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일본 국민 드라마로 떠오른 ‘사랑의 불시착’과 ‘이태원 클라쓰’. 사진 넷플릭스
왼쪽부터 일본 국민 드라마로 떠오른 ‘사랑의 불시착’과 ‘이태원 클라쓰’. 사진 넷플릭스

‘사랑의 불시착’과 ‘이태원 클라쓰’가 일본 국민 드라마로 떠오르면서 ‘4차 한류(韓流)’를 주도하고 있다. 4차 한류는 이전 세 차례와 궤를 달리한다. 한정된 대상에만 어필했던 과거와 달리 일본의 남녀노소 모두에게 폭넓은 지지를 끌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1차 한류는 2003~2005년 NHK 위성채널에서 방영된 ‘겨울연가’가 주도했다. 40대 이상 여성이 주 소비층이었다. 2차는 2008~2010년 아이돌 ‘동방신기’ ‘카라’ ‘소녀시대’ 등이 히트하면서 일어났다. 20대 여성까지 소비층이 내려왔다. 3차는 2015~2018년 ‘트와이스’ ‘BTS’ 등이 히트하고 치즈닭갈비와 한국식 메이크업 등 한국의 문화·패션까지 인기를 끌면서 일어났다. 10대 소녀까지 대상이 확대됐다.

요미우리신문은 6월 27일 자에 ‘사랑의 불시착’과 ‘이태원 클라쓰’의 일본 히트를 언급하며 “2000년대 초반 ‘겨울연가’부터 K팝(K-pop) 유행 등을 거쳐 4차 한류 열풍이 도래했다”고 썼다. 4차 한류의 특징은 이전까지 한국 드라마를 본 적이 없던 사람들이 “처음 빠져들었다”라고 고백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기존 한류 팬과 전혀 다른 성격의 수요층이 폭발한 것이다.

‘사랑의 불시착’ ‘이태원 클라쓰’는 정액제 동영상 서비스인 넷플릭스를 통해 일본에 공개됐다. 두 드라마는 7월 초까지 일본 넷플릭스 순위에서 최상위권을 유지하며 롱런 중이다. 일본의 대표 검색엔진인 야후재팬에서 ‘사랑의 불시착(愛の不時着)’을 키워드로 넣어 웹 검색을 해보면 7월 6일 현재 293만 건이나 뜬다. 관련 동영상도 8만6300건이 검색된다. ‘이태원 클라쓰(梨泰院クラス)’로 웹 검색을 하면 무려 1900만 건이 뜬다. 관련 동영상은 65만8000건이나 된다.

7월 4일 일본의 영화·드라마 리뷰 서비스 업체 필마크스(Filmarks)는 올해 1월 1일부터 6월 30일까지 자국에서 방영된 모든 드라마의 소비자 만족도를 조사해 발표했는데 ‘사랑의 불시착’이 해외 드라마 부문 1위를 차지했다. ‘사랑의 불시착’과 ‘이태원 클라쓰’가 왜 4차 한류의 진원지가 됐는지 그 이유를 세 가지로 분석했다.


이유 1│코로나19 자숙 기간, 시청자가 몰렸다

‘사랑의 불시착’과 ‘이태원 클라쓰’가 일본에서 본격적으로 히트한 때는 일본 최대 연휴인 골든위크(4월 29일~5월 6일)였다. 원래 골든위크 때는 일본인 상당수가 여행이나 나들이를 즐긴다. 그러나 올해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 따른 외출 자제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일본 국민 대부분이 집 안에서 시간을 보내게 됐다. 이 때문에 두 드라마가 골든위크 기간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한국 드라마 TV 가이드’의 책임편집자인 다카하시 나오코(高橋尙子)는 두 드라마가 일본에서 히트한 이유에 대해 “작품의 질도 물론 높지만,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자숙 기간과 겹친 것이 컸다”라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시대에 입소문이 퍼지면서 두 드라마의 평판이 치솟았다”라고 설명했다.

넷플릭스는 매일 인기 순위 톱 10을 콘텐츠 창에 보여주기 때문에, 일단 톱 10에 노출되면 궁금해서라도 시청자가 찾아보게 된다. 골든위크 첫날인 4월 29일 ‘사랑의 불시착’은 3위, ‘이태원 클라쓰’는 5위에 올랐는데, 처음 시청한 이들의 연속 시청이 늘어나면서, 5월 1일부터 ‘사랑의 불시착’이 1위로 올라섰다. ‘이태원 클라쓰’ 역시 5월 2일 이후 3위를 유지하면서 롱런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두 드라마는 이후 7월 초까지 줄곧 톱 10 정상권을 유지하고 있는데, 이는 석 달째 지속해서 대량의 신규 시청이 이뤄졌다는 뜻이다.

격주간지 ‘부인공륜(婦人公論)’ 7월 3일 자에서 편집자 나가세 유카리는 ‘사랑의 불시착’에 빠진 계기를 이렇게 설명했다. “코로나19 사태로 외출 자제령이 내려진 탓에 매일 밤 있던 회식이 없어졌다. 4월 중순쯤엔 TV도 질렸다. 이후 다른 드라마라도 보려고 넷플릭스를 살펴봤는데, 계속 최상위권에 랭크된 ‘사랑의 불시착’을 한 번 봤다가 빠지고 말았다.”


이유 2│넷플릭스가 날개 달아줬다

‘사랑의 불시착’과 ‘이태원 클라쓰’가 일본에서 매우 빠르게 전 국민적 인기를 얻게 된 것은 작품의 질이 좋고 코로나19 사태로 집에 머무는 일본인이 많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두 드라마가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됐다는 것이 중요한 이유로 꼽힌다. 넷플릭스의 전 세계 가입자는 올해 3월 말 현재 1억8286만 명으로 지난해 12월 말보다 1577만 명(9%) 늘었다. 증가 폭은 시장 전망치의 두 배였는데, 역시 코로나19 확산으로 즐길 거리가 줄어든 세계인의 넷플릭스 시청이 늘었기 때문이다. 현재 기준 일본 가입자 수는 공표되지 않지만, 지난해 9월 넷플릭스 본사가 “대략 300만 명을 넘었다”고 밝힌 적이 있다. 올해 3월 이후 일본에서 코로나19가 확산하고 외출 자제령이 시작된 것을 고려하면, 현재 일본 가입자는 300만 명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 콘텐츠 시장에서 넷플릭스는 이미 상당한 영향력이 있는 셈이다.

한편 일본 유통 전문지인 닛케이MJ는 6월 26일 “넷플릭스의 한국 드라마인 ‘사랑의 불시착’에 일본 남성들까지 빠져들고 있다”라며 “일본에서도 인터넷 동영상 서비스를 통해 해외 드라마를 보는 것이 일본 지상파 방송을 보는 것처럼 일반화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일본 최대 광고 회사 덴츠에 따르면, 일본의 인터넷 광고비는 6년 연속 두 자릿수 성장해 지난해에 2조1000억엔(약 23조3700억원)에 달했다. 이로써 지난해 1조8600억엔(약 20조7000억원)이었던 TV 광고비를 처음으로 웃돌았다. TV 왕국인 일본에서도 자금이 점차 인터넷으로 옮겨가고 있다. 광고 수입이 침체하면서 일본 TV 방송국의 콘텐츠 제작 여건은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 반면 코로나19 자숙 기간을 거치면서 넷플릭스나 다른 동영상 서비스를 접하게 된 많은 일본인은 지상파 TV가 신작을 제공하지 않아도 인터넷에 재미있는 프로그램이 많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이유 3│보편적 가치에 모두가 공감

코로나19 자숙에 따른 시청자 증가와 넷플릭스라는 뛰어난 플랫폼의 도움이 컸다 해도, 두 드라마의 성공은 결국 콘텐츠의 힘에 기인한다.

‘사랑의 불시착’은 한국 재벌 가문의 젊은 여자 사업가와 북한 장교의 사랑을 그렸다. 한·일 갈등도 여전하고 북한에 대한 일본인의 감정도 좋지 않다. 그런데도 ‘사랑의 불시착’이 히트한 것은 결국 구성, 배우의 힘, 연기력부터 삽입곡, 의상·소품까지 완성도가 뛰어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일본의   극작·연출가 히라타 오리자는 “조연까지 연기력이 뛰어나다”고 극찬했다. 특히 ‘이뤄지기 어려운 사랑’이라는 설정, 묵묵히 지켜주는 남성, 자기주장이 세지만 사랑스러운 여성, 보호받고 싶은 심리, 희생 등 인간의 보편적 감성을 제대로 짚었다는 평가다.

아사히신문은 ‘이태원 클라쓰’의 인기 요인을 이렇게 분석했다. “여주인공에겐 사랑하는 남자를 지키는 힘과 자기 삶에 대한 신념이 있다. 남주인공은 그러한 여주인공의 자주성을 소중히 여긴다. 그들의 삶이 누군가에게 더럽혀지지 않도록 지켜낸다. 그런 내용이 일본의 20~40대에게 폭넓은 공감대를 불러일으켰다.”

최원석 조선일보 국제경제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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