부채질할 수 있다. 이런 인식이 증폭되면 끔찍한 결과를 낳을 것이다.”

어떤 해결책이 있을까.
“재분배 정책을 향한 공동의 노력이 필요하다. 부유세, 더 누진적인 소득세도 생각해 봐야 한다. 어떻게 하면 더 효과적으로 돈을 써서 사람을 도울 수 있을지, 더 깊이 고민해야 한다. 거부감을 느끼는 이들이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이 문제를 검토하는 것은 매우 긴급한 일이고, 또 제도 변화를 통해 충분히 해결 가능한 문제라는 것을 말하고 싶다.”

지나친 재분배 정책은 반발을 불러올 수 있는데.
“잘못 받아들이면 내 얘기가 위험하게 들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부유층 세금을 깎아주는 것이 경제를 성장으로 이끌지 않았다. 1960년대 이래 성장률을 살펴보면, 레이건이 촉발한 낮은 세율의 시대에 빠른 성장은 일어나지 않았다. 레이건의 조세 감면이나 클린턴의 최고 세율 인상이나 부시의 세금 감면이나, 장기적 성장률에서 의미 있는 차이를 가져오지 않았다. 즉 재분배를 덜 한다는 것이 더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레이건과 대처 시절의 미국·영국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레이건·대처 시대를 어떻게 평가하나.
“레이건과 대처에게 1970년대 말 슬럼프의 원인은 명확했다. 그들은 경제가 왼쪽으로 너무 기운 게 문제라 여겼다. 1951~63년 미국은 최고 한계 세율이 90%를 넘었고, 이후 낮아지긴 했지만, 한동안 꽤 높았다. 그러다 레이건과 부시 시절에 최고 세율이 이전의 70% 수준에서 30% 이하로 낮아졌다. 클린턴 시절에 조금 올라갔지만 그래도 40%였다. 레이건·클린턴 시대에는 낮은 세율과 함께 복지를 줄이는 쪽으로 대대적인 개혁이 이뤄졌다. 부자 감세가 경제 성장을 촉진한다는 근거가 희박한데도 말이다. 레이거노믹스는 ‘성장에는 불평등이라는 비용이 따른다’는 것을 인정했다. 기본 아이디어는 부유한 사람이 먼저 이득을 얻으면 차차 가난한 사람에게 이득이 돌아간다는 그 유명한 낙수효과 이론이었지만, 효과가 크지 않다는 것이 이미 알려졌다.”

레이건 시절부터 미국에 불평등이 심화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가 코로나19로 폭발했다는 얘기인가.
“단언은 피하고 싶지만 이렇게는 말할 수 있다. 1980년은 레이건이 당선된 해이자 미국에서 이전 50년간 하락세를 보였던 소득 상위 1%에게 가는 몫이 급격히 늘기 시작한 때다. 1928년엔 상위 1%가 미국 전체 소득의 24%를 가져갔는데, 1979년엔 3분의 1로 줄었다. 그러다 2017년에 다시 1929년 수준으로 돌아갔다. 1950~60년대 초고소득자에게 적용됐던 매우 높은 세율의 핵심은 거부(巨富)를 등쳐먹자는 게 아니라, 아예 거부의 존재를 없애는 것이라고 말하는 게 더 적합할 것이다. 즉 개인에 대해 그 정도까지 부의 격차를 당연시하는 게 옳은가의 문제와 결부돼 있다. 당시엔 초고소득자가 거의 사라졌기 때문에 최고 세율을 적용받는 이가 거의 없을 정도였다. 그러다 최고 세율이 30% 아래로 떨어지면서 천문학적 보수를 지급하는 것이 기업에나 그것을 받는 CEO에게나 다시 매력적인 선택지가 됐다.”

미국에선 미국 노동자가 고통받는 원인으로 이민자와 중국을 지목하고, 이들을 공격하고 있다. 진실은 무엇이며 어떤 해결책이 있는가.
“불평등한 사회에서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개인적으로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시스템에 저항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비난의 화살을 돌릴 다른 대상을 찾는 것이다. 경제가 성장하지 못하거나 성장하더라도 평범한 사람이 혜택을 누리지 못한다면 희생양이 필요해진다. 그래서 이민자와 자유무역이 자연스럽게 공격 대상이 된다. 그리고 정치인은 대중에게 희생양을 공급할 준비가 돼 있다. 해결책은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는 것이다. 그리고 정말 이민자와 중국이 원인인지에 대해 객관적 분석을 하는 것이다.”

저소득층에 현금을 지급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도 있다.
“사회 정책은 돈과 존엄 사이의 긴장 관계를 고려해야 한다. 우리 연구에 따르면, 자녀 교육을 돕도록 현금을 지급하는 비조건부 프로그램이 자녀를 잘 교육할 의무를 지워 현금을 지급하는 조건부 프로그램보다 자녀 교육 향상에 더 효과적이었다. 현금 지급이 저소득층의 근로 의욕을 떨어뜨린다는 근거는 희박하다. 사람은 삶에서 진정으로 무엇인가를 성취하고 싶어 한다. 저소득층도 그것을 열망하지만,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절박한 처지 때문에 이전까지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 사람에게 추가로 현금을 주면, 전보다 더 열심히 일하게 하고 때로는 새로운 일을 찾도록 독려하는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을 그동안의 연구로 확인했다.”

코로나19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코로나19가 사회의 불평등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더 고민하게 하는 경종(警鐘)으로 받아들여졌으면 좋겠다.”


에스테르 뒤플로는 누구?

2019년 역대 최연소(만 46세)이자 여성으로는 두 번째로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 파리 고등사범학교 졸업 후 1999년 MIT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지금까지 MIT 교수로 재직 중이다. 1972년 파리에서 소아과 의사인 어머니와 수학 교수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그는 어머니의 인도주의 의료 활동에 참여했는데, 이때 경험은 그가 경제학자로서 저소득 국가의 빈곤 문제를 연구하도록 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최원석 조선일보 국제경제전문기자

  • 목록
  • 인쇄
  • 스크랩
  • PDF 다운
ⓒ 조선경제아이 & econom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